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악취 없애고 문화재 살리고 우주부품 시험…정읍의 '전자 빔'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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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일하는 연구원들, 누구보다 건강합니다."
윤진문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방사선융합기술연구부 책임연구원은 "전자선 연구가 기초연구를 중심으로 많이 이뤄졌지만, 실제 사업화까지 연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기초연구부터 공정 개발과 평가까지 통합적으로 지원할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 책임연구원은 "우주로 나가게 되면 방사선 환경이기 때문에 위성 부품이 방사선에 견뎌야 한다"며 "위성 부품에 대한 전자선 영향 평가를 많이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첨단방사선연구소에서 가속하는 입자는 전자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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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keV~10MeV 한곳에…연구실 기술 산업현장까지 잇는다
"여기서 일하는 연구원들, 누구보다 건강합니다."
29일 전북 정읍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전자선실증연구동으로 들어서려는 취재진에게 연구진이 웃으며 건넨 말이다. '방사선'이라는 이름 때문에 위험하지 않으냐는 걱정부터 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연구진은 방사선 누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시설이라며 안심시켰다.

무거운 철문 너머에서는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해 물질에 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빔'의 쓰임새는 예상보다 다양했다. 공장 악취를 없애고 의료제품을 멸균한다. 문화유산을 복원할 소재를 만들고 위성 부품이 방사선을 견딜 수 있는지도 시험한다.
이곳의 핵심 임무는 연구실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기술을 실제 제품과 공정에 적용할 수 있는 규모로 키우는 것이다. 윤진문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 방사선융합기술연구부 책임연구원은 "전자선 연구가 기초연구를 중심으로 많이 이뤄졌지만, 실제 사업화까지 연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기초연구부터 공정 개발과 평가까지 통합적으로 지원할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악취 제거부터 문화재 복원까지
전자선실증연구동에는 200keV(킬로전자볼트), 2.5MeV(메가전자볼트), 10MeV급 전자가속기 3기가 들어섰다. 저·중·고 에너지 전자가속기를 한곳에 갖춘 국내 유일의 시설이다.
200keV급은 주로 산업현장의 악취와 대기오염 물질 처리에 활용된다. 전자선을 쏘아 축사 악취나 공장의 유기용제 냄새 등을 유발하는 물질을 분해하는 방식이다. 2.5MeV급으로 에너지를 높이면 기능성 소재 개발과 의료제품 멸균 등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진다.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소재도 만든다. 전자선으로 천연고분자의 물성을 조절해 오래된 직물 문화유산의 손상된 부분을 보강하는 식이다. 전자선실증연구동은 의료기기 품질경영시스템 국제표준 ISO 13485와 방사선 멸균 관련 ISO 11137-1을 기반으로 조사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우주부품 시험부터 산업현장 실증까지
10MeV급은 더 크고 두꺼운 제품을 처리하고 우주용 소재와 부품의 방사선 내구성을 평가하는 데 활용된다. 우주에서는 위성 부품이 각종 방사선에 노출되는 만큼 이를 견딜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윤 책임연구원은 "우주로 나가게 되면 방사선 환경이기 때문에 위성 부품이 방사선에 견뎌야 한다"며 "위성 부품에 대한 전자선 영향 평가를 많이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품 크기에 맞춘 설비도 갖췄다. 10MeV 장비는 1m 이하 제품은 컨베이어로, 1m를 넘는 대형 제품은 별도 이송장치로 옮겨 조사할 수 있다. 연구실 수준의 기술을 실제 제품 규모로 키우기 위한 장치다.
전자선실증연구동은 2018년 총사업비 190억원을 들여 준공됐다. 국비 130억원과 지방비 60억원이 투입됐으며 연면적 3864㎡, 지상 2층 규모다. 연구진은 기업의 제품과 소재를 대상으로 적정 에너지와 조사선량, 공정 조건을 찾아 실제 생산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증한다. 전고체 배터리와 백금 촉매 등 첨단소재 연구에도 전자선 활용을 넓히고 있다.

전자선 넘어 양성자까지…암 진단 동위원소 생산
첨단방사선연구소에서 가속하는 입자는 전자만이 아니다. 연구소 한쪽의 국산 사이클로트론은 양성자를 가속해 표적물질에 충돌시켜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든다. 이렇게 생산한 동위원소는 암과 심장·뇌 질환 등을 찾아내는 방사성의약품의 원료가 된다.
박정훈 한국원자력연구원 사이클로트론응용연구실장(책임연구원)은 "사이클로트론에서 동위원소를 만드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를 화학적으로 분리·정제하는 소재와 기법도 국산화하고 있다"며 "방사성의약품을 만들 수 있는 원료를 국산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연구소는 양성자와 여기서 만들어지는 중성자를 원자력·우주 분야의 소재와 부품 연구에 활용하는 방안도 넓혀가고 있다.

앞서 오간 '건강' 농담의 배경에는 방사선 안전관리 시스템에 대한 연구진의 신뢰가 있었다. 시설에는 방사선량을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장치와 이상이 발생하면 장비 작동을 막는 인터록이 설치돼 있다. 연구진은 시설 내부 방사선량을 자연방사선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자가속기는 전원을 차단하면 방사선 발생도 멈춘다.
악취 제거와 의료제품 멸균에서 문화유산 복원, 우주부품 시험과 암 진단용 동위원소 생산까지.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를 잇는 것은 가속된 입자와 방사선이다. 연구소는 이를 연구실 속 실험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산업으로 연결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정병엽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장은 "기존에 산업화돼 돈을 버는 방사선 기술은 더 고도화하고, 새로운 첨단기술을 개발해 첨단 방사선 산업이 대한민국에 정착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맡은 임무"라고 말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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