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륜의 시학으로 건져 올린 생의 내밀한 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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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을 중심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온 김정순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웃음도 장난도 없이'(도서출판 사이펀, 사이펀현대시인선 33)를 펴냈다. 1947년생으로 올해 팔순을 맞은 김 시인의 이번 시집은 오랜 세월 벼려온 '연륜의 시학'을 바탕으로 생의 굴곡과 나이 듦의 감각, 사회의 낮은 곳을 내밀한 서정으로 풀어낸 것이 특징이다.
김정순 시인은 1990년 등단해 시집 '겨울 강변에서', '불면은 적막보다 깊다', '변명'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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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사천 강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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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순 시인은 최근 네 번째 시집 ‘웃음도 장난도 없이’(도서출판 사이펀, 사이펀현대시인선 33)를 출간했다. |
| ⓒ 뉴스사천 |
김정순 시인은 1990년 등단해 시집 '겨울 강변에서', '불면은 적막보다 깊다', '변명' 등을 펴냈다. 무용가이자 고수로 몸과 소리의 세계를 넘나들며 지역 문화예술에 참여해 온 이력이 있지만, 그는 언제나 담담히 '시인'으로 불리기를 청한다. 젊은 날 치열하게 '시를 좇아다녔다'면, 팔순에 이른 지금은 '시가 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는 마음으로 시편들을 다듬어왔다.
시집 제목이기도 한 표제작 '웃음도 장난도 없이'는 늘 위안이 되어주던 일상의 자연(나무)을 통해 문득 마주한 생의 서늘한 고독을 포착한다. 너그럽게 품을 내어주던 나무가 "오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웃음도 장난기도 없이/ 서늘한 바람 속에서/ 홀로/ 쓸쓸했다"고 읊조리는 대목은 시간의 무게를 감내하는 노년의 정직한 초상과 겹쳐진다.
김정순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읽을 줄 모르는 가사는 나를/ 외롭게 하네/ 들을 줄 모르는 노래는 나를 슬프게 하네"라며 "텅 빈 페이지만 남아서/ '시'라고 쓰고/ '사람'이라 말하고/ 나는 다시 닫힌 입, 닫힌 눈으로 캄캄해지네"라고 적었다. 시와 사람을 동의어로 두며 생의 고독과 침묵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태도다.
시집 해설을 쓴 강순 문학평론가(시인·문학박사)는 이번 시집을 '바닥의 감각과 하강의 궤적'이라고 평했다. 강 평론가는 "김정순의 이번 시집은 사물화된 상처의 바닥이자, 하강하는 생의 외곽 지대에서 서막을 연다"며 "감상적 연민에 머물지 않고 냉정하게 유지하면서도 그 내부의 고통에 깊이 이입한다. 그 거리는 냉담함이 아니라 삶을 함부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엄정한 절제"라고 짚었다.
또한 강순 문학평론가는 배달 오토바이의 위태로운 생존 사투를 다룬 '속도에 대한 변명', 백화점 스카이라운지의 높음과 사십 계단 골목의 낮음을 대비한 '사십 계단을 넘어가다' 등을 두고 "자본주의와 문명의 그늘 아래 내몰린 존재들의 생을 응시하는 시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병마와 노화로 쇠락해 가는 육체를 낡은 바지에 빗댄 '떨켜' 등을 언급하며 "냉정한 응시를 통해 신체의 하강과 무력함을 사물성의 미학으로 승화시켰다"고 덧붙였다.
추천사를 쓴 유홍준 시인은 시인이 낡은 염색 목도리를 바느질 몇 땀으로 개조해 멋진 조끼를 만들어 입던 일화를 전하며, 이번 시집을 '리폼의 시'라고 평했다. 유 시인은 "한 편의 시는 수없이 오려내고, 붙이고, 덧대고,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라며 "화려한 수사나 유희에 기대지 않고 마침내 '주머니가 없는 옷'을 가지시게 된 걸 축하드린다. 이 명료하고 명징한 정중동의 시들이 사실은 오래 매만지고 궁리하고 개조한 '리폼의 시'라는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표제작 '웃음도 장난도 없이' 전문이다.
습관처럼 걷던 그 길의
나무가
너그럽게 가슴 다독여 주기도 하던 그 나무가
불러낼 친구가 없거나
가고 싶어도 갈 곳이 없거나
마음 빈자리 많아 헤매고 싶을 때
긴 손가락 펼쳐 흔들어 주기도 하고
열매 하나 콩 이마에 알밤 멕이기도 하던 그 나무가
오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웃음도 장난기도 없이
서늘한 바람 속에서
홀로
쓸쓸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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