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시장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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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들어 한국 주식시장은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짧은 기간에 한국 주식시장이 시가총액 세계 6위까지 올라간 일은 한국 기업의 높아진 위상과 반도체 산업의 성과를 보여준다.
시가총액 순위가 높아졌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주식시장이 이전보다 더 나은 시장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이 경제 규모가 더 큰 독일의 증시를 앞섰다고 해서, 한국 주식 시장이 제조 기업의 자금 조달을 더 잘 뒷받침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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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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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실시간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가 표시돼 있다. 2026.9.23 |
| ⓒ 연합뉴스 |
짧은 기간에 한국 주식시장이 시가총액 세계 6위까지 올라간 일은 한국 기업의 높아진 위상과 반도체 산업의 성과를 보여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 인공지능 산업의 성장에 따른 이익과 투자 확대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반영됐다. 주주권 보호와 기업지배구조 개선도 한국 주식의 할인 요인을 줄일 수 있는 변화였다.
시가총액의 확대와 생산적 금융의 기준
시가총액 순위가 높아졌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주식시장이 이전보다 더 나은 시장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업의 자금조달을 뒷받침하는 기본 기능을 보면, 주식시장이 빠르게 커진 올해 상반기에 기업이 주식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오히려 줄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기업의 주식 공모 발행액은 2조 9786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9.6% 감소했다. 일반회사채 발행도 31.5% 줄었고, 일반회사채 발행액 중 기존 채무를 갚기 위한 차환 목적의 비중은 72.9%였다. 반면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의 총발행액은 68.0% 증가했다. 주식시장의 평가금액이 빠르게 커지는 동안 기업의 자금조달에서는 다른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시가총액은 특정 시점의 상장주식 시장가치를, 기업의 자금조달액은 일정 기간 기업이 실제로 확보한 자금의 규모를 나타낸다. 100주를 발행한 기업의 주가가 1만 원에서 2만 원으로 오르면 시가총액은 10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기업으로 새로 들어가는 돈은 없다. 기업이 신주 10주를 2만 원에 발행하면 20만 원의 신규 자금이 유입된다.
유통시장의 가격 발견과 유동성은 기업의 자금 조달을 뒷받침한다. 주가가 기업의 미래 현금 흐름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적정한 유동성이 확보되면 기업은 더 유리한 조건으로 신주를 발행할 수 있다. 주식을 활용한 인수합병과 임직원 보상도 가능해진다. 투자자 역시 필요할 때 주식을 팔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장기투자에 참여한다.
주식 유통시장의 활발한 거래가 기업의 새로운 투자로 이어지려면,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필요한 시점에 장기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제도와 투자자 기반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 시가총액 순위를 높이는 것보다 중요하다. 주식시장 정책의 성과도 기업의 투자와 성장을 얼마나 충실하게 뒷받침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여기에서 생산적 금융의 의미를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금이 단지 부동산 시장에서 주식시장으로 이동했는지를 넘어, 그 돈이 기업의 설비투자와 기술 개발, 생산성 향상에 얼마나 연결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부동산을 팔아 받은 돈으로 투자자가 유통시장에서 기존 주식을 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자산의 보유자가 바뀌고 주가가 오를 수는 있지만 기업의 설비와 연구개발 자금이 바로 늘지는 않는다. 주식의 장기 가치는 기업이 창출할 현금 흐름에 기초하지만, 단기 거래에서는 다음 투자자가 더 높은 가격으로 사줄 것이라는 기대가 앞설 수 있다. 이런 거래가 반복되면 투자 대상은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바뀌어도 기존 자산의 가격 상승과 재매각에 의존하는 성격은 남는다. '부동산에서 주식으로의 머니무브'를 생산적 금융의 성과로 평가하려면 기업의 신규 투자와 연결되는 경로까지 확인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이 보여주는 자본시장의 조건
미국 주식시장의 규모도 이러한 기준에서 살펴야 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2026년 보고서에 따르면 상장기업 시가총액은 미국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216%, 일본은 157%, 영국은 97%, 유로 지역은 67%다. 미국·일본·유로 지역은 2024년, 영국은 2022년 기준이다. 미국 시장에는 세계적 플랫폼·소프트웨어·반도체·바이오 기업이 모여 있고, 이들이 세계에서 벌어들일 미래 이익이 주가에 반영된다. 연금과 펀드의 장기 투자자 기반, 창업 초기의 벤처투자에서 사업 확장을 위한 후속 투자, 기업공개(IPO), 상장 이후의 추가 증자와 인수 합병으로 이어지는 자금조달·회수 경로도 발달해 있다.
미국 시장의 크기는 기축통화, 거대한 단일 내수시장, 세계적 기업의 해외이익, 무형자산 중심 산업의 성장, 장기간 축적된 연금 자산과 위험 자본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한국이 가계의 주식 투자를 늘리는 것만으로 미국과 같은 규모와 구조의 주식 시장을 만들기는 어렵다. 미국에서 배워야 할 것은 기업이 성장 단계에 따라 다양한 투자자를 만나고, 투자자가 위험과 성과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관행이다.
유럽과 제조업 국가의 경험은 또 다른 시사점을 준다.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이 경제 규모가 더 큰 독일의 증시를 앞섰다고 해서, 한국 주식 시장이 제조 기업의 자금 조달을 더 잘 뒷받침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독일의 많은 중소·중견기업은 상장하지 않은 채 내부 자금과 은행 대출을 활용하며, 독일재건은행(KfW)의 정책 금융도 기업의 투자를 적극 뒷받침한다. 가족 소유를 유지하면서 성장하는 기업도 많다. 따라서 시가총액 순위만으로 기업의 투자자금 조달 여건을 평가할 수는 없다.
제조업 국가의 주식 시장이 모두 작은 것도 아니다. 일본은 시가 총액이 GDP의 약 157%에 이른다. 주식시장의 규모는 제조업 비중뿐 아니라 기업의 상장 여부, 소유구조, 해외이익, 연금제도와 주가 평가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 큰 시장은 유동성과 투자자 기반을 넓힐 수 있지만, 시가총액 순위만으로 주식시장이 기업의 자금조달과 투자자의 장기 자산형성을 얼마나 잘 뒷받침하는지 판단할 수는 없다.
유럽연합이 추진하는 '저축투자연합'은 자본시장을 발전시키려는 목적을 잘 보여준다. 각국으로 나뉜 시장을 연결하고 장기 투자를 늘려, 은행 대출만으로 자금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과 혁신기업의 성장을 지원하려는 정책이다. 저축이 기업의 새로운 투자로 이어지는 경로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성장단계에 맞는 금융
한국에도 산업과 기업의 성장단계에 맞는 금융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검증된 수주와 비교적 안정된 영업 현금 흐름을 가진 중소·중견 제조 기업의 설비 투자에는 장기은행대출이 적합할 수 있다. 회사채 발행 여건을 갖춘 기업에는 채권시장도 중요한 조달 경로다. 기술의 성공 가능성과 시장규모를 사전에 확정하기 어려운 혁신기업에는 손실 위험을 감수하고 성장의 성과를 나눌 투자자가 필요하다. 자본시장은 지분 투자를 통해 이들 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정책 금융이 선도적으로 투자하고 민간자금의 참여를 이끌어, 혁신 기업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는 자본 시장을 육성해야 한다. 기업이 기술 개발에서 사업화와 사업 확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맞춰 민간의 후속 투자가 이루어지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한국의 중소·성장기업 대상 주식시장은 상장기업 수를 기준으로 보면 이미 상당한 규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2023년 말 코스닥·코넥스 상장기업은 1,742개로, 미국의 나스닥 캐피털 마켓과 NYSE 아메리칸을 합한 1,376개보다 많았다. 상장기업의 수와 함께, 이들 기업이 상장 이후에도 성장에 필요한 자금을 얼마나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2026년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소수 종목에 대한 쏠림과 레버리지 상품의 급팽창이 두드러졌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7월 15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2%였다. 두 기업을 기초로 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16개의 시가총액은 5월 27일 4조 4000억 원에서 7월 15일 11조 9000억 원으로 늘었다. 이들 상품에 대한 투자는 두 기업에 신규 사업자금을 직접 공급하는 거래는 아니다. 약정한 투자 배율을 유지하기 위한 매매가 한꺼번에 몰리면, 기초주식의 등락과 시장 전체의 변동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자금 배분과 위험 관리를 바꾸는 제도개혁
먼저 주식시장 정책의 성과를 재는 숫자를 넓혀야 한다. 주가와 시가총액, 거래대금에 더해 기업이 주식과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의 규모와 조건을 함께 봐야 한다. 그 자금이 설비투자와 기술 개발에 어떻게 쓰였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도 평가해야 한다.
기업의 성장을 뒷받침할 장기 투자자도 늘려야 한다. 연기금과 보험사, 민간 운용사가 각자의 투자 목적에 맞춰 성장 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정책 금융은 민간의 후속 투자를 끌어야 한다. 자금을 운용하는 사람의 평가와 보상에도 장기 투자 성과를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단기 수익률에 따라 보상이 결정된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 기업 투자를 늘리기 어렵다.
소액주주 보호와 지배 주주의 사익편취 방지는 투자자의 권리와 시장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기본 원칙이다. 기업의 투자와 주주 환원은 투자기회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수익성 있는 투자 기회를 가진 기업은 장기투자계획과 집행 성과를 충실히 설명하고, 투자 기회가 부족한 기업은 잉여현금을 주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의 규모만으로 모든 기업을 평가하면 미래 투자가 필요한 기업까지 단기 현금 배분 경쟁으로 몰아갈 수 있다.
레버리지 상품의 규모와 매매가 시장 전체에 미치는 위험도 관리해야 한다. 같은 주식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상품의 매매가 한꺼번에 몰려 주가를 크게 흔들 수 있다면, 상품의 추가 발행 규모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장기 투자와 국민의 장기 자산 형성을 지원하기 위한 추가 세제 혜택에서도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제외하는 것이 타당하다.
기업의 자본 형성과 투자자의 자산 형성을 함께
2026년 한국 증시는 반도체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소수 종목과 레버리지 상품에 대한 집중 위험을 함께 드러냈다. 반도체 기업의 이익과 투자 확대는 생산능력과 산업 경쟁력에 관한 성과다. 그 기대가 소수 종목과 레버리지 상품에 집중될 때 발생하는 변동성은 별도로 관리해야 할 금융의 위험이다. 생산적인 사업을 하는 기업의 주식에 투자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거래와 금융구조의 건전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한국 주식시장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기업의 자금조달과 산업전환을 더 충실히 뒷받침하도록 시장의 운영 방식과 정책의 평가 기준을 바꾸자는 뜻이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필요한 장기자금을 조달하고 기술 개발과 생산성 향상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투자자의 권리가 보호되고 성과가 공정하게 배분되는 것도 시장이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이다. 이러한 조건은 기업의 성장과 현금흐름 개선이 기업가치와 투자자의 장기 수익으로 이어질 기반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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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기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 |
| ⓒ 포럼사의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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