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K우먼]"극심한 통제 등 교제폭력 전조증상…다 살릴 수 있던 사건들"

지혜진 2026. 9. 2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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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여성·아동·청소년 등 취약계층과 관련한 사건에 목소리를 내온 인물이다. 교제 폭력, 양육비 미지급 문제 등을 주로 다뤘으며 실제 사건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등 학계와 현장을 활발히 오가고 있다.

교제 폭력 피해자들이 목숨 걸고 신고를 하더라도 가해자 협박 등에 굴복해 고소 철회를 하는 일이 많다.

최근에는 가정폭력 이혼 고위험 피해자의 주소 보호와 안전한 송달체계 구축 방안,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이 드러낸 '위치추적 스토킹'의 법적 공백 등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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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사건 전 엄청난 통제·목조름 피해"
"확인만 해도 고위험군 판단 가능"
"누구든 학대·폭력 당하지 말아야"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여성·아동·청소년 등 취약계층과 관련한 사건에 목소리를 내온 인물이다. 2017년 입법조사관으로 일을 시작한 이래로 현재까지 총 109개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교제 폭력, 양육비 미지급 문제 등을 주로 다뤘으며 실제 사건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등 학계와 현장을 활발히 오가고 있다.

허 조사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학대나 폭력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당연한 생각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임금 격차 때문에 조금 덜 좋은 집에 살고 조금 덜 좋은 걸 입을 수는 있지만 학대나 매를 맞는다는 건 인간으로서 권리를 갖추지 못한 상황"이라며 "사회가 여성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서 훌륭한 인재로 키워냈는데 살해당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관련 분야를) 중요한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고 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이 국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최근에는 교제 폭력과 교제 살인의 원인과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전조 증상을 분석한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교제 살인은 절대적으로 예방이 가능한 범죄"라고 규정한다.

허 조사관은 교제 살인 사건을 검토하다 보면 "다 살릴 수 있던 사건"이라며 "만약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발생했다면 그분들의 운명도 바뀔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건 그냥 국가가 실패한 것"이라며 "여자들을 살리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도 그는 법과 제도를 잘 정비해서 죽지 말아야 할 여성들의 죽음을 막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국회입법조사관으로서 주요 직무는.

▲우선 의원실에서 질의가 오면 답변하는 업무가 많다. 가장 많은 요청은 외국에서는 어떻게 법과 제도가 운영되고 있는지, 우리나라는 어떤 법을 개정해야 하는지 등이다. 이외에도 의원실에서 묻기 전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법과 제도와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현장을 찾아가는 건 조사관 개인의 선택인데, 저는 주로 취약계층을 다루다 보니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 많다.

- 기억에 남는 입법 사례가 있다면.

▲보호시설에서 퇴소하는 미성년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이 자립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감춰진 피해자들:미성년 친족성폭력 피해자 특별지원 보호시설 지원업무 실태 및 개선과제'(2024)라는 보고서였는데, 당시에 이들은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퇴소자립지원수당'을 못 받았다. 문제는 부모가 가해자인 경우가 71%에 달할 정도로 대다수였다는 점이다. 이후 법이 개정되어 미성년 친족성폭력 보호시설에서 퇴소하는 청소년들도 자립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다.

-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는 어떤 책인가.

▲현장에서 여러 방송프로그램 인터뷰를 많이 하다 보니까 특정 사건들을 좀 자세히 알게 됐다. 피해자가 살해당한 사건들을 들여다보니, 현행법 하에서는 이들을 구조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에 처한 많은 사람이 책을 통해서 위험 신호를 빠르게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책을 쓰게 됐다.

-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나.

▲방송에도 많이 나온 사건인데 사망 전에 연인에게 지속적인 폭행을 당하며 경찰에 11차례나 신고했으나 사망한 19살 고(故) 이효정씨 사건 등 실제 사건에서 피해자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주변인들은 어떤 걸 목격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좀 구체적으로 담았다. '친밀한 폭력'이라 불리는 범죄에 대한 편견이 굉장히 심한 편이다. '왜 그런 나쁜 남자를 만났냐'에서부터 '얘기를 하지 왜 그랬냐', '왜 가해자를 화나게 했냐', '왜 안 헤어졌냐' 등등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 많다. 우선은 피해자에 대한 깊은 오해와 편견을 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이 국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 '비치명적 목조름'이 중요한 전조 증상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엔 잘 안 알려진 중요한 징후 중 하나다. 외국에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사망 검토를 하는데, 살해당한 많은 피해자가 직전에 엄청난 통제 그리고 목조름 피해가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피해자들 상당수가 이 목조름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아직 우리나라에선 경찰 등이 주의 깊게 물어보지 않는다. 책에 나온 사례에서도 피해자들이 공통으로 경험했다. 수사 기관이 피해자에게 '혹시 목 졸린 적 있느냐'라는 것만 물어봐도 고위험군이라는 걸 판단할 수 있다.

-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강압적 통제를 범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

▲통제는 비신체적 학대다. 근데 우리나라 경찰들은 육안으로 신체적 부상이 확인되고, 병원에서 진단서가 나올 정도로 상해를 입어야 피해자라고 여긴다. 근데 대부분의 경우 (폭행 피해를 입기) 직전에 아주 극심한 통제가 있다. 다른 사람하고 못 만나게 하고 일일이 다 허락받도록 하고, 어디에 있는지 보고하도록 감시하는 식이다. 통제가 극심한 경우에도 고위험군이라고 본다. 근데 아직 그런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열 몇 번씩 신고한 피해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 친밀한 관계인 만큼 범죄로 분류하는 기준이 모호할 수도 있지 않나.

▲중요한 기준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예를 들어서 누구를 만나지 말라던가, 어떤 옷을 입지 말라는 등 어떤 요구를 받았을 때 싫다고 거절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면,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시 겪게 될 괴롭힘과 고통을 두려워하여 꼼짝없이 수긍해야 한다면 학대 상황에 놓인 거라 봐야 한다.

- 입법적으로 가장 필요한 부분은.

▲가정폭력 처벌법을 전면개정하여 교제 폭력을 규율해야 한다. 현재 교제 폭력은 형법에서 다룬다. 형법상 폭행이나 협박은 반의사불벌죄로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교제 폭력 피해자들이 목숨 걸고 신고를 하더라도 가해자 협박 등에 굴복해 고소 철회를 하는 일이 많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이 국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 현장에서 교제 폭력 사건을 많이 접하는데 최근 추이는.

▲더 늘고 있고, 중대범죄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더 심각해 보인다. 교제폭력이라고 해서 물리적 폭력 피해만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장에서 접하는 사건은 대부분 여러 유형의 피해가 중첩되어 있다. 가해자는 상대의 일상과 인간관계를 통제하고, 연락과 위치를 감시하며,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동의 없이 촬영하고, 그 촬영물을 빌미로 협박한다. 심한 경우 성매매를 강요하거나 금전을 착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는 개별 범죄로 나누어 보면 폭행, 협박, 강간, 불법촬영, 강요, 사기·공갈 등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피해자가 실제로 겪는 것은 하나의 관계 안에서 지속되는 지배와 통제다. 통제가 견고해질수록 피해자는 관계를 벗어나기 어려워지고, 벗어나려는 시점에 폭력의 위험은 가장 커진다. 이별 통보나 신고, 접근금지 이후에 중대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되는 이유다.

-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이 한국 사회 성평등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보나.

▲이런 통제가 가능한 배경에는 오랜 세월 사회에 암묵적으로 깔려 있던 문화적 인식이 있다고 본다. 여자는 남자의 말을 따라야 하고, 결혼한 여자는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오래 자리해 왔다. 일반적으로는 타인이 나에게 명령한다고 해서 복종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그런데 남자친구나 남편이 그렇게 하면 '그럴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면서 경계가 무뎌진다. 미디어도 이를 강화해 왔다. 함부로 대하는 남성을 두고 사실은 애정이 깊은데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것이라고 그려 온 서사가 대표적이다. 통제를 사랑의 다른 표현으로 읽게 만드는 이런 인식이 국민 전체를 다소 가스라이팅 해 온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자 자신도 자신이 겪는 일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주변에서도 개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토대가 되어 왔다.

- 젠더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젠더 갈등이 심화할 경우 교제 폭력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과거와 달리 공식적으로 여성을 차별할 순 없는데, 그러다 보니까 내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적인 관계에 있는 여성만큼은 마음대로 하겠다는 비뚤어진 욕구가 있을 수 있다.

- 비슷한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취약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살피고, 그들을 돌보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 일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본다.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나아가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만큼 큰 보람도 얻게 될 것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쳤다. 현재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으로 재직하는 한편,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전문위원과 성평등가족부 정책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정폭력 이혼 고위험 피해자의 주소 보호와 안전한 송달체계 구축 방안」,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이 드러낸 '위치추적 스토킹'의 법적 공백」 등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성평등 진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6년 성평등가족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지혜진 기자 heyj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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