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는 게 아니라 한국말을 몰랐을 뿐"…이주배경학생 '70일의 한국어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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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수저 그림을 들어 보이자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아이들이 입을 모아 "수저"라고 답했다.
한국어가 서툰 이주배경학생에게 3개월에서 1년간 학교 밖에서 집중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친 뒤 원적교로 복귀시키는 방식이다.
한국어 집중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말을 잘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반대로 한국어에 자신감이 붙은 학생들은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 "같이 해도 돼?"라고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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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서툰 이주배경학생 대상 집중교육
"한국어 늘자 다른 교과에도 흥미…
언어 빨리 습득한 뒤 학습결손 보완"
"이건 뭐예요?"
교사가 수저 그림을 들어 보이자 각기 다른 국적을 가진 아이들이 입을 모아 "수저"라고 답했다. 모자 그림을 보고는 '모자'와 '모저' 중 알맞은 단어를 찾기도 했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말레이시아 등에서 온 아이들이 낯선 한국어를 그림과 소리로 익히는 시간이다.

지난달 9일 경기 안산 푸른꿈동산학교에서 만난 민영(10)이도 그중 한 명이다. 지난해 12월 말레이시아에서 온 민영이는 한국에 온 지 9개월 남짓 됐지만 올해 푸른꿈동산학교에서 한국어를 집중 교육받은 덕분에 말이 제법 늘었다. 서툴게나마 존댓말도 쓸 줄 알지만 아직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는 벅차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은 생겼다. 장래희망을 묻자 "경찰"이라며 "나쁜 사람을 잡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1일 교육부에 따르면 푸른꿈동산학교는 교육부가 2023년과 2025년에 발표한 '이주배경학생 교육지원 방안'에 따라 추진 중인 '지역 거점 한국어 예비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어가 서툰 이주배경학생에게 3개월에서 1년간 학교 밖에서 집중적으로 한국어를 가르친 뒤 원적교로 복귀시키는 방식이다. 다만 아직 별도 법적 기반이 충분하지 않아 교육청이 기존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 제도를 빌려 지역 여건에 맞춰 운영하고 있다. 안산의 경우 푸른꿈동산학교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이곳에서 이수한 수업과 출결은 원적교에서도 인정된다.
한 반 정원은 10명. 학생들은 70일 동안 오전 8시50분부터 11시50분까지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오후에는 수학·과학 수업을 받는다. 교과 진도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학교 수업에 필요한 개념을 한국어로 이해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게 특징이다.
이날 교실에서도 단어 암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 "책상 정리해요" "공책은 사물함에 넣어요" "연필은 어디에 넣어요?"라는 말이 이어졌다. 한국어와 함께 교실에서의 규칙도 배우는 셈이다.

3년째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김선숙 교사는 "처음에는 정말 한마디도 못 했던 아이가 60~70일 뒤 떠듬떠듬이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게 되는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러시아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선생님도 러시아말 못하잖아. 선생님도 노력해요. 여러분도 노력해요"라며 용기를 북돋아 준다고 했다.
한국어 집중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말을 잘하게 하는 데 있지 않다. 언어를 모르면 교실에 앉아 있어도 교사의 설명을 이해하기 어렵고, 자신의 학습능력을 보여줄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나현주 교육부 학생지원총괄과 과장은 "이곳에 있는 동안 교과수업의 결손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로 교실에 앉아 수업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결국 교과학습 결손"이라며 "언어를 빨리 습득한 뒤 학교에서 학습결손을 보완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화는 원적교에서도 나타났다. 이주배경학생 비율이 40%에 육박하는 안산 석호초의 경우, 집중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수업 집중도는 눈에 띄게 개선됐다. 남유림 석호초 교사는 "푸른꿈동산학교에서 돌아온 학생들은 학교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말을 이해하고 행동한다"며 "수업 중에도 아는 단어를 알아듣고 활동 내용을 조금씩 짐작하면서 자신감을 쌓아간다"고 말했다.
기초 한국어가 부족하면 같은 반 친구들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이 교사는 "짝·모둠활동에서 다른 학생들이 설명과 진행을 도맡게 돼 함께 활동하기를 꺼리는 경우도 있다"며 "이주배경학생은 점점 소극적이 되고 다른 학생들도 자신의 활동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그만큼 기초 한국어 교육은 이주배경 학생과 같은 반 친구들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한국어에 자신감이 붙은 학생들은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 "같이 해도 돼?"라고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학습에서도 변화가 나타난다. 지난해 러시아에서 온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은 입교 당시 한국어 진단평가에서 읽기·쓰기·말하기·듣기 네 영역이 각각 100점 만점에 17.5점이었다. 집중교육을 마칠 때는 네 영역 모두 100점을 받았다. 한국어가 늘자 수학에도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고 원적교로 돌아간 뒤에는 장래희망으로 '판사'를 이야기할 정도로 달라졌다고 한다. 김현주 푸른꿈동산학교 교감은 "원래 공부를 못하던 아이, 관심이 없던 아이가 아니었다"며 "언어가 되면서 질문도 하고 자기가 관심 있는 것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어교육은 단순한 언어교육을 넘어 한국 적응을 위한 교육이기도 하다는 게 김 교감 설명이다. 그는 "언어에 그 나라의 문화, 역사 등이 담겨있는 만큼 존댓말과 친구와의 의사소통, 교실 규칙뿐 아니라 태권도와 역사탐방 등도 함께 가르친다"며 "한국어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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