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인권이야기] '무엇을 하고 싶나요?'에서 시작되는 자립

여현심 2026. 9. 30.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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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생각하던 한 이용자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한다.

앞서 소개한 대화는 서귀포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이용자들이 다음 달 활동을 계획하는 월례 회의에서 나눈 이야기다.

이러한 과정은 주도적인 의사표현과 선택을 기르는 실질적인 장애인 당사자의 자립생활을 위한 교육이 된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은 특별한 교육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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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심/ 서귀포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여현심/ 서귀포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우리 이번 달에 했던 활동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이 무엇이었죠?"

"원예요!", "시장 가기요!", "관공서 가기요!", "요리하기요!"

잠시 생각하던 한 이용자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한다.

"볼링장을 못 갔어요."

"그렇군요. 그럼 다음 달에는 볼링도 가볼까요?"

"네! 그리고 협동화도 만들고 싶어요."

앞서 소개한 대화는 서귀포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 이용자들이 다음 달 활동을 계획하는 월례 회의에서 나눈 이야기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 이용자들은 지난 한 달 동안 참여했던 활동을 함께 돌아보며 무엇이 즐거웠고, 무엇이 아쉬웠는지 스스로 이야기한다. 이어 다음 달에는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각자의 의견을 나누며 앞으로의 활동을 함께 계획한다.

얼핏 평범한 회의처럼 보이지만, 이 시간은 발달장애인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타인이 정해준 일정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성 형성의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시장에서 장을 보고, 친구와 운동을 즐기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우리를 한 단계 성숙하게 만든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일상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기회를 자주 제한받는다. 무엇을 먹을지, 어디에 갈지와 같이 일상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고르고 구매하는 과정까지 주변에서 대신 결정할 때가 있다. 이러한 경험이 반복되면 제 생각과 욕구를 표현하는 데 소극적으로 변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갈 힘을 잃게 될 수 있다.

결국, 발달장애인에게는 작은 일상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직접 결정하고 그 결과를 돌아보는 과정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지역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자립하기 위해 필요한 밑거름이 된다. 그래서 센터는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누가 결정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리 활동할 때는 이용자는 먹고 싶은 음식을 직접 고르고 장을 본다. 그렇게 직접 요리하고 식사 후 스스로 뒷정리까지 마무리한다. 활동을 마친 후에는 만족도를 평가하고, 다음에 만들고 싶은 음식도 직접 계획해 본다. 이러한 과정은 주도적인 의사표현과 선택을 기르는 실질적인 장애인 당사자의 자립생활을 위한 교육이 된다.

경제활동도 마찬가지다. 목적지를 방문하기 전에 가진 돈을 확인하고, 사고 싶은 물건과 예상 금액을 직접 적어본다. 물건을 구입한 후에는 실제 사용한 금액과 남은 돈을 계산하며 돈의 가치와 올바른 소비를 배운다. 미니 가상화폐를 활용한 교육과 북카페·분식점에서 직접 계산해 보는 경험도 경제적 자립을 위한 과정이 된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일회성 체험이 아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지역사회를 이용해 보는 경험은 일상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힘을 길러준다.

실제로 한 이용자는 주간활동서비스에서 처음 접한 *슐런 스포츠에 꾸준히 참여하여 본인의 재능을 찾기도 했다. 그 이용자는 이 활동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가능성을 발견했으며, 이는 실제 복지일자리 취업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이처럼 주간활동서비스에서의 작은 경험이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새로운 도전과 삶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문득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오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조금 더 오래 함께할 때 비로소 각자의 가능성과 강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는 단순히 낮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용자가 자신의 욕구에 따라 활동을 선택하고,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키워가는 자립생활의 과정이다. 경험은 이용자가 자신의 생각과 욕구를 표현하고 새로운 활동에 도전하는 기회가 된다. 결국 주간활동서비스는 이용자가 지역사회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과정이다.

제주에서는 현재 16개 기관이 주간활동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제는 발달장애인을 시혜와 보호의 테두리에 가두지 않고 지역사회의 당당한 주체로 마주해야 한다. 이들이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풍부하게 경험해 나갈 기회가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은 특별한 교육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무엇을 하고 싶나요?"

이 작은 질문에서부터 자립은 시작된다.

*슐런은 네덜란드 전통 놀이에서 유래한 종목으로, 나무 보드 위에서 퍽을 홀에 넣어 점수를 내는 스포츠이다. 신체 활동과 경쟁의 재미는 물론 안전성까지 갖추었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이 동등하게 즐길 수 있는 몇 없는 스포츠이다. 

<장애인 인권 이야기는...>

우리 사회는 장애인을 단순한 보호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장애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그렇다고 우대받아야할 벼슬도 아니다.

장애인은 장애 그 자체보다도 사회적 편견의 희생자이며, 따라서 장애의 문제는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제주장애인인권포럼의 <장애인인권 이야기>에서는 장애인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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