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서 보는 세계] 10년째 인기 ‘한국식 매운라면’ 베트남 식탁에 자리 잡을까

2026. 9. 29. 06:34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베트남에는 '미 까이 한 꾸옥(Mì cay Hàn Quốc)'이라는 음식이 있다.

미 까이에 주로 사용되는 라면은 베트남 현지에서 생산되는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이다.

이것은 음식의 정확한 원산지를 나타낸다기보다 당시 베트남 사람들이 받아들인 한국 음식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한류의 확산과 함께 강렬한 매운맛은 한국을 상징하는 음식의 기호가 되었고, 국수에 친숙한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의 라면도 쉽게 받아들였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라영순 역사학자
한국 음식 상징이 된 ‘강렬한 매운 맛’ 
인스턴트 라면 ‘미 까이 한 꾸옥’ 인기 
7단계 매운맛 도전 젊은 세대에 유행 
100년 넘은 ‘퍼’의 길 따라갈지 관심 

베트남에는 ‘미 까이 한 꾸옥(Mì cay Hàn Quốc)’이라는 음식이 있다. ‘한국식 매운 라면’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막상 음식을 받아보면 한국 사람에게도 낯선 모습이다. 7단계의 매운맛 중 하나를 선택한 빨간 국물의 라면에 고기나 새우, 오징어, 어묵, 버섯과 채소 등이 풍성하게 들어 있다. 이름에는 분명 ‘한국’이 들어가 있는데 정작 한국에서는 이와 똑같은 음식을 찾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 ‘한국식 매운 라면’은 과연 어느 나라의 음식일까.

미 까이에 주로 사용되는 라면은 베트남 현지에서 생산되는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이다.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일부 가게에서는 자체 생산한 면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조리법이다. 일반적으로 라면에 포함된 분말 수프 대신 식당마다 별도로 만든 매운 국물을 사용한다. 김치를 이용해 새콤한 맛을 내기도 한다. 한국식 라면의 ‘면’은 가져왔지만 한 그릇의 음식으로 완성하는 방식은 달라진 것이다.

미 까이가 베트남에서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매운맛을 7단계로 나누고 누가 더 높은 단계까지 먹을 수 있는지 도전하는 것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단순히 매운 라면을 먹는 것을 넘어 더 강한 매운맛에 도전하는 경험까지 음식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이름에 붙은 ‘한 꾸옥(Hàn Quốc)’, 즉 ‘한국’은 흥미롭다. 이것은 음식의 정확한 원산지를 나타낸다기보다 당시 베트남 사람들이 받아들인 한국 음식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한류의 확산과 함께 강렬한 매운맛은 한국을 상징하는 음식의 기호가 되었고, 국수에 친숙한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의 라면도 쉽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라면의 조리법을 그대로 따르는 대신 자신들의 입맛과 방식으로 재창조했다. 이것이 ‘미 까이’의 시작이었다.

베트남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미 까이 한 꾸옥’(오른쪽)은 베트남 현지에서 생산되는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을 사용하지만, 별도로 만든 국물에 다양한 재료를 넣어 베트남식으로 재창조된 음식이다. 왼쪽은 호찌민에서 주로 먹는 남부식 쌀국수인 ‘퍼’다. 필자 제공

사실 베트남 음식의 역사에서 이처럼 외부의 것을 받아들여 새롭게 만들어낸 사례는 낯설지 않다. 오늘날 베트남을 대표하는 음식인 쌀국수, 즉 ‘퍼(phở)’도 그런 과정의 소산이다. 20세기 초 북부 베트남에서 등장한 퍼의 기원을 하나의 계보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베트남의 오랜 쌀국수 문화와 중국계 음식문화의 영향이 거론되는 한편, 프랑스 식민 지배 아래에서 쇠고기 소비가 확대된 것도 퍼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설명된다. 중요한 것은 어느 나라 음식이 퍼의 ‘원조’였는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음식문화와 재료가 식민시기의 베트남이라는 공간에서 만나 새로운 음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외부의 영향만으로 퍼가 베트남 음식이 된 것은 아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쇠고기와 쇠뼈를 자신들의 쌀국수와 결합하고 여러 향신료를 더하면서 자신들만의 맛을 만들어 갔다. 특히 퍼의 국물을 맑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조리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쇠뼈와 고기를 오랫동안 끓여 깊은 맛을 우려내면서도 거품과 기름을 걷어 국물이 탁해지는 것을 막았다. 깊은 맛을 품으면서도 맑고 깔끔한 국물을 추구한 것이다. 20세기 전반 베트남의 문인 타익람(Thạch Lam)도 좋은 퍼는 쇠뼈로 우려낸 국물이 맑고 단맛이 나야 한다고 묘사했다. 퍼의 맑은 국물은 단순한 조리법을 넘어 오랜 시간 축적된 베트남의 음식 미감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퍼는 탄생한 뒤에도 변했다. 1954년 분단 이후 이주민을 통해 남부에서도 퍼져나가며 지역의 입맛과 재료를 받아들였다. 본래의 국물을 강조하고 고명을 비교적 절제했던 북부와는 달리 남부에서는 단맛을 더하고 숙주와 다양한 향채를 곁들이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오늘날 우리가 ‘베트남 전통음식’이라고 부르는 퍼는 처음부터 완성된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과 내부의 변화가 오랜 시간 겹치면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퍼가 그렇게 만들어졌다면, 미 까이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미 까이는 아직 ‘외래’의 흔적이 선명하다. 사용하는 면은 한국식이고 무엇보다 이름에 여전히 ‘한국’이 붙어 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젊은이들의 유행으로 주목받았던 음식이 10년 가까이 사라지지 않고 베트남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물론 100년 넘는 시간을 살아온 퍼와 이제 10년 남짓 된 미 까이를 같은 위치에 놓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베트남 사람들이 이 음식을 어떻게 바꾸어 갈 것인가가 아닐까. 지역마다 다른 재료와 조리법이 생기고, 식당에서 사 먹는 음식이 가정에서도 자연스럽게 만들어 먹는 음식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훗날 미 까이를 어린 시절 친구들과 먹었던 맛으로 기억한다면 그것은 더는 한때의 유행 음식만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름이다. 언젠가 ‘미 까이 한 꾸옥’에서 ‘한 꾸옥’이 떨어져 나가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한국 음식인지 베트남 음식인지를 더 이상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 순간이 온다면, 외래의 음식이 한 사회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징표가 되지 않을까.

퍼도 처음부터 전통 음식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재료와 맛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입맛에 맞게 바꾸어 다음 세대에 전하면서 오늘의 퍼가 되었다. 미 까이가 같은 길을 걸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 세기를 지나온 퍼의 국물은 맑다. 이제 10년을 지난 미 까이의 국물은 여전히 붉고 맵다. 그 사이에 놓인 것은 단순한 국물 색깔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의 음식이 한 사회의 것이 되어가는 시간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라영순 역사학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