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효자 작물...‘마이크로그린’을 아시나요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6. 9. 2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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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려 열흘이면 수확, 연 30회 돌린다
셀포트·팜에이트 등 국내 사업자 속속 가세

농사에서 돈을 결정하는 변수는 단순하다. 같은 자리를 1년에 몇 번 돌리느냐다. 벼는 1년에 한두 번이다. 상추는 연 12~15회 남짓. 그런데 한 해 30번 가까이 거두는 작물이 있다면 계산이 달라진다. 마이크로그린(Microgreen) 얘기다.

겨자의 마이크로그린(셀포트)
이름은 낯설어도 실물은 익숙하다. 호텔이나 파인다이닝 접시 위에 얹힌 손톱만 한 잎. 색이 선명하고 풍미가 알싸해 요리의 마지막 한 겹으로 쓰인다. 손님 대부분은 장식이려니 하고 포크로 밀어 두지만 스마트팜 업계에선 ‘귀한 몸’ 대접이다. 재배 주기는 짧고 단가는 높으며 좁은 공간에서도 빽빽하게 키울 수 있어서다. 시설 농업의 약점을 두루 비켜간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열흘 만에 수확하는 고부가가치 채소
개념부터 정리하자. 마이크로그린은 품종명이 아니다. 수확 시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채소나 허브 씨앗을 뿌려 떡잎이 완전히 펼쳐지고 본잎이 막 나오려는 무렵 잘라 낸다. 브로콜리든 겨자든 적양배추든 이 단계에서 거두면 전부 마이크로그린이다.
마이크로그린 생육 현장(셀포트)
성장 단계를 사람 나이에 빗대면 이해가 빠르다. 씨앗을 틔워 며칠 만에 뿌리째 먹는 새싹채소가 신생아라면, 1~3주 키워 뿌리 위쪽 줄기를 잘라 먹는 마이크로그린은 유아기다. 여기서 더 키워 본잎이 제법 벌어진 베이비리프(어린잎 채소·본잎이 손가락 한 마디쯤 자란 상태에서 수확하는 샐러드용 채소)가 초등학생쯤 된다. 품목에 따라 7~14일 만에 거두기도 해 새싹채소와 기간이 겹치기도 한다. 결국 본잎이 어디까지 자랐는지, 뿌리를 쳐내고 푸른 잎줄기만 취하는지가 실질적 기준이다.

이 차이는 성분 축적으로 이어진다. 어두운 곳에서 싹만 틔우는 새싹채소와 달리 마이크로그린은 빛을 충분히 받으며 자란다. 빛은 광합성만 돕는 게 아니다. 비타민 C나 당근의 주황빛을 만드는 색소 계열인 카로티노이드가 만들어지고 쌓이는 과정 자체가 빛의 영향을 받는다. 2012년 미국 농무부 산하 연구진 분석에서 적양배추 마이크로그린은 생체중(말리지 않고 물기를 머금은 생것 상태로 잰 무게) 100g당 총 비타민 C가 147.0mg으로 측정됐다. 겨자 계열은 62~72mg, 무 계열은 90~96mg 수준으로 보고됐다.

영토 넓히는 곳 어디? ... 클린룸 기술 품은 셀포트
마이크로그린은 해외 시장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는 분위기다. 전문 생산자와 대형 수직농장(재배 선반을 여러 층으로 쌓아 실내에서 작물을 키우는 농장)이 쌍끌이로 키우면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프레시오리진스는 수백 종의 마이크로그린과 식용 꽃을 셰프 시장에 공급하는 대표 주자다. 네덜란드 코퍼트크레스도 화분째 주방에 납품하는 셰프 전용 새싹 제품군을 표준화해 미국 법인까지 사세를 넓혔다. 요리의 시각적 표현력과 맛에 무게를 둔 모델이다.
브로콜리의 마이크로그린(셀포트)
다른 한 축은 대량 리테일이다. 미국 수직농장 에어로팜은 2026년 8월 약 2000개 소매 판매처 확보와 마이크로 루콜라·브로콜리 제품 추가를 공식 발표했다. 일본 무라카미농원은 기능성 중심의 브로콜리 새싹과 전문가용 마이크로 허브를 아예 다른 제품군으로 쪼개 판다. 이 회사의 2026년 6월 브로콜리 새싹 출하량은 전년 동월보다 56% 늘었다.

물론 개별 기업의 외형 성장일 뿐 시장 전체 통계로 일반화하기엔 이르지만 성장세가 뚜렷한 건 사실이다.

국내도 꿈틀댄다. 팜에이트는 일찌감치 새싹채소와 어린잎 채소로 기반을 다진 뒤 지하철 역사 내 실내농장으로 보폭을 넓히며 대형 유통망과 외식 채널을 쥐었다. 충남 부여의 한국마이크로그린은 땅콩새싹을 앞세워 농가에 재배 설비를 공급하고 분말·착즙 등 원료 가공에 주력한다.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을 개척한 엔씽, 폐터널을 활용한 넥스트온도 품목 다변화 후보군으로 이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이 가운데 마이크로그린을 전면에 내건 곳이 셀포트다. 이력이 독특하다. 본래 반도체 클린룸(먼지 한 톨까지 걸러내 공기를 극도로 깨끗하게 유지하는 반도체 생산용 작업 공간) 공조 설비를 하던 엔지니어링 기업이다. 농업이 기술을 찾은 게 아니라 기술이 작물을 역산해 낙점했다.

강세명 셀포트 대표는 “밀폐된 공간의 온도와 습도, 바람의 흐름, 그리고 옆방과의 기압 차이를 잡아주는 게 우리 본업이다. 그 기술이 수확량과 수익으로 이어질 품목을 거꾸로 찾다 마이크로그린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마이크로그린을 상품화해 판매하고 있는 셀포트(셀포트)
계산은 세 갈래였다. 첫째, 조명과 전기 요금이다. 마이크로그린은 다 자란 엽채류보다 적은 빛으로도 생산할 수 있다. 조명 전력을 낮추면 램프가 뿜는 열이 줄고, 그 열을 식히느라 돌아가는 냉방 부담까지 함께 내려간다. 전기료가 두 번 절약되는 구조다. 둘째, 키다. 상추처럼 크게 자라지 않으니 재배랙(작물을 심은 쟁반을 여러 층으로 꽂아 놓는 선반형 재배 설비)의 층간 간격을 좁힐 수 있다. 같은 층고에서 재배 단수를 더 가져간다는 뜻이다. 셋째, 물류 거리다. 잎이 여려 신선도가 곧 품질인 작물이다. 대형 소비지 인근에서 계획 생산하는 도심형 수직농장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승부처는 습도다. 셀포트는 발아실(씨앗을 틔우는 전용 방)과 본 재배실의 공조 계통을 아예 분리했다. 초기 48~72시간은 22~24도, 상대습도(공기가 머금을 수 있는 최대 수분량 대비 실제 수분량의 비율) 95% 이상의 어두운 발아실에서 트레이(씨앗을 뿌려 키우는 네모난 재배 쟁반)를 관리한 뒤 재배랙으로 옮긴다.

재배 단계에서 보는 지표는 공기의 ‘수분 흡수 여력’이다. 마른 수건은 물을 더 빨아들이지만 흠뻑 젖은 수건은 못 빨아들인다. 재배실 공기도 같다. 너무 축축하면 잎 표면이 마르지 않아 곰팡이가 번지고, 반대로 너무 메마르면 작물이 수분 스트레스를 받는다. 셀포트는 이 여력 값을 0.6~0.9 구간에 묶어 둔다.

강 대표는 “워낙 촘촘히 심는 작물이라 공기가 한 번 정체되면 같은 쟁반 안에서도 자라는 속도가 제각각이 된다. 재배단마다 수평으로 바람을 밀어주는 팬을 달아 작물 윗면 풍속을 초속 0.3~0.5m로 잡아주는데, 반도체 클린룸에서 쓰던 기술을 그대로 옮겨 왔다”고 말했다. 초속 0.3~0.5m는 사람 피부로는 겨우 느낄까 말까 한 미풍 수준이다.

밀폐형 시설과 짧은 주기는 농약 사용을 줄일 여지를 준다. 그렇다고 미생물 안전까지 따라오는 건 아니다. 비교 실험에서는 마이크로그린과 새싹채소 모두에서 병원성 대장균 증식이 확인됐다. 이런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종자 소독과 용수 정제, 작업 도구 살균은 물론 수확부터 배송까지 저온을 한 번도 끊지 않는 저온 유통 관리를 한 끝에서야 비로소 상품으로 출하된다.

호기심을 일상의 식습관으로
물론 국내 시장에 안착하려면 갈 길이 멀다. 우선 관련 기준과 통계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신선 마이크로그린과 새싹채소, 어린잎 채소, 가공 추출물을 어디까지 한 바구니에 담느냐에 따라 시장 추산치가 널을 뛴다. 제도적으로도 보완할 점이 많다. 제품 형태에 맞춘 위생·표시 기준, 재배 주기와 비용 구조가 다른 신생 품목의 스마트팜 지원 요건 반영, 중량·포장·냉장 유통의 표준 규격화, 그리고 영양 정보와 기능성 표현(건강에 좋다는 식으로 효능을 내세우는 표시)의 구분 등이 명확히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민간에서는 일단 각자의 길을 가는 분위기다. 팜에이트처럼 거대 유통망에 작물을 얹는 모델이 있고, 한국마이크로그린처럼 원료 가공으로 부가가치를 옮기는 모델도 있다. 셀포트는 설비의 몸집을 줄여 초기 비용을 털어내는 쪽을 택했다.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레고 블록처럼 규격을 맞춰 공장에서 미리 만든 컨테이너형 설비를 유휴 공간에 밀어 넣는 방식이다. 주문 물량에 맞춰 파종(씨 뿌리기)과 수확 일정을 거꾸로 짜 재고와 폐기율을 낮추고, 수확 당일 출하해 이튿날 아침 식탁에 올린다. 소비자 직접 판매는 ‘호기심 많은 도시농부’ 브랜드로 브로콜리·겨자·적양배추·적무 4종을 내놨다.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마이크로그린 전용 스마트팜(셀포트)
강 대표는 “샐러드나 샌드위치, 비빔밥에 한 줌 올리는 일상형 식재료로 제안하고 있다. 영양 정보를 소개하는 일과 의학적 효능을 앞세우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성분 분석과 실제 수확 성적이 먼저 검증돼야 시장이 넓어진다”고 짚었다.

관건은 시장에서 단순히 호기심에 그칠 지, 정기구독 형태로 습관성 소비로 이어질지다. 수요가 받쳐주면 단위 면적당 실제 수확량과 폐기율, 냉난방 에너지 절감 등 통계가 잡히면서 투자와 제도권 지원도 뒤따를 수 있다. 마이크로그린이 시설 농업의 진짜 효자로 자리 잡을지는 결국 이 숫자들이 증명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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