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은 비효율? 세계화의 논리가 뒤집혔다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임상훈 2026. 9. 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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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은 쏘지 않을수록 좋다. 방공호는 평생 한 번도 쓰지 않는 편이 낫다.

일어날 가능성은 작아도 한번 일어나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그 약점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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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안보의 적정가는 얼마인가... 중복을 다시 사들이는 세계경제

[임상훈 기자]

▲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인프라를 겨냥한 러시아의 공습으로 키예프에 화재가 발생했다.
ⓒ AFP 연합뉴스
미사일은 쏘지 않을수록 좋다. 방공호는 평생 한 번도 쓰지 않는 편이 낫다. 비상 발전기도, 전략비축유도 마찬가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끝내 사용하지 않았다면 가장 성공적으로 제 역할을 한 셈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이상한 물건들이다. 돈을 들여 사놓고 쓰지 않는 것이 목표다.

보험도 그렇다. 평생 불이 나지 않은 집의 화재보험료는 돌려받지 못한다. 그래도 보험에 가입한다. 일어날 가능성은 작아도 한번 일어나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 경제가 전에 없이 이런 보험을 많이 사기 시작했다.

지난 수십 년 세계화가 한 일은 정반대였다. 중복을 없앴다. 가장 싸게 만들 수 있는 곳에서 만들고, 재고를 줄이고, 하나의 공장으로 충분하면 두 번째 공장은 짓지 않았다. 같은 일을 두 번 하는 것은 낭비였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됐고, 유럽은 러시아의 값싼 가스를 이용했다. 첨단 반도체 생산은 대만과 동아시아에 집중됐다. 기업은 재고를 줄이고 공급망을 길고 정교하게 만들었다. 중복을 없앤 만큼 생산비는 내려갔고 소비자는 더 싼 상품을 얻었다.

문제는 효율을 위해 없애버린 중복이 위기가 닥쳤을 때는 안전망이었다는 데 있었다. 한곳에 집중할수록 평상시 비용은 줄었지만, 그 한 곳이 멈췄을 때 대신할 곳도 줄어들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소수 공급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수입 품목의 집중도는 1990년대 후반보다 2020년대 초 크게 높아졌다. 효율을 높이는 과정에서 의존도 함께 커진 것이다.

하나뿐인 것이 위험해졌다

코로나19는 그 약점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한 지역의 공장이 멈추자 먼 나라의 생산라인까지 섰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값싼 러시아 가스는 유럽 경제의 장점에서 약점으로 바뀌었다. 미중 갈등 속에서 반도체와 희토류는 더 이상 평범한 상품만이 아니게 됐다. 홍해와 호르무즈의 위기는 가장 짧고 효율적인 항로 역시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기업과 정부가 던지는 질문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어디에서 가장 싸게 만들 수 있는가'를 물었다. 이제는 '거기가 멈추면 어디에서 대신 가져올 수 있는가'를 묻는다.

세계화가 해체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OECD의 최근 분석을 보면 세계 생산에 사용되는 외국산 상품과 서비스의 비중은 2024년에도 실질 기준으로 역사적 고점 부근에 있다. 세계는 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가장 싸고 빠른 길 하나면 충분했다. 이제는 그 길이 끊겼을 때 사용할 두 번째 길까지 필요하다.

세계화가 보험료를 내기 시작했다
▲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1차 유엔 총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외무장관이 연설하고 있다.
ⓒ AP 연합뉴스
그래서 세계는 다시 하나씩 더 만들기 시작했다. 중국에 집중됐던 생산 시설을 미국과 유럽에도 짓고, 반도체 공장과 액화천연가스(LNG) 터미널, 에너지 저장시설을 늘린다. 핵심 광물의 공급처를 분산시키고 항로가 막힐 경우를 대비해 우회로를 확보한다. 유럽은 탄약과 미사일 생산라인도 다시 늘리고 있다.

예전의 경제학으로 보면 중복이고 비효율이다. 지금의 안보 논리에서는 보험이다. 중복은 낭비에서 보험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보험료는 작지 않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2025년 세계 군사비는 2조 8870억 달러(3918조 2000억 원)에 이르렀다. 11년 연속 증가했고 10년 전보다 실질 기준 41% 늘었다. 전쟁이 없다면 다른 곳에 쓸 수도 있었던 막대한 자원이 안전을 확보하는 데 들어가고 있다.

군사비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공급망을 여러 개 유지하려면 공장을 더 지어야 하고, 에너지 공급을 다변화하려면 발전시설과 저장시설, 송전망이 더 필요하다. 인공지능(AI) 경쟁도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막대한 전력을 요구한다.

최근 주요국의 장기금리가 높은 배경을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부채와 물가 전망에 더해 정부와 기업이 동시에 장기자금을 찾고 있다. 돈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돈을 쓰겠다는 곳이 많아졌다.

지난 시대의 세계화가 '가장 싼 하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면 지금의 세계화는 '조금 비싸더라도 두 번째'를 확보하는 과정이 되고 있다. 연결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연결이 끊기지 않도록 돈을 더 쓰는 것이다. 세계는 효율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효율의 일부를 안전을 위한 보험료로 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보험은 많이 들수록 좋은 것일까.

안전에는 상한선이 없다

OECD가 공급망을 대규모로 국내에 되돌리는 상황을 모형으로 계산했더니 세계 무역은 18% 이상, 세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5% 이상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공급망을 국내로 옮겨도 절반이 넘는 나라에서 GDP의 안정성이 오히려 나빠졌다. 모든 것을 자기 나라 안에 두는 것이 반드시 더 안전한 것은 아니다.

안전에는 자연적인 상한선이 없다. 미사일을 100발 갖는 것보다 200발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공급처도 둘보다 셋이면 더 안심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전을 조금 더 얻을 때마다 비용도 붙는다. 결국 어느 위험은 감수하고 어느 위험에는 돈을 쓸 것인지, 어디까지 보험료를 낼 것인지 정해야 한다.

그 판단을 함께 조정할 세계의 능력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국제기구들은 협력이 더 필요한 시점에 세계 질서는 분절되고, 한나라의 안보조치가 다른 나라의 대응을 불러 비용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 비용은 세금과 국가부채, 높은 상품 가격과 금리로 돌아온다.

보험은 삶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다. 그런데 그 보험료가 정작 지키려던 삶을 잠식하기 시작한다면, 이제는 얼마나 더 안전해질 것인가 보다 무엇을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비용을 치를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런 판단을 함께 할 세계의 리더십이 지금 국제사회에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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