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나 홀로 집에' 있기까지, 40년 걸렸습니다

한영숙 2026. 9. 25. 11: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하지만 나 역시 고전적인 시집살이를 했던 '내 사연을 쓰면 책 한 권이 넘는다.'

그래서 나는 추석에 혼자 집에 남게 되었다.

며느리의 시간을 끝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조용한 추석 하루를 얻기까지, 40년이 걸렸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칠순이 다가오며 끝낸 '며느리의 시간'... 젊은 세대의 딸들은 그러지 않기를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영숙 기자]

10년 전쯤 티브이에서 본 광고이다.

한 결혼식장에서, 딸을 건네주며 "잘 부탁하네" 하고 사위의 어깨를 두드리던 장인. 이제 눈물을 훔치는 애틋한 장면이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는데, 그 아버지 갑자기 돌아선다. 아내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을 달려 나와, 기다렸다는 듯 오픈카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크게 웃으며 그 광고를 봤다. 아마도 노후 보험 광고였던 듯하다.

올해 그 광고가 다시 떠오른 것은, 결혼하고 40년 만에 처음으로 명절에 '나 홀로 집에'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명절을 나는 '며느리의 시간'
▲ 제사상 제사상
ⓒ Jay Jung, Pixabay
나는 결혼하고 십오 년 동안 홀시어머니를 모시며 시집살이했다. 시댁에는 제사가 몇 번 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았다. 친정엔 제사만 일 년에 열 번 넘었고, 한 달에 세 번씩 몰린 달도 있어 익숙했다.결혼 전, 친정 엄마도 말했다.

"제사 네 번에 명절 두 번. 그 정도야 못 하겠냐."

문제는 음식하고, 제사 지내고, 손님 맞고 하는 게 아니었다. 부담은 따로 있었다. 시어머니는, 제사는 일주일 전부터, 명절은 한 달 전부터 준비에 들어가셨다. 즉 한 달 내내 명절 타령을 들어야 했다.

나물 거리를 사서 말리고, 명절이 가까워지면 대폭 오르는 문어 등 해산물을 미리 사들여 데쳐서 냉동실에 두고, 손님들이 드실 김치는 언제 어떻게 준비하고 등등 끊임없이 명절 먹거리 걱정만 하시는 게 젊은 며느리로서는 견디기 힘들었다.

오죽 했으면, '내가 시어머니 나이가 되어 제사랑 명절 주관하게 되면, 딱! 하루 전부터 준비할 거야. 그전엔 생각도 하지 않을 거야' 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준비는 당시 사람들의 명절에 대한 보편적인 태도였다. 명절은 그만큼 큰 의미였다. 전 국민이 고향과 부모님을 찾아서 이동하고, 온 가족이 한데 모이는 날이었다. 가족의 기쁨을 위해 며느리들은 기꺼이 희생했다. 아니, 기쁘게 희생해야 했다. 거기서 자아나, 휴식, 시간의 가치 따위를 찾는 것은 경을 칠 일이었다.

그렇게 명절을 나는 며느리의 시간은 세기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입 밖에 내기보다는 순응하는 편이라, 묵묵히 내 역할을 다하고 살았다. 하지만 나 역시 고전적인 시집살이를 했던 '내 사연을 쓰면 책 한 권이 넘는다.'

12년 전 제주로 이주한 후에도, 우리 부부는 명절 전날 서울 시댁에 가서 자고, 명절을 지내고 왔다. 음식은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시누이가 미리 준비해서 나는 별로 할 일은 없었지만, 며느리니까 꼭 참석했다.

그때까지도 명절 풍경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부엌에서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일을 거들었고, 형님네 가족들이 도착하면 함께 저녁을 먹었다. 잠자리에 까다롭지만, 하루쯤이야, 하면서 시댁에서 잤고, 명절 당일이면 집안에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가족들이 모여 음식 심부름하느라 바빴다.

올해는 유난히 주위에서 '제사를 없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코로나 시대에 서로 만나지 못하면서 제사를 없앤 집이 많다고 들었다. 2020년대 들어서면서, 명절은 집집마다 의미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 명절 풍습이 바뀐 건 9년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였다.

아버님은 돌아가시면서 제사를 다 정리하셨다. 아버님 본인의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하셨다. 시어머니는 서운해 하셨지만, 아버님 뜻을 따랐고, 그 후 우리 집엔 제사도 명절 차례도 없다.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손님이 줄었다. 아니, 어쩌면 시대와 풍습이 바뀐 건지도 모른다. 이미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인 형제들과 사촌들도 제사에 오는 대신, 자신들 방식으로 추모했다. 추석에는 제일 맏형인 사촌 형님네도 몇 년 전부터 부부 동반 해외여행을 간다.

이제 우리 집 추석은, 아침에 반찬을 좀 풍성하게 해서 함께 식사하는 의미의 명절이 되었다. 그 자리에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우리 부부뿐이다. 손님도 거의 오지 않는다. 설은 달랐다. 우리도 작은어머니댁에 세배하러 갔고, 아침 먹고 난 후 사촌들이 시어머니께 세배하러 온다. 그래서 떡국이며 음식을 좀 더 준비해야 한다.

작년 추석을 지내고 나서, 나는 남편에게 건의했다.

"여보. 우리도 이제 칠순이 다 되어가는데, 언제까지나 시댁의 조카 방에서 자는 것도 불편하니 명절에 올라가면 호텔에서 잡시다."

그랬더니 남편은 한술 더 떴다.

"그럽시다. 그리고 당신은 이제 추석에는 서울 가지 말고 집에서 쉬어요. 나만 전날 올라가서 형님네와 어머니랑 식사하고 추석날에 돌아올게요. 설에는 세배해야 하니, 같이 갑시다."

이런 파격적인 배려를 했다. 그래서 나는 추석에 혼자 집에 남게 되었다. 가슴이 벌렁거릴 만큼 놀라운 변화였다.

나는 끝났지만 젊은 세대는 아직인

우리는 결혼한 딸만 제주시에 살고, 다른 자녀들은 멀리 산다.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젊은이들이 명절이라고 반드시 부모 댁을 찾지는 않게 되었다. 우리도 애들이 명절에 연휴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면, '잘했다'고 맞장구쳤다.

가까이 있는 딸 가족만 추석에 만난다.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돌 지난 손자의 모습이 매일 눈에 어른거려 우리는 자주 만나고 있다. 딸은 시댁이 제주도에 있어 여행 갈 때를 제외하고는 시댁에서 명절을 보낸다.

"추석에는 전날 시댁에 가지? 다녀와서 좀 쉬고, 주말쯤 집에 들르렴."

나는 40년 만에 시댁 명절에서 벗어나지만, 딸에게는 여전히 시댁에 가는 것을 당연한 일인양 묻고 있다. 오래된 명절의 질서는 내 안에도 아직 남아 있고, 딸에게도 현실로 남아 있다. 며느리의 시간은 아직 그처럼 질겼다. 다만 젊은 딸이 나처럼 칠순이 다 되어 며느리의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그리고 그 시간이 더 가볍기만 바랄 뿐이다.
▲  나는 이제 시댁과 자식들에게서 자유롭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10년 전 광고가 올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칠순이 다가오며 나의 의무가 끝났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시댁과 자식들에게서 자유롭다. 추석에 광고 속 부부처럼 오픈카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대신, 집에서 혼자 지낼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을 조금 만들고, 읽던 책을 들고 편안히 기대어 앉을 것이다. 바빠서 차분히 듣지 못했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악보를 펼쳐 놓고 들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이는 것이 행복이라 여겼다. 이제는 아무도 오지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행복하다. 며느리의 시간을 끝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 조용한 추석 하루를 얻기까지, 40년이 걸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