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사랑' 마지막 장면에서 발견한 작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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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학은 오래전부터 사랑은 계급을 넘을 수 있는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한가와 같은 <가능한 사랑>이 던지는 물음들과 비슷한 질문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능한 사랑>의 인물들은 계급의 경계를 넘어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이 영화는 단순히 '사랑(Love)'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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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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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
| ⓒ 넷플릭스 |
영화에서 말하는 계급, 노동 그리고 카메라의 윤리에 관한 이야기가 해외와 국내에서 적지 않게 오갔다. 그러나 나는 고전을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를 조금 오래된 책들 곁에 놓아보고 싶었다. 문학은 오래전부터 사랑은 계급을 넘을 수 있는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가능한가와 같은 <가능한 사랑>이 던지는 물음들과 비슷한 질문을 해왔기 때문이다.
영화와 고전의 질문들
영화를 보는 동안 문학 속 여러 인물들이 떠올랐다. 어느 날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 어느 날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기괴한 몸보다 출근과 직장이었다. 그가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가족 안에서 그의 자리까지 조금씩 사라진다.
<가능한 사랑>의 호석과 겹쳐진다. 호석에게도 해직은 단순히 소득을 잃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해 주는 자리를 잃는 일이었다. 이 점에서는 일자리를 잃으며 자기 존재의 근거까지 흔들리는 <세일즈맨의 죽음>의 윌리 로먼과도 겹친다. 두 사람 모두 경제적 기반뿐 아니라 자신의 모습까지 흔들린다.
미옥은 사회적으로 허용된 삶과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는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속 구로프와 안나를 떠올리게 한다. 이미 각자의 삶을 살고 있던 두 사람은 그 삶의 바깥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을 발견한다. 그 감정은 이들을 자유롭게 해주기보다 오히려 자신이 살아온 삶과 자신이 원하는 삶 사이의 간극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다른 계급의 삶을 욕망했던 <위대한 유산>의 핍, 그리고 타인의 삶을 곁에서 바라보고 기록했던 <위대한 개츠비>의 닉 캐러웨이도 떠올랐다.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는 돈이 경계를 넘어가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제임스 개츠는 '제이 개츠비'라는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냈다. 데이지를 위해 그녀가 속한 세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사랑한 것은 정말 데이지 한 사람이었을까. 그녀가 가진 목소리, 집, 태도, 그녀에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풍요와 안전까지 사랑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그 사람이 속한 세계를 욕망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위대한 유산>의 핍도 다르지 않다. 대장장이의 집에서 자란 핍은 에스텔라를 만난 뒤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끄러워한다. 거칠어진 손과 신발, 조와 함께 살아온 세계가 갑자기 초라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이 그에게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낸 것이다. 개츠비가 돈으로 계급의 경계를 넘으려 했다면, 핍은 신사가 됨으로써 그 경계를 넘으려 했다.
그렇다면 <가능한 사랑>의 인물들은 계급의 경계를 넘어가고 싶어하는 것일까. 상우와 예지는 호석과 미옥을 이해하고 가까워지려 할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삶을 실제로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이 점은 꽤 분명하게 보인다.
계급의 경계
그렇다면 호석과 미옥은 상우와 예지가 사는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했을까. 그건 여전히 모르겠다. 어쩌면 이 부부는 애초에 경계를 없애는 일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단지 그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경계의 망각속에 잠시 머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 영화가 냉정한 것은, 현대의 계급이 돈이나 신분처럼 눈에 보이는 조건 하나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직업이 있고 없고,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할 여유가 있고 없고, 타인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 아니면 바라보이는 위치에 있는지. 그런 차이들이 사랑과 질투, 동정과 자존심의 모양을 바꾼다.
바라보는 자와 바라보이는 위치, 이 구도 앞에서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를 떠올린다. 소설에서 내게 흥미로운 사람은 바틀비를 바라보는 변호사이다. 그는 스스로를 합리적이고 관대한 고용주라고 믿는다. 일을 거부하는 바틀비를 곧장 내쫓는 대신 이해하려 하고, 사정을 헤아리고, 때로는 연민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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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컷. |
| ⓒ 넷플릭스 |
바틀비가 끝내 변호사의 해석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타인 역시 내가 이해하고 싶다고 해서 온전히 이해되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공감의 윤리는 '나는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끝내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의 일부가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변호사는 끝내 바틀비를 이해하지 못한다. 닉은 개츠비의 삶을 기록하지만 그의 욕망을 온전히 살아낼 수는 없다. 핍은 자신이 부끄러워했던 세계로부터 멀어진 뒤에야 무엇을 잃었는지 알아간다. 고전 속 인물들이 수없이 확인했듯, 타인을 이해하는 일도 자신의 욕망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끝내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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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능한 사랑> 스틸컷 |
| ⓒ (주)NEW |
그래서 영화의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이 영화는 단순히 '사랑(Love)'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앞에 '가능한(Possible)'이라는 묘한 단어를 붙인다. 가능하다는 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사랑도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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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능한 사랑> 영화를 보고 받은 포스터와 스페셜 티켓 |
| ⓒ 최수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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