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수익률이 내 삶의 수익률처럼 느껴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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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거시경제 분석도, 종목 추천도 아니다. 평범한 시민이 주식시장에서 마주치는 욕망, 불안, 확신, 후회 같은 감정을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시선으로 읽어보려는 기록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세가 내 판단의 의미를 대신 쓰는 일은 주식창 안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삶의 모든 투자가 주식의 공식 하나로만 계산되기 시작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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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거시경제 분석도, 종목 추천도 아니다. 평범한 시민이 주식시장에서 마주치는 욕망, 불안, 확신, 후회 같은 감정을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시선으로 읽어보려는 기록이다. <편집자말>
[안유림 기자]
"내 말 듣고 반도체에 몰빵했으면 지금 1억은 거뜬히 넘었을 텐데. 그래도 일부라도 넣길 잘했지?"
그의 말은 결과론적으로 옳았다. 나보다 앞서나간 수익률이 그걸 증명해냈으니까. 그의 주식거래창 수익률을 흘깃거리며, 부러움 반 질투 반에 볼멘소리가 나간다.
"한 바구니에 넣으면 위험할까봐, 미국 주식하고 나눠 넣었는데 결과적으론 당신 말이 맞았네."
이 대화에서 열세에 처한 나는 불편하다. 과거의 내가 했던 판단은 수익률로 가치가 증명된다. 한국 반도체와 미국 지수를 나눠서 균형감 있게 사자고 생각했던 개인의 판단은, 지금 시장의 시세 앞에서 조용히 소외되고 만다.
소외, 세상이 정한 선택지
밤길에 강도가 칼을 들이대고 말한다.
"돈 내놔, 아니면 죽는다."
언뜻 선택권이 있어 보이지만 실은 없다. 돈을 안 주면 죽고, 죽은 사람에게 돈은 의미가 없으니 돈도 목숨도 둘 다 잃는다. 돈을 주면 목숨은 건지지만 돈은 잃는다. 어느 쪽을 택해도 온전한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이 장면을 통해 '소외'를 설명한다.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쪽을 택하든 무언가를 잃도록 짜인 선택의 구조다. 이 논리를 인간이 '나'가 되는 과정에 옮겨보면 조금 더 잘 보인다.
아기는 처음부터 완성된 '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름을 부여받고 언어를 익히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을 가리킬 수 있게 된다. 나를 설명하기 위해 세상의 언어를 빌리는 순간, 그 언어에 붙어 있는 의미까지 함께 받아들이게 된다.
'엄마', '직장인', '투자자'라는 말을 쓰는 순간, 그 말에 이미 사회가 만들어놓은 의미와 기준이 따라붙는다. 라캉이 말하는 소외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목숨을 지키려면 돈을 내줘야 하듯, 사회 안에서 '나'로 살아가려면 내가 속한 세계의 언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 언어로 나를 설명하는 순간, 나에 대한 의미까지 온전히 내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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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식창 주식창 |
| ⓒ unsplash |
나는 지난해 말 한 대형 제조업 주식을 샀다. 배당을 주는 우량주라는 것, 국내 대표 제조업체로서의 안정성 그리고 새로 시작한 신사업 프리미엄이 근거였다. 매수의 근거를 최종적으로 세운 것은 나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같은 사실에 다른 뜻이 붙기 시작했다.
9월 21일 한국경제 보도를 보면, 이 종목을 향한 증권가의 기대가 빠르게 식고 있었다.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사업에서 새로운 청사진이 나오지 않는 사이, 원화 강세와 노조 파업, 중국의 저가 공세가 기존 자동차 사업의 이익을 압박했다. 증권사들은 목표주가를 잇달아 낮췄고, 한때 기대를 모았던 신사업의 동력에는 'AI 기술 모멘텀 공백기'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본업도 신사업도 그대로인데, '우량주'라는 말도 '신사업 프리미엄'이라는 말도 예전만큼의 확신으로 읽히지 않게 됐다. 사실은 그대로인데, 그 사실에 의미를 붙이는 건 이제 내가 아니라 시세였다.
"이건 우량주고, 신사업은 장기적으로 될 사업"이라는 문장은 살아있다. 하지만 시장의 가격과 평가가 내 판단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말은 더 이상 나 혼자만으로 옳고 그름을 증명하기 어려워진다.
내가 규정했던 판단을 끝까지 고집하며 시세를 무시하면 손실이 불어날 수 있다. 반대로 시세가 다시 쓴 뜻을 받아들여 매도하면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그 대가로 내가 세웠던 판단을 스스로 버려야 한다. 매수가 내 나름의 근거를 세우는 행위였다면, 매도는 그 근거를 버리고 시세가 다시 쓴 뜻을 받아들이는 행위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세가 내 판단의 의미를 대신 쓰는 일은 주식창 안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커피 한 잔, 웹툰 한 편과 나스닥
9월에 들은 재테크 수업에서 강사가 말했다.
"웹툰을 돈 주고 보세요? 그래야 잠이 잘 온다고요? 그냥 새벽에 일어나서 뛰세요."
"커피 한 잔이면 하루 오천 원, 열 번 참으면 S&P500 2주를 삽니다. 물 마시세요."
"아이 학원비 얼마나 쓰세요? 그 돈을 나스닥 ETF에 투자하면 더 수익이 많지 않을지 한번 계산기를 두드려보세요."
결과론적인 계산기로 두드리면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나에게도 그런가. 며칠 뒤 회사 근처 카페 앞에서 라떼 한 잔을 주문하려다 멈칫했다.
라떼 1잔 오천 원 × 7일 = S&P500 2주.
계산은 순식간이었고,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다. 복직 후 나에게 아침 라떼 한 잔은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아이를 무사히 먹여 등원시켰고, 나 역시 무사히 일터에 도착했다는 신호. 또는 오늘도 잘했고, 앞으로도 잘할 거라는 응원가. 그런데 이젠 주식 수량으로 환산이 됐다.
출퇴근길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고속도로 통행료 왕복 삼천육백 원 × 25일 = 나스닥 3주.
"엄마, 오늘 빨리 와"라는 아이 말에 호응해 주려고 부렸던 나의 사치였던가. 밀리는 퇴근길 핸들에 붙어 브레이크를 밟았다가 뗐다가 반복하는 타는 목마름을 해결하려던 나의 가치는 어느새 미국 기술주의 가치로 환산됐다. 계산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이 학원비 삼십만 원 = 삼성전자 1주.
아이가 보내는 시간의 가치를, 나는 삼성전자의 가치로 바꿔 생각하고 있었다. 삶에는 원래 여러 종류의 투자가 있었다. 아이에게 쓰는 시간과 돈, 내 몸에 쓰는 돈, 관계에 쓰는 마음. 각각은 고유한 셈법과 고유한 시간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주식을 시작한 뒤, 나는 이 모든 투자에 같은 공식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수익률이라는 하나의 척도. 다른 셈법들은 그 앞에서 모두 소외됐다.
시세가 내 종목의 뜻을 다시 쓰던 그 방식 그대로, 이제는 내 하루의 뜻까지 다시 쓰이고 있었다. 내가 정말 두려운 건 손실이 아니다. 내 삶의 모든 투자가 주식의 공식 하나로만 계산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계산이 틀렸다고 말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계산기로 두드리면, 그건 맞는 말이니까. 그러나 그게 또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나.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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