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언급한 '중국 항일 전쟁'의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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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히스토리텔러'입니다.
1949년 이후 중국 공산당은 새로운 국가의 정통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항일 전쟁과 혁명의 역사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했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 본토의 항일전쟁 서술이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항일전쟁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현대 중국의 국가 정체성과 정통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역사적 자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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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다른 애착을 가진 '히스토리텔러'입니다. 국내와 해외의 주요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기자말>
[최경식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언급하며 당시 미국과 중국이 '동맹국(allies)'이었다고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선 시 주석 환영사에서 중국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동맹국'이라고 칭하며 일본과 싸웠던 미국인 의용병 등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동의 이익 추구는 수많은 차이를 넘어 양국 국민을 하나로 묶어줬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우리를 동맹국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중국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운 미국인 의용병 부대 '플라잉 타이거스'(Flying Tigers)도 언급했다. 그는 "그들의 활약은 실로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며 향후에도 미국이 중국과 협력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에 시 주석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과 미국 양국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파시즘의 침략에 맞섰다"고 맞장구치며 중일·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제국주의 일본을 겨냥했다. 이어 "중국 인민은 이 역사를 절대 잊지 않았으며 미국 국민 또한 잊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회담에서도 "지금이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 승리의 성과를 함께 지켜나가야 할 때"라고 발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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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6년 9월 24일(현지시각)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담하고 있다. |
| ⓒ AP=연합뉴스 |
1937년 7월 '중일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면서, 중국은 일본 제국을 상대로 장기간의 전쟁에 돌입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이 전쟁을 흔히 '항일전쟁' 또는 '항일민족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당시 중국의 공식적인 중앙정부는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 즉 중화민국 정부였다. 중국의 대외전쟁 수행과 외교, 재정, 대규모 정규군 운용 등을 국민당 정부가 담당했다.
특히 상하이 전투, 난징 방어전, 우한 전투, 창사 전투 등 중국이 일본군과 벌인 대규모 정규전에서 주력으로 싸운 것이 국민당의 정규군인 국민혁명군이었다. 국민혁명군은 막대한 인명 피해를 감수하면서 일본군의 중국 내륙 진격을 저지했다.
반면 중국 공산당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팔로군과 신사군 등을 중심으로 후방에서 유격전만을 전개했다. 일본군과의 전면전을 최대한 회피함과 동시에 점진적으로 자신들의 세력을 넓혀나가는 데 집중했다. 즉 국민당이 국가 차원의 정규전을 주도한 반면 공산당은 화북 등을 중심으로 유격전및 농촌 기반 확대에 주력했다.
결과적으로 중일 전쟁이 전후 중국 대륙의 통치자가 달라지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중일 전쟁이 없었다면, 장제스의 국민당은 공산당 토벌에 집중했을 것이고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심각한 난관에 처했을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중일 전쟁으로 말미암아 공산당은 기사회생했고, 힘을 비축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국공 내전'이 본격화되자 공산당은 만주를 비롯한 농촌 지역에서 빠르게 세력을 확대했다. 일본군이 남긴 무기와 장비도 대거 확보했다. 반면 국민당 정부는 부패와 경제적 혼란이 심화하면서 대중의 지지가 약화됐다. 초기에 국민당에 유리했던 전황도 점차 공산당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1948~1949년 '3대 전역'(랴오선·화이하이·핑진 전역)을 거치면서 전세가 완전히 뒤집어졌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은 베이징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장제스와 국민당 정부는 본토에서 철수해 대만으로 이동했다.
시대 따라 변화한 항일전쟁 서술
1949년 이후 중국 공산당은 새로운 국가의 정통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항일 전쟁과 혁명의 역사를 하나의 서사로 연결했다. 공산당이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고, 중국 인민을 조직했으며, 국민당의 부패와 무능을 극복하고, 신중국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관은 중국의 공식적인 역사 서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반면 대만의 중화민국은 정반대의 역사관을 유지했다. 중화민국 정부와 국민혁명군이 일본과의 전면전을 수행했고, 공산당은 항일 전쟁을 이용해 세력을 키웠다는 관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 본토의 항일전쟁 서술이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는 것이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혁명과 공산당의 역할을 중심으로 항일전쟁을 설명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특히 최근에는 '중화민족 전체의 항일전쟁'이라는 서사가 강해졌다.
현재 중국의 공식 기록에서는 국민당의 역할이 과거보다 더 많이 언급된다.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이 함께 일본에 맞섰다는 '전민족 항전'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시진핑 시대의 공식 서술이 공산당만의 혁명 서사에서 벗어나 '중화민족 전체의 위대한 승리'라는 국가주의적 서사로 이동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중국의 국가 정체성과 연관이 있다. 정체성의 관점이 당보다 민족에 더 큰 비중을 두는 현실을 반영하는 셈이다. 이에 기반해 과거에는 '공산당이 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이야기가 중요했다면, 현재에는 '중국이라는 민족국가가 외세의 침략을 이겨냈다'는 이야기가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따라서 항일전쟁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현대 중국의 국가 정체성과 정통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역사적 자산이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최경식 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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