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밖에서 찾은 지도교수, 마음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김민섭 2026. 9. 30. 15: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연구'라는 단어를 써 본 지가 오래되었다. 대학원생이 되어 박사 과정을 수료하기까지 10여 년의 시간 동안 연구라는 단어는 늘 내 곁에 있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쓰면서 대한민국의 석박사 연구자들이나 시간강사들의 현실과 처우에 대해 말했고, 대학에서는 계속 공부하기 어렵게 됐고 나도 마음이 떠났다.

대학 바깥에도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고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든지 내 지도교수가 될 수 있겠구나.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0년 청춘 바친 대학 떠나 '대리사회'를 연구하기까지, 독립연구의 의미

[김민섭]

기자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에정연)는 2009년 설립 이후 17년 동안 기후·에너지 문제를 독립적인 시선으로 연구해 왔습니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을 기술과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과 지역, 불평등과 민주주의가 얽힌 사회적 전환의 문제로 바라보며, 현장의 목소리에서 질문을 찾고 더 정의로운 대안을 모색해 왔습니다. 설립 17주년을 맞아 <17년째, 정의로운 전환을 연구합니다>라는 이름으로 에정연과 만나고 함께 연구하고 활동해 온 이들의 이야기를 연속으로 싣습니다. 기후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정의로운 전환이 절실해진 지금, 왜 독립적인 기후·에너지 연구가 필요한지, 그 연구가 현장과 만나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연구자·활동가·노동자 등 다양한 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합니다. 이번 연속기고는 에정연의 독립연구를 지속하기 위한 후원캠페인과 함께합니다.
'연구'라는 단어를 써 본 지가 오래되었다. 대학원생이 되어 박사 과정을 수료하기까지 10여 년의 시간 동안 연구라는 단어는 늘 내 곁에 있었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나오면서 그 단어는 대단히 멀어지고 말았다. 아니, 없어졌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다시는 연구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동안 신주단지처럼 옆에 뒀던 자료들도 누군가에게 다 주고 나왔다. 그럴 것까진 없었는데 그렇게 했던 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책을 쓰면서 대한민국의 석박사 연구자들이나 시간강사들의 현실과 처우에 대해 말했고, 대학에서는 계속 공부하기 어렵게 됐고 나도 마음이 떠났다. 그렇게 아카데미에서의 삶에 작별을 고했다.

그때가 2015년 겨울이었는데, 나는 나오면서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둡니다'라는 글을 썼다. 그 글이 하루종일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던 것이 기억난다. 참 요란하게도 대학을 그만두었다. 나는 그 글의 끝에 다음과 같이 써 두었다.

"저는 이제야 비로소, 대학 바깥에 더욱 큰 대학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대학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그저 일부일 뿐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명제이지만, 저에게는 그간 저를 포위해 온 어떤 세계를 깨뜨리는 일이었습니다.

강의실과 연구실이 대학의 전유물이 아닌 것 역시, 뒤늦게 알았습니다. 인문학은 내 주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모든 이들은 존중할 만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있고, 누구라도 내 인생의 지도교수가 될 수 있다는 자각, 이러한 삶의 태도를 얻었기에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

누구든지 내 지도교수가...
▲ 93년생 김민섭씨의 결혼식 사진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를 통해 83년생 김민섭 작가가 날려버릴뻔 한(?)후쿠오카 비행기표를 양도받게 된 93년생 김민섭씨는 그린피스에서의 자원봉사를 계기로 결혼도 하고 환경학 공부도 이어가고 있다
ⓒ 김민섭작가
박사수료생 시절의 나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 새벽마다 맥도날드로 갔다. 거기에서 끼니를 때운 건 아니고, 한 달에 100시간 정도 물류상하차 아르바이트했다. 그걸로 4대보험을 보장받고 생활비를 벌었다. 일은 고되었으나 그건 그냥 하면 되는 일이었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느낀 게 있었다. 대학 바깥에도 강의실과 연구실이 있고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든지 내 지도교수가 될 수 있겠구나. 그동안의 나는 대학을 유일한 세계로 믿었다. 여기에서 나가면 나는 무너진 세계에 깔려 죽고 나의 삶도 끝나겠구나. 그러나 대학 바깥의 세계를 경험하고 타자의 시선으로 대학의 안을 바라보면서 그러한 마음들이 조금씩 달라졌다.

대학 바깥에도 새로운 세계가 있고, 나는 거기에서도 공부하며 살아갈 수 있겠구나. 연구라는 것이 대학의 연구자라는 자격을 얻고 학회지에 투고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나의 삶을 성장시키고 사회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는 공부를 해 나간다면, 그 역시 연구라고 할 수 있겠구나. 그러한 삶의 태도를 미약하게나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감각하게 되었기에, 나는 10년이라는 청춘을 함께했던 (그때는 '갈아넣었던'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대학에서 별다른 미련 없이 나오게 됐다.

그 이후의 삶은, 누군가가 보기엔 가혹한 것이었다. 내 삶을 돌아보니 별다른 자격증이나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대리운전이었다. 기사 등록을 하고 막상 운전하려니 겁이 났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어쩌지, 외제 차를 몰다 사고가 나면 어쩌지. 그런 마음을 조금 고쳐먹었다.

'나는 그동안 내 차만 운전해 왔다. 다른 사람의 운전석에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은 어떻게 비추어질까. 같이 공부하던 선배들도 교수들도 평생 못 볼 풍경을 보게 되겠지. 배우는 게 있다면 잘 기록해 봐야겠다.' 가방에 노트북과 물병 두 개를 넣고 대리운전을 나갔다. 그렇게 쓰게 된 책이 <대리사회>였다. 내가 운전하며 보게 된 사회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와, 대리운전하는 방법 등을 담았다.

그러면서 느낀 게 있다면, 이 사회가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과 같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주체적인 존재라고 쉽게 믿지만 어쩌면 이 사회가 가진 욕망을 나의 것이라고 믿고 그걸 대신 수행하는 대리인간으로, 이 대리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나는 개인의 주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다음으로 쓴 책은 <훈의 시대>, 시대가 가진 욕망이 개인에게 어떻게 가서 닿게 되는지, 우리가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어떠한 작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뤘다. 나름대로 나-사회-시대로 이어지는, 대학 바깥에서의 연구라고 생각하면서 쓴 연작들이었다. 독립연구라고 규정해도 될 듯하다. 그러면서 나는 '개인의 본성과 욕망'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고, 내 일상의 선택들이 내가 가진 선한 본성과 시대가 가진 욕망 사이의 갈등과 투쟁의 산물인 것을 알았다.

그즈음에, 그러니까 2017년 겨울에, 나는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라는 것을 했다. 계획해 둔 여행이 아이의 병원 일정으로 취소되었다. 그래서 후쿠오카행 왕복 항공권을 환불받으려 했으나 그 금액이 너무 적기에 이름이 같은 사람에게 양도가 가능하다고 해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글을 SNS에 올렸다. 나보다 열 살이 어린 93년생 김민섭씨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에게 숙박비, 교통비, 통신비 등을 후원해 주겠다고 했고,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는 그가 졸업 비용이 부족해 휴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등록금까지 마련해 주었다. 그를 도운 어느 후원자가 말했다. 제가 행한 나눔이 당신의 세상 여행을 통해 더 멀리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김민섭 씨는 말했다. 언젠가 03년에 태어난 김민섭씨를 찾아서 제가 반드시 여행을 보내 주겠습니다.

우리의 선택들

8년의 시간이 지났다. 93년생 김민섭씨는 지난봄에 나를 찾아왔다. 결혼하겠다는 사람과 함께였다. 그린피스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만났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참 좋았다. 어느 회사에서 연봉이 얼마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저는 그동안 잘 살아왔어요' 하고 말하는 듯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캐나다에 가서 환경학을 공부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 프로젝트 이후 어느 질문이 계속 따라다녔다.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지, 나를 도와준 사람들에게 어떻게 갚아야 하지.' 그리고 얼마 전 마음을 정했다. '기후 위기가 너무 심각해지고 있는데 내가 환경학을 공부해 그것을 좀 나아지게 하면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하는 건물을 디자인해야지, 그걸로 사람들의 삶에 기여해야지.' 나는 그의 마음이 참 좋았다. 우리는 이기심으로 인해 살아가는 듯하지만 사실 이타적인 고민을 늘 함께해 나가는 존재다.

언젠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함께 출연했을 때 유재석씨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의 삶은 그 프로젝트 이후 어떻게 달라졌느냐고. 그때 민섭 씨가 답했다.

"온전히 나만 잘되는 길을 선택할 때 조금 머뭇거려지기는 해요."

나는 그 머뭇거려진다는 표현이 참 좋았다. 우리는 내가 잘되는 길을 늘 고민하지만 결국 함께 잘되는 길을 고민하게 된다. 그 머뭇거림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다정한 선택에 이르는 유일한 존재가 된다.

이제 대학 바깥에서 단행본을 쓰는 것으로 나름의 연구를 해 나가고 있는 나는, 인간이 세상에 왜 태어났을지를 고민해 본다. 결국 내가 태어나기 이전보다 조금은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는 그러한 쓰임과 이유를 부여받고 지금의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을 파괴할 것인가.

시대의 욕망은 우리가 가진 악한 이기심을 부추긴다. 너만 잘되면 괜찮다고 그것이 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선한 이기심은 (우리가 이타심이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그것에 맞서 우리의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동참하게 된다.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지는 명확해 보인다. 나는 이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하는, 스스로의 삶을 연구해 나가는 모든 이들을 사랑한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ECPI)'와 함께하는 방법
📌연구소 홈페이지: https://ecpi.or.kr
📌후원회원 되기: http://ecpi.or.kr/ecpiplus
▲ 김민섭작가 개인의 삶과 노동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의 구조와 사람 사이의 연결을 기록해 온 작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등을 썼다.
ⓒ 김민섭 작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