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메모리 공정, 100% 삼성 것…기술 넘기자 쫓겨나” 유출범 후회

" 삼성전자에 죄송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
삼성전자의 18나노 D램 국가핵심기술을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 유출·사용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전 삼성전자 부장 전모씨가 지난 9일 법정에서 처음으로 공개 사과했다. 1심까지 혐의를 부인했던 전씨는 항소심 들어 입장을 바꿨다. 그는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에서 “삼성전자가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라며 “솔직하게 자백하는 게 재발 방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전씨에게 삼성전자는 28년을 몸담은 평생직장이었다. 지방의 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1987년 입사해 반도체 공장 설비 투자비를 산정하는 업무를 맡았다. ‘삼성맨’이라는 자부심도 강했다고 한다. 함께 일하던 미국인 엔지니어를 고향까지 데려가 식사한 적도 있었는데, 당시 “전씨네 아들은 양키하고 말도 한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고향에선 자랑거리였다고 한다.
‘삼성맨’ 이름표를 떼어낸 건 2015년이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당시 메모리 업황이 나빠지자 인력들이 회사를 떠났고, 그 중 상당수가 중국 기업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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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후 2배·30억 보상, ‘옐로마운틴’ 암호명
실제 CXMT는 파격적인 보상을 앞세웠다. 전씨도 CXMT 최고기술책임자(CTO)의 통역사였던 주모씨의 제안을 받고 설비투자담당으로 중국 허페이로 건너갔다. 삼성전자 출신 엔지니어도 잇따라 합류했다. 이들에겐 기존 연봉의 최소 세후 2배 이상이 제시됐고 일부는 최대 30억원까지 보장받았다고 한다.
전씨에 따르면 CXMT가 처음 만든 18나노 D램 공정 레시피(PRP·Process Recipe Plan)는 완성도가 낮았다. PRP는 반도체를 어떤 장비에서 어떤 순서와 조건으로 만들지를 담은 ‘제조 레시피’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삼성전자에서 18나노 D램 공정을 경험한 공정설계(PA·Process Architecture) 엔지니어 박모씨가 합류한 뒤였다. 박씨는 퇴사 전 관련 공정 정보를 노트에 손으로 베껴 적은 것으로 조사에서 밝혀졌다. 박씨 합류 뒤 615개에 달하는 CXMT의 PRP 공정이 빠르게 완성됐고 이후 순서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CXMT는 2018년 1조5000억원 규모의 ‘원패스 투자’를 단행했다. 원패스 투자란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할 때 목표 생산능력에 필요한 장비를 한꺼번에 발주·투입하는 방식이다. 전씨는 “성공이 보장되는 확실한 PRP가 아니면 원패스 투자는 결정할 수 없다”며 “삼성전자 PRP라고 100% 확신했다”고 증언했다.

‘삼성 베끼기’과정은 은밀했다. CXMT 임원진 사이에서는 삼성전자를 ‘옐로마운틴(黃山)’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렀다. 일부 한국인 직원은 CXMT가 세운 비료 회사 명의로 입사하거나 다른 도시를 거쳐 허페이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런 불법 행위는 2022년 꼬리가 잡혔다. CXMT 1기 개발실장인 김모씨가 다른 국산 반도체 증착장비 기술 유출 사건에 연루되면서다. 서버 압수수색 과정에서 삼성전자 18나노 D램 PRP를 촬영한 사진이 담긴 ‘자료 사진.pptx’ 파일이 발견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김씨가 구속되자 중국에 있던 박씨는 전씨에게 “종이 출력물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는데 찍었다”며 개발실장을 원망했다고 한다. 박씨는 이후 잠적해 현재 중국에서 도주 중이다. 전씨와 2기 개발실장 양모씨 등 10명도 잇따라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기술유출범의 말로는 토사구팽”
전씨를 제외한 피고인 대부분은 PRP가 불법 반입됐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맞서고 있다. 삼성전자 출신 엔지니어들이 각자의 경험과 기억을 모아 공정을 개발했다는 주장이다. 한 피고인 측 변호인은 “한국인 직원끼리 수시로 술자리를 갖고 메신저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눴는데 PRP 절취와 관련한 직접적인 대화나 소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거액의 보상을 좇아 중국으로 향했지만 끝은 화려하지 않았다. 업계에 따르면 고액 연봉을 받고 중국 반도체 기업으로 옮긴 한국인 엔지니어 상당수는 핵심 기술 이전과 공장 구축이 끝난 뒤 3~4년 만에 회사 밖으로 밀려났다. 귀국 뒤에는 수사로 업계 재취업 길이 막혀 무직으로 지내거나, 가족에게조차 수사 사실을 숨긴 채 재판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 출신 김서곤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기술유출범의 말로는 토사구팽과 끝없이 이어지는 수사·재판”이라며 “기업과 국가뿐 아니라 가담자 스스로의 인생까지 파멸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김수민·이영근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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