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태어나 은평구에서 스러진 미군 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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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서울 수복 작전에서 전사한 미 해군 대위 고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의 76주기 추모식이 22일 오전 은평평화공원(역촌역 4번 출구 앞)에서 열렸다. 사단법인 대한민국해군협회가 주관하고 국가보훈부와 해군본부, 주한 미해군사령부, 은평구청이 후원한 이날 행사에는 정호섭 해군협회장과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한 내외빈과 시민들이 참석했다.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은 "국경을 초월한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뜻깊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고, 김경률 해군참모총장의 추모사를 대독한 박진철 한미연합사 인사부장은 "쇼 대위가 목숨 바쳐 지켜낸 자유와 평화를 우리 해군은 확고한 전투준비태세로 굳건히 수호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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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시민신문 박은미]

한국 이름 서위렴(徐衛廉) 2세로 불린 쇼 대위는 1950년 9월 22일, 지금의 은평구 응암동 일대인 백련산 자락 냉정골에서 매복한 인민군의 총탄에 맞아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서울이 완전히 수복되기 꼭 일주일 전이었다.

국민의례로 문을 연 추모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와 함께 애국가, 그리고 미국 국가가 나란히 연주되며 한·미 두 나라가 함께 기리는 자리임을 알렸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그리고 고 해밀턴 쇼 대위에 대한 묵념이 이어졌다.
우동은 해군협회 이사가 낭독한 경과보고는 쇼 대위의 짧지만 뜨거웠던 생애를 되짚었다. 이어 정호섭 해군협회장은 추모사에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젊은 미국인의 충정에 우리는 존경과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분의 숭고한 희생과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은 우리 역사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우 서울지방보훈청장은 "국경을 초월한 희생정신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뜻깊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고, 김경률 해군참모총장의 추모사를 대독한 박진철 한미연합사 인사부장은 "쇼 대위가 목숨 바쳐 지켜낸 자유와 평화를 우리 해군은 확고한 전투준비태세로 굳건히 수호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2012년 어느 가을 오후 평화공원에서 아버지의 동상과 기념비 주변을 즐겁게 뛰노는 한국의 아이들과 가족들을 바라보던 순간을 떠올리며 "수많은 한·미 군인 영웅들의 희생 덕분에 가능해진 자유롭고 민주적인 한국의 가족들에게 매일 둘러싸여 아버지를 기억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방법은 없다"고 적었다. 편지 말미에는 쇼 가문의 두 번째 책이 이달 출간되었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축도에 나선 준태 박 주한미해군사령부 목사는 쇼 대위의 마지막 순간을 전했다. 그는 "숨을 거두기 몇 분 전까지도 쇼 대위는 자신의 안위보다 곧 남한 민간인에게 닥칠 포격을 걱정하며 대피를 명령했다"며 "그의 마지막 행동은 한 생명이라도 더 지키려는 의지이자, 그가 얼마나 한국을 사랑했는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1943년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대학을 졸업하고 해군에 입대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선에 참전했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에는 PT-518 고속어뢰정을 직접 몰아 아이젠하워 장군과 커크 제독 등 연합군 수뇌부를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시켰다.
종전 후인 1948년 무렵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진해의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 설립을 지원하고 교관으로 근무하며 생도들에게 함정 운용과 해안 경비를 가르쳤다. 대한민국 해군의 뿌리에 그의 손길이 닿아 있는 셈이다. 이후 가족과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한국을 연구하는 박사과정을 밟던 중, 1950년 6·25 전쟁 소식을 들었다.
그는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지금 한국 국민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피 흘리고 있는데, 이를 먼저 돕지 않고 외면한 채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평화 시에 한국에 선교사로 돌아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습니다."
미 해군에 재입대한 그는 한국어와 지리에 능통한 인재로서 인천상륙작전에 정보장교로 참여했고, 미 해병 1사단 5연대 3대대 소속으로 서울 수복 작전에 나섰다. 그리고 1950년 9월 22일 아침, 백련산 자락 냉정골에서 매복한 인민군의 총탄에 맞아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한국 땅을 다시 밟은 지 7일째 되는 날이었다.
잊혔던 이름, 다시 우리 곁으로
쇼 대위의 유해는 아버지의 손으로 마포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돼 지금도 부모 곁에 잠들어 있다. 그는 1950년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훈장을, 195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금성을지무공훈장을 추서받았고, 2023년에는 국가보훈부와 한미연합사가 선정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한동안 응암동 어린이공원 한쪽에 밀려나 잊혔던 그의 전사기념비는, 2008년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의 건의와 노재동 당시 은평구청장의 추진으로 되살아났다. 그 결실로 2010년 6월, 6·25 60주년이자 쇼 대위 전사 60주기에 맞춰 은평평화공원이 문을 열었고, 동상과 기념비가 지금의 자리에 함께 섰다.
동상에는 그가 살아낸 한 문장이 새겨져 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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