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준의 뉴스터치] 금메달의 알맹이는 은메달?

금메달을 깨물었다. 금이 갔다. 아이치 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여자농구대표팀 이해란(23·사진)이 전한 말이다.
금은 무른 금속이다. 단단함을 가늠하는 모스 경도가 2.5다. 순금을 손톱으로 누르면 자국이 새겨질 정도다. 은도 ‘말랑말랑한’ 금속이다. 금보다 세다지만, 모스 경도 2.7이다. 그러니 이해란의 치아도 못 당해낸 것.

금과 은. 금속의 세계에선 물러터졌지만, 역사에선 범상치 않은 흐름이 있다. 현재 금이 은보다 70배가량 비싸다. 그런데 기원전 3000년 무렵 이집트에서는 은의 가치가 금의 2.5배였다. 중세 시대엔 은이라면 안 되는 게 없었다. 근작 『은, 욕망의 세계』에 따르면 십자군 원정대가 군자금으로 쓰면서, 이후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한 은이 아시아에 퍼지면서 은은 결제 수단의 지위를 점점 잃었다. 중국은 은을 빨아들인 블랙홀이었다. 영국이 이를 만회하고자 아편전쟁을 일으켰을 정도다. 이때 중국은 일본에서도 은을 대거 들여왔는데, 일본의 고난도 은 제련법은 한국에서 건너갔다.
화학적으로 안정적인 금보다 반응성이 높은 은을 추출하는 기술이 어렵다. 그런데 조선에는 순도 높은 은을 제련해 낼 수 있는 고유한 핵심 기술인 ‘연은분리법’이 있었다(조선왕조실록 연산 9년 5월 18일). 양인 김감불과 노비 김검동의 합작품이었다. 하지만 연산군이 열어놓은 은광의 민간 채굴을 직후 ‘신정부’인 중종이 금지했고, 은 기술자들은 대거 일본으로 건너갔다. 게다가 연은분리법까지 유서종이 유출했다(중종 34년 8월 19일). 조선에 은을 달라던 일본은, 은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며 되레 조선에 역수출하게 됐다. 금과 은은 원소 성질이 변하지 않으니, 무한정 재순환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은도, 조선의 은도 현재 어디선가 다른 모습으로 쓰일 테다.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순은에 금도금을 입혔다. 무게 256g에 금은 1g. 0.4%만 금인 것이다. 그래도 이해란이 깨문 것은 우승자가 받는, 엄연한 금메달이다. 어느새 아시안게임이 막바지다.
김홍준 중앙SUNDAY 선임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동훈 허파에 바람 넣지마!”…그뒤, 돌연 2인자 띄운 尹 속내 | 중앙일보
- “딴동네 사는 형제 다 죽었어” 최고 장수촌, 매일 4시간 비밀 | 중앙일보
- 이치로 승부 다음날 감독 만났다…임창용 “함구하겠다” 왜 | 중앙일보
- 옷 벗겨진 여성 시신 또 나왔다…“벌써 10번째” 연쇄살인 공포 덮친 이곳 | 중앙일보
- 애인 아닌 다른 이성과 성관계…‘변태 성욕’ 1000명 모아 벌인 짓 | 중앙일보
- 유명배우 부부싸움에 경찰 출동…“아내 안 때렸다” 폭행설 부인 | 중앙일보
- 탈북민 출신 유튜버 “‘암살자(들)’ 北 선전 드라마와 흡사해 충격” | 중앙일보
- 유재석도 초대 못 받아, 변요한·티파니영 가족과 ‘비밀 결혼식’ | 중앙일보
- ‘뒷광고’ 의혹에 결제 내역 깐 한가인 “개인 비용으로 구매” | 중앙일보
- [단독] 양말 속 숨겨 훔친 K반도체 기술, 종착지 75%가 중국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