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초 만에 끝난 재판, 떠들썩했던 '고양이 사체' 사건은 어쩌다

전선정 2026. 9. 24. 11:5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2초.

지난해 봄, 광양의 한 갯벌에서 익사한 고양이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2심 선고공판은 피고인이 출석하지도 않은 채 그렇게 끝났습니다.

"실제 이 사건 범행 직후 피고인이 길고양이들을 방사한 공원 및 그 인근에서 고양이 사체들이 잇달아 발견되었다. 아파트 주민 J는 경찰 조사에서 '공원에서 사체로 발견된 고양이가 공소사실 속 고양이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피고인도 경찰 조사에서 '공원에서 사체로 발견된 고양이가 공소사실 중 고양이인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고양이 살해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경찰, 이를 받아 벌금 500만 원의 약식기소에 그친 검찰, 그리고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피고인 박씨.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입증 실패 경찰, 약식기소에 그친 검찰... 여덟 차례 반복 범행, 발견된 사체만 네 구인데 '벌금 500만 원'

[전선정, 소중한, 정교진 기자]

12초. 재판장이 피고인의 출석 여부를 확인하고 주문을 낭독하기까지 걸린 시간입니다.

지난해 봄, 광양의 한 갯벌에서 익사한 고양이 사체가 잇따라 발견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의 2심 선고공판은 피고인이 출석하지도 않은 채 그렇게 끝났습니다. 광주지법 제1-3형사항소부는 이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판결, 그리고 보다 앞서 있었던 검찰의 약식기소대로 500만 원 벌금형을 유지했습니다.

이 사건 피고인은 아파트 인근에 살던 길고양이 여덞 마리를 포획틀로 잡아 갯벌에 방치한 박아무개씨. 범행 직후 이 고양이들로 보이는 네 마리가 사체로 발견되기도 했는데요.

여러 차례 반복해 진행된 범행과 SNS로 이를 과시하고 혐오 발언을 이어간 모습, 게다가 숨진 고양이까지 발견된 이 사건. 길고양이 포획 및 이주방사에 명확히 유죄 판결을 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도, 500만 원 벌금형을 두고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 또한 이어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요?
▲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박아무개씨가 지난해 3~4월 길고양이 여덞마리를 무단 포획해 광양의 갯벌 인근 명당공원에 유기한 직후 해당 지역에서 발견된 고양이 사체.
ⓒ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경찰 뭐했나... 법원도 '사체 연관성' 지적

지난 17일 전남광주 동구에 위치한 광주지법에서 박씨의 2심 선고공판이 열렸습니다. 2심 재판부는 1심에 불복한 박씨의 항소를 기각하며 벌금 500만 원 형을 유지했습니다.

박씨는 지난해 3~4월 총 8회에 걸쳐 아파트 인근에 살던 고양이 여덟 마리를 무단 포획한 뒤 광양의 갯벌 인근 명당공원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갯벌 등에 빠져 익사한 고양이 사체 네 구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인근 주민과 동물권단체의 신고로 박씨가 광양의 한 아파트에서 고양이들을 잡아 갯벌 인근 공원에 옮긴 범행이 드러났습니다.

박씨는 범행 직후 동네 기반 생활정보 플랫폼 당근마켓에 포획틀로 잡은 고양이 사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를 혐오하는 표현인 "털바퀴"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며 범행을 과시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당시 수사를 진행한 광양경찰서는 박씨를 검찰에 넘겼으나 2심 재판이 끝난 지금도 공백인 점이 있습니다. 고양이 사체가 발견돼 공론화된 사건임에도 경찰은 박씨에게 고양이를 죽인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경찰에 고발한 윤성모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이날 2심 선고공판 직후 광주지법 앞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길고양이 이주 방사가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학대 행위라고 인정한 매우 유의미한 선고입니다. 다만 아쉬운 건 경찰 수사 단계에서 고양이 사체가 네 구씩이나 광양 명당공원에서 발견됐는데 그에 대한 동물학대 혐의는 입증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박아무개씨가 지난해 3~4월 총 8회에 걸쳐 길고양이를 여덟마리를 무단 포획해 광양의 갯벌 인근 명당공원에 유기한 직후 동네 기반 생활 정보 플랫폼 '당근마켓'에 자신의 범행을 과시하며 올린 게시물 중 일부.
ⓒ 최초 신고자 제공
심지어 수사 권한이 없는 법원에서도 박씨의 행위가 고양이의 죽음의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1심 판결문에는 이러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실제 이 사건 범행 직후 피고인이 길고양이들을 방사한 공원 및 그 인근에서 고양이 사체들이 잇달아 발견되었다. 아파트 주민 J는 경찰 조사에서 '공원에서 사체로 발견된 고양이가 공소사실 속 고양이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피고인도 경찰 조사에서 '공원에서 사체로 발견된 고양이가 공소사실 중 고양이인 것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검경이 박씨에게 적용한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가 아닌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입니다. 동물보호법상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습니다. 반면 박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 수위가 더 낮습니다.
▲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박아무개씨의 1심 판결문(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4부).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씨의 행위가 고양이의 죽음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 판결문 캡처
약식기소 검찰, 연속 불출석 학대범... "상습범 규정 왜 미적용?"

당초 이 사건은 재판도 열리지 않을 뻔했습니다.

사건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광주지검 순천지청이 박씨를 약식기소했기 때문인데요. 약식기소는 혐의가 중하지 않은 피의자를 정식재판에 넘기지 않고 벌금형에 처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하는 것입니다. 즉 검찰이 이 사건을 가벼운 벌금형 정도로 보고 정식재판 청구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의를 제기한 건 되레 박씨였습니다. 정식재판을 요구한 그는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1심 판결문을 통해 그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박씨는 로드 킬, 차량 엔진룸 침투 사고, 매연, 과밀 스트레스, 인간 의존성에 따른 자생력 상실 등을 거론하며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길고양이들의 생존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자신의 범행이 고양이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행위였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물론 법원은 이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동물 학대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죠.
▲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박아무개씨가 지난해 3~4월 총 8회에 걸쳐 길고양이를 여덟마리를 무단 포획해 광양의 갯벌 인근 명당공원에 유기한 후 동네 기반 생활 정보 플랫폼 '당근마켓'에 게시한 혐오성 댓글들 중 일부.
ⓒ 최초 신고자 제공
검찰의 약식기소에 대한 윤 활동가의 말입니다.
"이번 사건은 검찰에서 약식기소를 한 점이 매우 아쉬웠는데 아무리 동물을 살해한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더라도 길고양이 이주방사도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정식으로 불구속 구공판으로라도 기소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고양이 살해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경찰, 이를 받아 벌금 500만 원의 약식기소에 그친 검찰, 그리고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피고인 박씨. 애초에 이 사건은 '벌금 500만 원'의 틀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심지어 피고인의 참여 의무가 있는 형사 재판임에도 약식기소로 시작된 사건이었기에 박씨에겐 예외가 적용됐습니다. 1심 선고공판에도, 2심 선고공판에도 박씨는 법정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난 17일 오후 피고인석이 빈 채로 진행된 2심 선고공판은 "주문,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는 열세 글자와 함께 12초 만에 끝났습니다.

동물보호 관련 사건을 꾸준히 맡아 온 이주하 변호사(법무법인 JLP)는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이 사건은 불과 한 달 사이에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심지어 범행도구까지 같은 수법으로 자행된 것으로, 확인된 범행만 여덟 건에 이릅니다. 동물보호법은 이런 경우에 형의 1/2까지 가중할 수 있도록 상습범 규정을 제97조 6항에 두고 있습니다. 검사가 이 부분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기소한 것은 정말 의문이 많이 남는 부분입니다."
▲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2심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박아무개씨가 지난해 3~4월 총 8회에 걸쳐 길고양이를 여덟마리를 무단 포획해 광양의 갯벌 인근 명당공원에 유기한 직후 동네 기반 생활 정보 플랫폼 '당근마켓'에 직접 올린 사진들 중 일부.
ⓒ 최초 신고자 제공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