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의 선율 위로 흐르는 기억의 전시회…뮤지컬 ‘광화문연가’ [헬로스테이지]

박정선 2026. 9. 3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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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1분.

'기억의 전시관'이라는 공간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궤적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과정을 차분히 따라가며, 잘 쓰인 수필처럼 관객의 일상에 스며든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명우의 머릿속을 눈앞에 옮겨 놓은 듯한 이 무대는, 미화되고 편집되기 마련인 기억의 속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왜곡되고 편집된 기억을 지나, 삶의 마지막 순간에야 마주하는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직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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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까지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명우 역 손준호·이석훈, 월하 역 차지연·에녹·서은광 출연
'소녀' '옛사랑'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 명곡 릴레이

생의 마지막 1분. 심장 박동 소리가 멎은 자리를 익숙한 통기타 선율이 채운다.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죽음을 앞둔 작곡가 명우가 스무 살 시절부터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로 엮은 작품이다.

2017년 초연 이후 다섯 번째 시즌을 맞은 이번 무대는 복고풍 로맨스나 향수 자극에 머물지 않는다. ‘기억의 전시관’이라는 공간에서 한 사람이 자신의 궤적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과정을 차분히 따라가며, 잘 쓰인 수필처럼 관객의 일상에 스며든다.

뮤지컬 '광화문연가' 공연사진ⓒCJ ENM

작품을 끌고 가는 힘은 단연 세대를 아우르는 음악이다. ‘소녀’ ‘옛사랑’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 같은 익숙한 노래들이 억지스러운 전개 없이 서사의 적재적소에 배치돼 몰입을 높인다. 이번 시즌에는 고선웅 작가가 인물 관계를 다시 다듬고, 이지나 연출과 김성수 음악감독이 음악을 새로 손질했다.

무대는 화려한 세트 대신 겹겹이 쌓인 프레임과 조명으로 채워졌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명우의 머릿속을 눈앞에 옮겨 놓은 듯한 이 무대는, 미화되고 편집되기 마련인 기억의 속성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극의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은 기억 여행의 안내자인 인연술사 월하다. 초연부터 이 역을 지켜온 차지연은 성별과 나이의 경계를 지운 이 초월적 인물을 특유의 성량과 에너지로 빚어낸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 앞에서 능청스러운 연기로 극에 리듬을 불어넣다가도, 폭발적인 가창으로 굵직한 대목의 중심을 잡는다. 신과 인간 사이 어딘가에 있는 월하의 존재감은 차지연의 정교한 완급 조절로 설득력을 얻는다. 이번 시즌 월하는 에녹, 서은광이 함께 맡는다.

뮤지컬 '광화문연가' 공연사진 ⓒCJ ENM

월하의 안내로 과거를 되짚는 명우 역의 손준호는 중년 남성의 복잡한 내면을 현실감 있게 풀어낸다. 후회와 회한, 미련이 뒤섞인 감정을 과장 없이 표현해 관객이 인물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게 한다. 전곡이 대중가요인 주크박스 뮤지컬은 자칫 가요 모음집처럼 들리기 쉽다. 손준호는 이 노래들을 극적 긴장이 살아 있는 뮤지컬 넘버로 안정적으로 소화한다. 명우 역은 이석훈이 번갈아 맡는다.

주연의 활약은 조연들과 맞물리며 힘을 더한다. 명우가 평생 품어 온 첫사랑 수아와 현실에서 그의 곁을 지켜온 아내 시영, 그리고 찬란했던 시절의 과거 명우까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들의 호흡은 명우 한 사람의 시선에 갇힐 수 있는 이야기에 여러 겹의 관점을 더한다. 특히 미화된 첫사랑의 이면을 비추고, 현재의 삶을 버텨 온 주변 인물들을 그려내는 대목이 작품의 뼈대를 받친다.

뮤지컬 '광화문연가' 공연사진 ⓒCJ ENM

‘광화문연가’는 청춘의 풋풋한 시절에만 렌즈를 맞추지 않는다. 왜곡되고 편집된 기억을 지나, 삶의 마지막 순간에야 마주하는 선택과 책임의 무게를 직시한다. 찬란했던 환영을 걷어내고 결국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삶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명우의 여정은,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일상의 힘을 보여준다. 커튼콜에서 객석이 함께 부르는 ‘붉은 노을’은 그 여운을 한층 길게 끈다. 공연은 11월 15일까지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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