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떠난 ‘민중미술 간판’… 40년 후에도 살아 춤추는 판화

손영옥 2026. 9. 30.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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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의 간판' 오윤(1946∼1986)은 마흔에 세상을 떠났지만 신화가 돼 10주기마다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미술이 어떻게 언어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오윤에게 현실 참여적 미술의 수단은 판화였다.

그런 작품을 모아서 1986년 5월 인사동 '그림마당 민'에서 생애 첫 개인전 '오윤 판화전'을 했다.

1986년 그림마당 민 첫 개인전 오윤 판화전의 영상 기록(약 60분)도 최초 공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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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문화] 오윤 40주기 전시회 2제
동덕아트갤러리 ‘특별 판화전’
판화 전작 187종 한 자리에 첫 선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자료 기획전’
원판·습작·드로잉·노트 등 300여점
서울대 미대 재학 시절의 오윤. 한량이었던 오윤의 외삼촌은 유명한 춤꾼으로 학춤을 잘 췄는데, 그런 외가의 피를 물려받은 듯 오윤의 춤 동작이 유려하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민중미술의 간판’ 오윤(1946∼1986)은 마흔에 세상을 떠났지만 신화가 돼 10주기마다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20주기에는 미술평론가로서 생전 예술적 동지였던 김윤수씨가 관장으로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성대하게 열렸다. 30주기에는 민중미술 컬렉터 이호재 서울옥션 회장이 운영하는 가나아트에서 개인전이 열렸다.

40주기인 올해는 행사의 스케일은 다소 약해졌지만 내용은 더 드라마틱해졌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막 졸업한 20대 시절인 1973년 미대 친구 오경환 등과 함께 제작한 상업은행(현 우리은행) 서울 구의동 지점 테라코타(흙을 구운 벽돌) 벽화가 ‘살아 돌아온’ 것이다. 그간 가림막으로 가려져 소실된 줄 알았는데, 우리은행 측이 올해 건물을 매각해 소유주가 바뀌는 과정에서 여전히 건재한 사실이 알려졌다. 미술계에서는 ‘40주기 선물’이라 반겼지만, 앞으로 기존 건물이 철거되면 역사 속에 사라질 슬픈 운명이었다. 미술계에선 철거 위기에 놓인 ‘벽화 구출 운동’이 벌어졌다. 구의동 테라코타 보존 추진위원회와 한국민족미술인협회가 크라우드 펀딩과 기금 마련 전시를 했고, 덕분에 새로운 장소로 이전하기 위한 해체 작업을 지난달 무사히 마쳤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윤 40주기 전시가 두 곳에서 열리고 있어 뜻깊다. 우선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 ‘새김에서 각인으로’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10월 12일까지 열린다. 그간 기금 마련 운동을 주관해온 한국스마트협동조합에서 주최했다. 오윤 판화 전작 187종이 한자리에 모인 전시다. 전작이 한자리에 모인 건 처음이다.

부산 출신인 오윤은 ‘갯마을’을 쓴 소설가 오영수의 장남이었다. 박정희 정권이 종식된 1979년 오윤을 비롯해 김정헌, 임세택, 성완경, 원동식, 윤범모 등 여러 작가와 평론가들이 모여 현실 참여적인 미술을 부르짖으며 예술집단 ‘현실과 발언’을 결성했고, 1980년부터 지속적으로 함께 전시를 열었다.

김지하 시집 ‘오적’(1985)과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1984) 표지.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 제공

‘미술이 어떻게 언어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오윤에게 현실 참여적 미술의 수단은 판화였다. 판화를 고른 이유는 “더 많이 찍고 더 많이 나누기 위해서”였다. 책 표지에 그의 판화가 많이 실린 것도 그런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신생 출판사 청년사의 표지 삽화가 그의 판화로 장식됐고, 운동권 출판사로 불리던 ‘풀빛’에서 낸 시선집 표지에도 오윤의 판화를 볼 수 있다. 재수하던 시절에 만나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 김지하의 시 ‘오적’과 이야기 모음집 ‘밥’의 책 표지에도 오윤의 판화가 실렸음은 물론이다. 박정희 정권 때 투옥을 반복하며 탄압받았던 김지하는 오윤에게 미술이란 전통과 민족 형식을 계승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미술이어야 한다는 큰 가르침을 줬다.

오윤이 생애 마지막 1∼2년간 제작한 ‘무호도’(1985, 목판화, 35.0×25.6㎝). 동덕아트갤러리 제공

오윤은 1983년 간경화 진단을 받았고 이듬해 진도로 내려가 잠시 요양 생활을 했다. 진도에 머물던 시기는 수개월에 그쳤지만 판화의 조형 언어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진도에서 판소리와 육자배기를 듣고 북춤에 빠졌던 그가 서울로 올라와서 제작한 판화에는 춤추는 몸이 쏟아졌다. ‘무호도’ ‘춘무인춘무의’ ‘칼노래’ 등이 그 예다. 그런 작품을 모아서 1986년 5월 인사동 ‘그림마당 민’에서 생애 첫 개인전 ‘오윤 판화전’을 했다. 그는 삶의 마지막 불꽃을 피우듯 이 전시에 걸 40점을 쏟아냈다. 전시 두 달 뒤 오윤은 저세상 사람이 됐다.

‘춤 Ⅱ’(1985, 목판화, 29.2×23.3㎝). 동덕아트갤러리 제공

이번 전시에서는 분노를 뿜어내는 목판 특유의 칼맛이 서린 작품부터 한국 전통 춤과 가락이 유려한 말년의 ‘무호도’ ‘칼노래’까지 판화 세계의 변천을 읽을 수 있다. 성완경은 “오윤의 예술은 1980년대 민중미술이라는 틀 안에만 가두기 어려운 성취”라고 했는데 그 진면목이 느껴질 것이다.

평창동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는 소장 자료 기획전 ‘오윤’을 하고 있다. 유족이 기증한 컬렉션 860건 중 판화 원판과 습작, 드로잉, 노트 등 300여점을 작품 31점과 함께 공개하고 있다. 완성형으로서의 작품 자체보다는 창작자로서 고민하고 방황하고 노력했던 인간 오윤의 흔적과 체취를 만날 수 있다.

작품과 원판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선과 면, 판각의 방향과 힘 등 오윤 판화 특유의 조형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판화 원판에 직접 남긴 칼의 흔적과 여러 단계의 습작, 반복해서 그린 드로잉과 메모는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이어진 오윤의 조형적 탐구를 보여준다. 오윤은 재수 끝에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했지만 고답적인 대학 미술 교육에 실망해 휴학하고 6개월간 전국을 주유했다. 전통 미술과 동학의 현장인 안성, 공주, 정읍, 경주 등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남긴 드로잉과 노트에서는 ‘미술이 어떻게 언어로서의 기능을 회복할 것인가’를 탐구했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1986년 그림마당 민 첫 개인전 오윤 판화전의 영상 기록(약 60분)도 최초 공개되고 있다. 내년 2월 15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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