혈당 따져도 ‘쫀득함’ 못 참아…빵지순례 이어 ‘떡지순례’ 뜬 까닭 [비크닉]
아침부터 떡집 앞에 줄을 서고, 전국의 이름난 떡집을 찾아다닌다. 빵집을 찾아다니던 ‘빵지순례’에 이어 최근에는 ‘떡지순례’, 떡을 사기 위해 오픈런하는 ‘떡픈런’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명절이나 행사 때 주로 찾던 떡이 젊은 층이 일부러 찾아 먹는 디저트로 자리를 옮기고 있다. SNS를 보고 찾아온 젊은 소비자와 자녀나 가족을 위해 유행 메뉴를 사가는 중장년층이 한 떡집 안에서 겹치기도 한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가 올해 1~8월 온라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떡을 ‘디저트’로 언급한 게시물은 전년 동기보다 40% 이상 늘었다. 백설기에는 토마토소스와 치즈, 페퍼로니가 올라가고 찹쌀떡에는 팥 대신 생과일과 요거트 크림이 들어간다.
이처럼 최근 떡 열풍은 단순한 복고라기보다 떡이 가진 쫀득하고 말랑한 식감이 최신 디저트의 재료로 다시 쓰이는 과정에 가깝다.
백설기는 피자 도우로…완성품에서 ‘재료’가 된 떡
대표적인 메뉴가 피자설기다. 백설기 위에 토마토소스와 치즈, 페퍼로니 등을 얹은 메뉴로, 부산 영도구 남항 시장의 영도다리떡방이 약 5년 전 처음 선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봄 숏폼을 타고 인기를 얻으면서 여러 지역 떡집으로 퍼졌다.
지난 9월 30일 찾은 서울 면목시장 제일떡집. 주말처럼 긴 줄은 없었지만 피자설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가게 앞에 서 있었다. 막 쪄낸 피자설기가 나오자 손님들이 차례로 받아갔다. 개당 가격은 2000원이다. SNS를 보고 일부러 찾아온 젊은 손님도 있었고, “딸에게 가져다주려고 한다”며 여러 개를 고르는 중장년층도 눈에 띄었다.

직장인 정모(27)씨는 “주말에는 줄을 서서 샀는데 오늘은 평일 오전이라 훨씬 빨리 살 수 있었다”며 “평소 떡을 일부러 찾아 먹는 편은 아닌데 너무 맛있어서 또 사러 왔다”고 말했다. 이어 “피자처럼 익숙한 맛인데 떡이라 쫄깃한 식감이 있다는 점이 재미있는 것 같다”고 했다.
피자설기 유행은 동네 떡집 풍경도 바꾸고 있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오랫동안 떡집을 운영해 온 어머니가 피자설기를 팔기 시작한 뒤 젊은 부부와 커플, 아이를 둔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장사가 활기를 되찾았다는 가족의 사연이 화제가 됐다.
구하기 어려운 재료나 별도 설비 없이 기존 백설기에 소스와 치즈, 토핑을 추가하면 만들 수 있다는 점도 확산을 도왔다. 낮은 진입장벽 덕분에 유행이 특정 맛집에 머물지 않고 전국 떡집으로 번진 것이다.

찹쌀떡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보인다. 과일 찹쌀떡으로 유명한 디저트 브랜드 ‘한정선’은 복숭아·블루베리·샤인머스캣에 요거트 크림을 결합하고, 초콜릿과 카다이프, 피스타치오를 활용한 ‘두바이 찹쌀떡’까지 선보인다. 얇고 말랑한 떡피 안에 크림과 과일, 바삭한 재료를 더해 여러 식감을 한 번에 경험하게 한다.
떡은 전문 떡집을 넘어 카페와 디저트 브랜드 메뉴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근 카페업계에서는 찹쌀떡이나 떡을 활용해 쫀득한 식감을 살린 메뉴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요거트 아이스크림 브랜드 ‘요아정’도 지난달 생과일과 요거트 크림, 벌집 꿀을 넣은 찹쌀떡 5종을 일부 매장에서 먼저 선보였다.
tvN 예능 프로그램 ‘우주떡집’에서도 찰떡을 피자 도우처럼 활용하는 메뉴를 선보이는 등 떡을 하나의 식재료처럼 다룬다. 과거 하나의 완성된 음식이던 떡이 이제는 피자의 도우, 과일과 크림을 감싸는 피, 다른 디저트의 토핑이 되는 ‘재료’로 쓰이는 셈이다.
요즘 디저트는 ‘식감’이 핵심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쫀득함’이 있다. 지난해 말 두바이 쫀득 쿠키에 이어 버터떡 등 식감을 전면에 내세운 디저트가 잇따라 인기를 끌었다. 최근에는 ‘쫀득’, ‘꾸덕꾸덕’, ‘바삭’처럼 맛보다 식감을 먼저 설명하는 제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디저트 소비가 ‘무슨 맛인가’에서 ‘어떤 감각을 주는가’까지 넓어지고 있다고 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떡은 원래 일상적으로 먹어온 익숙한 음식이라 맛은 있어도 새롭다는 느낌은 크지 않았다”며 “피자설기나 한정선처럼 기존에 보던 떡과 다른 형태로 변형하고 모양이나 색깔까지 새롭게 만든 점이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디저트는 맛있는 것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렵고 보는 즐거움까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SNS는 이런 ‘보는 즐거움’과 식감을 함께 전달한다. 떡을 갈랐을 때 늘어나는 떡피와 가득 찬 크림, 과일 단면은 짧은 영상만으로도 먹었을 때의 감각을 상상하게 한다. 맛은 화면으로 전달하기 어렵지만 ‘쫀득함’은 눈으로도 보여줄 수 있다.
“요즘 유명한 거야”…떡도 줄 선다
떡의 인기는 제품 자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디에서, 얼마나 기다려 샀는지도 소비 경험의 일부가 되고 있다.
서울역 한정선 매장에는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긴 대기가 이어진다. 대기 등록만 세 자릿수에 이르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 추석 연휴에는 선물세트를 사려는 손님까지 몰렸고, 연휴 뒤에도 대기는 이어지고 있다.

회사원 강모(38)씨는 “솔직히 떡을 사는데 이렇게까지 기다려야 하나 싶기는 했다”면서도 “선물하려고 사는 거라 ‘이거 사려고 이렇게 기다렸다’는 것도 이야깃거리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받는 사람도 그만큼 기다려서 사온 걸 알면 선물에 들인 노력까지 알아주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같은 떡이라도 이제는 ‘유명한 디저트’, ‘줄 서서 어렵게 산 제품’이라는 설명이 붙는다. 어디서, 얼마나 기다려 샀는지까지 제품의 가치가 되는 셈이다.
저당 시대에도 디저트는 예외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유행이 저당·제로 제품과 혈당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에 나타났다는 점이다. 쌀과 찹쌀이 주재료인 데다 인기 떡에는 생크림과 버터, 초콜릿, 치즈까지 더해진다. ‘건강한 전통 음식’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떡을 찾는 현상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이 교수는 “건강관리는 해야 하지만 맛있는 건 못 참는다는 심리가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라며 “디저트는 많이 먹거나 자주 먹는 음식이라기보다 식사 뒤 하나씩 즐기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어 건강 관리에 대한 죄책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쫀득한 식감과 익숙한 맛의 결합, SNS 비주얼, 줄 서서 사는 경험이 더해지면서 오래된 음식인 떡이 지금의 디저트 소비 방식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명절에나 찾던 떡집 앞에 이제는 세대를 가리지 않고 줄을 선다.
■ b.이슈
「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이슈를 건져 올립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하고, 시대와 호흡해 성장하는 브랜드와 기업을 조명합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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