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진, 옛 방어시설에서 '오늘'을 생각하다

전갑남 2026. 9. 2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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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도 초지대교를 건너 초지진에 들어서면 갑곶돈대까지 해안을 따라 길이 잘 닦여 있다. 무엇보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강화의 옛 방어시설을 하나씩 만날 수 있어 좋다.

용진진에 도착하자 이번 답사의 돈대 길라잡이인 황평우 교수님이 이곳을 찾은 이유부터 설명했다.

물길을 사이에 두고 문수산성과 마주한 모습을 바라보니, 강화의 해안 방어가 이곳 돈대 하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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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나는 역사문화 여행4] 좌강돈대에 올라 염하 건너 문수산성을 바라보다

[전갑남 기자]

해안길 따라 만나는 진과 돈대

인천 강화도 초지대교를 건너 초지진에 들어서면 갑곶돈대까지 해안을 따라 길이 잘 닦여 있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에도 좋은 길이다. 무엇보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강화의 옛 방어시설을 하나씩 만날 수 있어 좋다.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강화나들길도 이어져 있어 산책 삼아 걷기에도 좋다.

초지진을 지나면 덕진진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광성보가 모습을 드러낸다. 해안길을 따라 진과 돈대를 만나다 보면 강화가 왜 '호국의 섬'이라 불리는지도 조금씩 느껴진다. 우리는 연미정과 월곶돈대에서 한강 하구의 도도한 물줄기를 바라본 뒤 다시 길을 나섰다. 다음 목적지는 용진진이었다.
▲  좌강돈대 성벽 위에서 내려다본 용진진 문루 참경루와 염하 풍경. 물길 너머로 펼쳐진 산자락과 주변 농촌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이곳이 지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감시 거점이었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 전갑남
용진진에 도착하자 이번 답사의 돈대 길라잡이인 황평우 교수님이 이곳을 찾은 이유부터 설명했다.

"용진진은 효종 때 만들어졌어요. 강화 해안 방어체계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먼저 자리 잡은 군사 거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용진진은 1656년(효종 7)에 설치된 진이다. 만호가 책임자로 있으면서 가리산돈대·좌강돈대·용당돈대를 관할했다.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진과 돈대가 따로 떨어진 방어시설이 아니라 서로 역할을 나누며 해안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참경루에서 좌강돈대로

용진진의 문루인 참경루가 눈에 들어왔다. 편액을 바라보다가 나는 교수님을 불렀다.

"용진진 문루 편액, 참경루 맞죠?"
"어려운 한자인데, 잘 읽으셨네요."
▲  나뭇가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용진진의 문루 참경루(斬鯨樓). ‘고래를 베는 누각’이라는 이름처럼, 파란 하늘 아래 당당하게 서 있는 누각과 나부끼는 깃발에서 당시 사람들의 굳은 나라사랑의 기개가 느껴진다.
ⓒ 전갑남
참경루(斬鯨樓). '고래를 베는 누각'이라는 뜻. 여기서 고래는 청나라 군대를 의미한다고 한다.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에게 청나라에 대한 경계와 다시는 침략을 당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이름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고래를 베겠다는 이름에서 당시 사람들의 기개가 느껴졌다. 누각의 이름도 용진이라는 이름에 걸맞아 보였다.

용진진의 문루와 홍예문을 둘러본 우리는 이제 좌강돈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좌강돈대에 올라서니 원형의 평면구조가 한눈에 들어왔다. 낮은 구릉 위에 우뚝 선 모습이 마치 작은 성채처럼 보였다. 돈대 아래로 염하가 흐르고, 그 너머로 김포의 문수산성이 보였다.

해안도로와 가까워 접근하기도 좋고 시야도 시원하게 트여 있었다. 물길을 따라 오가는 배와 건너편까지 살필 수 있는 자리였다. 이곳에 돈대를 세운 까닭이 자연스럽게 이해됐다. 해안을 따라 침입해 오는 적을 살피고 대응하기에 좋은 자리였을 것이다. 좌강돈대는 '용진돈대'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물길을 사이에 두고 문수산성과 마주한 모습을 바라보니, 강화의 해안 방어가 이곳 돈대 하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마주 보며 물길을 살피던 옛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  낮게 우뚝 서 있는 좌강돈대의 외벽 모습. 단정하게 잘 다듬어진 성돌이 반듯하게 이어져 있어 해안을 지키던 작은 성채의 위용을 보여준다.
ⓒ 전갑남
돈대의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좌강(左岡). 왼쪽을 뜻하는 '좌(左)'와 언덕이나 구릉을 뜻하는 '강(岡)'자를 보면서 주변 지형을 다시 바라보았다. '좌강'이라는 이름이 왜 붙었을까 생각해보니, 이름과 지형이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다.

오래된 돈대, 오늘의 공간

교수님이 좌강돈대를 설명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문득 일행에게 말을 건넸다.

"해안도로와 접근성도 좋고, 더리미미술관에서 매월 한 차례씩 음악회를 하는데 여기 좌강돈대도 음악회를 열기에 참 좋을 것 같지 않아요?"
▲  좌강돈대의 넓은 원형 내부 전경. 탁 트인 하늘과 넓은 잔디 공간이 어우러져, 치열했던 옛 방어기지에서 오늘날 작은 음악회를 열기에 근사한 문화 공간으로 활용되어도 좋을 듯싶다.
ⓒ 전갑남
일행들도 돈대 주변을 둘러봤다. 돈대 위로 불어오는 바람과 탁 트인 하늘, 염하 건너편 문수산성까지 바라보니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이곳에서 바다를 살피며 나라를 지켰겠지만,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잠시 쉬어가는 자리로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여기서 음악회 하면 참 좋겠는데요."

내가 한 말이었지만, 좌강돈대를 내려오면서도 그 생각이 자꾸 남았다.

한편으로는 아쉬움도 있었다. 복원된 용진진과 좌강돈대는 말끔하게 잘 다듬어져 있어 세련되어 보였다. 하지만 너무 반듯하게 정비된 모습 때문인지, 옛 선조들이 돌 하나하나 쌓아 올렸을 당시의 투박한 돈대 모습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무너진 유적을 복원하고 사람들이 찾아볼 수 있도록 정비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오래된 돌의 흔적과 세월의 흔적이 조금 더 남아 있었다면, 옛사람들의 숨결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염하 건너 문수산성도 다시 바라보았다. 오래된 돈대가 오늘의 우리에게도 좋은 자리가 될 수 있다면, 그것도 이곳을 찾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다음 답사지 용당돈대로 길을 나섰다.
▲  좌강돈대 성벽 위에서 탁 트인 시야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염하 건너 문수산성 쪽을 바라보고 있는 답사 일행들의 모습이다.
ⓒ 전갑남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in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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