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망진 중년] 지난겨울 가셔서 추석 앞두고 오신 시어머니

정현주 2026. 9. 2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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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작년 겨울, 85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할머니계의 영크크'셨다.

이렇게 시어머니 카톡 에피소드는 다다다다 떠오르는데 왜 기사는 안 써지는 것일까.

카톡 영상도, 남편이 보여준 노래도, 자꾸 시어머니 생각이 나던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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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생각나나 했더니... 추석과 시아버지 기일을 앞두고 추모공원 갔다 알게 된 사실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9월엔 '가을에 불어 온 바람'을 주제로 써 봅니다. <편집자말>

[정현주 기자]

지난주 초부터 <요망진 중년> 단체 카톡방에는 '기사 작성 중'에서 '송고 완료'로 바뀐 안부가 하나둘 올라왔다. 그 안부가 하나씩 올라올 때마다 어릴 적 만화에서 보던 폭탄의 심지가 지지직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번 달 내가 낸 기획안은 '부모님 카톡 영상에 대처하는 법'이었다. 구순 엄마가 처음으로 보낸 카톡 영상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도가 안 나간다. 열 줄 쓰면 아홉 줄을 지우고, 그 위에 다섯 줄을 쓰다 결국은 모두 지워버렸다. 그러다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카톡 영상하면 시어머니가 최고인데."

'할머니계의 영크크'였던 시어머니

작년 겨울, 85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할머니계의 영크크'셨다. 실버폰은 이미 60대에 졸업하셨고, 마지막으로 쓰던 휴대폰이 Z플립 최신형이었으니 이쯤 되면 감 오실 듯. 카톡이나 유튜브 검색, 메일, 은행 업무까지 손가락 하나로 척척 해결하셨다. 이모티콘도 무료로 만족하지 않고 구독까지 하시며 카톡방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어머니의 주된 장기는 동영상 만들기였다. 이쯤에서 '아!' 하시는 분들 있으실 텐데, 그거 맞습니다. 어머니는 남들이 만든 동영상을 나르는 전달책이자 직접 만드는 생산책이었다. 나는 이제 30초짜리 릴스 하나도 몇 시간에 걸려 완성할까 말까 하는 실력인데, 어머니는 이미 칠순 때부터 영상 다작의 여왕이셨다.

봉오리였던 장미가 사알짝 윙크하듯 움직이다가 활짝 피고, 금세 변심한 듯 잎을 떨군다. 그 위로 어느 날은 인생의 허무함이, 또 어느 날은 자식에 대한 서운함이 서글픈 음악과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어제 보낸 거 봤냐?"
"이따 볼게요."

"신문에 하버드 대학 교수가 쓴 글이 실렸는데 너희가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만들어봤다. 한번 읽어봐라."
"네네. 알았어요."

'시월드'라는 문패가 걸려 있는 카톡방에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사남매와 두 명의 며느리가 있었다. 사남매 중 남편을 제외한 삼남매는 모두 외국에서 살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이 카톡방은 한 집에 모여 살던 시절로 돌아가는 방 같았다.

외국에 사는 자식들과 시차를 맞춰 전화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영상은 언제든 보낼 수 있었다. 처음 어머니가 단체 카톡방에 영상을 올렸을 때 반응은 뜨거웠다. 가족의 생일이면 사진과 축하 문구를 넣어 영상을 만들었고, 좋은 글을 읽은 날에는 음악과 꽃을 얹어 자식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물개박수를 날리던 자식들은 점점 무덤덤해졌고, 어머니의 동영상 옆에 붙은 숫자는 움직이지 않는 내 몸무게처럼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이렇게 시어머니 카톡 에피소드는 다다다다 떠오르는데 왜 기사는 안 써지는 것일까. 한 주 내내 하얀 바탕에 껌뻑이는 커서만 바라보다 지난 19일 토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그날은 추석과 시아버지 기일을 앞두고 추모공원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래. 바람이라도 쐬면 좀 나아질 거야. 누가 알아? 거기서 영감님을 만나 다다다다 써질지.

"당신 뮤지컬 배우 차지연 알지?"
"응. 알지. 근데 왜?"
"이거 한번 볼래?"

비몽사몽으로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에게 남편이 영상 하나를 카톡으로 보냈다. 아, 이제 동영상이라면 도망가고 싶은데. 영상은 지난 3월 MBN <현역가왕3> 결승 2차전에서 차지연이 부른 '봄날은 간다'였다. 80대 노모로 분한 차지연이 걸진 사투리로 독백을 시작하자 잠이 홀딱 깼다. 노래가 끝날 즈음에는 나도 화면 속 방청객들처럼 눈물이 핑 돌았다.

어떤 알고리즘을 타고 이 영상이 연결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남편도 영상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안 그래도 파워 F에 갱년기 눈물까지 장착한 사람이라 한참 울었단다.

"어머니가 유일하게 부르시던 노래였어. 근데 이런 가사인지 몰랐어. 이 노래 가사가 되게 허무하다."

영상을 세 번 돌려보고 가사를 음미하다 보니 어느새 용인 추모공원에 도착했다. 이곳은 천주교 추모공원으로 사후 시신을 기증한 분들이 모셔져 있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20년 전에 시신 기증을 신청해 놓으셨다. 돌아가신 뒤 의과대학에서 교육·연구를 마치면 화장을 거쳐 이곳에 모시고, 가족에게는 안내문을 등기우편으로 보낸다.

시아버지는 2024년 9월에 돌아가셨고 대학으로 가셨다가 지난해 이곳에 입주(!)하셨다. 어머니는 아직 이곳에 모시지 못했다(의과대학에서 따로 연락을 받지 못했으니 이때까지는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우리는 생전 아버지가 애정하시던 롤케이크와 사과, 소주 한 병도 넉넉히 올려 드렸다.

어머니는 이미 와 계셨다
▲ 취향 가득 제사상 생전 좋아하시던 롤케이크, 사과, 소주로 올린 제사상. 황태포는 예비 안주. 한 병을 다 드셨다.
ⓒ 정현주
아버지가 취하시는 동안 나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생(生)과 졸(卒)이 적힌 날짜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도 오실 때가 됐는데, 아직 대학에 계신가."
"그러게. 오늘 토요일이라 어려울 것 같고, 다음 주 사무실에 전화해 봐야겠다. 근데 어?!"

아버지 인사를 마치고 나가는 길, 토요일이라 닫혀 있을 줄 알았던 사무실이 열려 있었다. 남편은 혹시나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나온 남편의 손에는 '13-350'라고 적힌 쪽지 하나가 들려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다시 내려왔던 길을 올라갔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시아버지가 계신 곳은 12동이다. 바로 옆을 둘러봤지만 13동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쪽저쪽으로 갈라져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어머니를 찾았다. 이름 석 자가 눈앞에 있었다. 어머니는 이미 와 계셨다(알고 보니 우리가 8월 초 이사하던 즈음 안내문이 예전 집 주소로 등기발송되었고, 몇 차례 부재중 처리되어 우체국에 보관되어 있었다).
▲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만났다 화려한 장식의 시아버지가 계신 곳. 새초롬하게 이름 석자만 있는 시어머니. 빨리 꾸며드려야겠다.
ⓒ 정현주
어머니는 삐지신 게 분명했다. 이름 석 자만 새초롬하게 내밀고 계셨다. 살아 계실 때 하루에도 몇 번씩 '카톡카톡' 생존 신고를 보내던 분이었다. 그때는 답도 잘 안 한다고 그렇게 서운해하시더니, 돌아가신 뒤에도 '나 여기 있다'고 신호를 보내고 계셨던 걸까. 우리는 하마터면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그제야 며칠째 머릿속을 떠돌던 것들이 한곳으로 모였다. 카톡 영상도, 남편이 보여준 노래도, 자꾸 시어머니 생각이 나던 것도.

"어머니, 마음 푸세요. 당장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던 사십 대 정장 사진으로 액자를 주문할게요. 아버지는 십자가 꽃병으로 했는데 어머니는 뭐가 좋으세요? 성모 마리아 꽃병도 예쁘더라고요. 사진 문구에는 뭐라고 넣을까요? 명색이 막내 며느리가 작가인데 멋지게 써 드릴게요. 예쁘게 만들어서 다음 달 입국하는 어머니 딸들과 함께 올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내게 불어온 가을바람은 조금 뜻밖의 곳에서 왔다. '봄날은 간다'를 부르시던 어머니가 가을에 우리에게 도착했다. 혼자 계시던 아버지에게는 어머니가 왔고, 우리에게는 이제 두 분을 함께 찾아갈 곳이 생겼다.
▲ 용인추모공원 13 소문도 없이 시어머니가 와 계셨던 추모공원 13동. 크게 혼날 뻔 했다. 그래서였나. 더 반가웠다.
ⓒ 정현주
《 group 》 요망진 중년 : https://omn.kr/group/2026_midlife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처럼 요망지게(야무지게), 똘망똘망하게, 유쾌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게 살아온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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