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출이 선 넘었다”…조희대 겨냥한 與의 ‘선출 만능주의’

권유진 2026. 9. 24. 06: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조희대 대법원장이 정면충돌하면서 여권에서 ‘선출 권력 우위론’이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일 조 대법원장을 겨냥해 “내란에 동조했던 1차, 이재명 대통령 후보를 죽이려 했던 2차에 이어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흔들고 죽이려는 3차 내란이냐고 규정한 분도 있다”고 날을 세웠다. 다른 여당 의원들도 “국민이 선출하지도 않은 대법원장이 선출된 대통령의 임명권까지 넘보는 선 넘는 정치를 하고 있다”(박주민 의원),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자를 대통령이 그대로 임명하여야 한다는 것은 주권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무력화하는 일”(한병도 원내대표)이라고 했다. 민주당ㆍ조국혁신당ㆍ진보당 법사위원들도 “대통령의 임명권이 비선출기관인 대법원장의 제청에 의해 형해화되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가세했다.

민주당이 사법부를 상대로 선출 권력 우위론을 꺼내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9월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 그리고 직접 선출권력(입법), (그 다음은) 간접 선출권력(사법)”이라며 사법부 구조를 바꾸는 것은 입법부 권한이라고 언급했다.

여권의 공세는 대통령은 유권자가 직접 뽑았지만 대법원장은 그렇지 않다는 ‘선출의 정당성’에 기대고 있다. 개별 대법관 인선을 둘러싼 갈등을 ‘누가 국민의 뜻을 더 온전히 대표하는가’라는 정당성 경쟁으로 치환한 셈이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국민에게서 직접 나온 권력에 절대적 권능을 부여하는 것이 민주당 주류와 지지층에 공유된 기본 정서”라며 “결국 사법부의 ‘비선출’ 한계를 부각해 지지층의 반응을 끌어내고, 여론전의 주도권을 쥐려는 정치 공학적 셈법”이라고 설명했다.

선출된 권력이 사법부의 권한 행사에 우선한다는 주장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늘 위험한 충돌을 낳았다. 1937년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법원이 뉴딜 법률에 잇따라 제동을 걸자 법관 수를 늘리는 ‘법원 개편안’을 밀어붙였다. 당시 루스벨트는 “대법원이 스스로 의회의 제 3의원(院), ‘초입법부’(super-legislature)로 부적절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헌법을 법원으로부터 구하고, 동시에 법원을 그 자신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사법부 독립을 침해한다는 거센 반발 속에 의회에서 법안이 좌절됐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대법원장의 제청권 역시 주권자인 국민이 제정한 헌법에 명시된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선출 권력이라도 헌법이 부여한 다른 독립 기관의 견제를 무력화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를 직접 선출하지 않도록 둔 것 자체가 다수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는 것을 막기 위한 헌법적 장치”라며 “선출 권력과 임명 권력은 대등하게 나란히 서 있는 것이지 우열의 관계가 아니다. 선출 권력이 우위에 선 채 사법부를 통제하려 든다면 이는 삼권분립의 원리를 거스르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반면에 사법부 역시 선출 권력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1조 2항에 따라 비선출인 사법부는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매개받아야 한다”며 “대법원의 실질적 구성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견제 장치 중 하나일 뿐인데, 조 대법원장은 자기가 실질적인 대법원의 구성권자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정치 행위”라고 말했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