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상에 놓인 빈 수저… '이산가족의 날'이 우리에게 묻는 것

김성근 2026. 9. 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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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모여 온기를 나누는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산가족 문제를 오직 남북 당국 간의 정치적 타결을 통한 '물리적 상봉'의 시각으로만 제한해 바라보았다.

1983년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부터 남북을 오갔던 상봉의 현장은, 특정 가족의 눈물을 넘어 사회 전체가 분단의 상처를 함께 확인하고 화해를 다짐하던 '사회적 기억의 장(場)'이자 '공공의 연대 약속'이었다.

그 기억을 지키고 이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9월 23일 '이산가족의 날'을 맞아 우리가 마땅히 응답해야 할 시대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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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이 멈춰 선 자리, 분단의 아픔을 사회적 '평화 자원'으로 승계할 때

[김성근 기자]

▲ 철조망에 매달린 염원의 리본들 추석을 앞두고 찾은 파주 임진각 독개다리 인근 철조망에 이산가족과 시민들의 남북 상봉 및 평화 염원을 담은 리본들이 수놓아져 있다. 9월 23일은 법정기념일인 '제4회 이산가족의 날'이다.
ⓒ 김성근
온 가족이 모여 온기를 나누는 추석 명절이 다가왔다. 고향을 찾고 오랜만에 친지들의 안부를 묻는 설렘으로 들뜨는 계절이지만, 그 풍성함 뒤에는 수십 년째 북녘 고향을 향해 닿지 못할 그리움을 삼키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산가족이다.

정부는 2023년 '남북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교류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음력 8월 13일, 즉 추석 이틀 전을 법정기념일인 '이산가족의 날'로 제정했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하는 9월 23일 '제4회 이산가족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한반도 현대사가 남긴 가장 참혹한 인도적 비극을 마주하는 공적 환기의 날이다.

오랫동안 상봉 현장을 지켜보며 접해온 통계는 이산가족 문제가 결코 한가한 과제가 아님을 경고한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 통합시스템에 따르면 등록 신청자 13만 4천여 명 중 사망자는 이미 10만 명을 넘어섰다. 현재 남은 생존자 약 3만 3천 명 가운데 80대 이상 고령자가 66.6%로, 생존자 3명 중 2명이 인생의 마지막 경계에 서 있다.

매달 수백 명의 이산가족이 북녘땅의 가족과 소식조차 나누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는 실정이다. 남북관계의 경색과 당국 간 대화의 장기 중단이 이어지면서 "이제 이산가족 상봉은 불가능한 과거의 유물이 된 것 아니냐"는 회의와 체념마저 감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다각도로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비협조나 정세의 악화가 이산가족 사업 추진의 잘 알려진 '드러난 장애요인'이라면, 우리 사회 내 국민적 무관심의 증가는 밑바닥에 숨어있는 '더 큰 방해요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산가족 문제를 오직 남북 당국 간의 정치적 타결을 통한 '물리적 상봉'의 시각으로만 제한해 바라보았다. 만남의 길이 막히자 문제 자체가 소멸하는 것처럼 치부되고 무관심해진 이유다. 하지만 이산가족은 단순한 시혜적 상봉의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전쟁과 분단이라는 국가적 비극이 개인과 가족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를 몸소 증언하는 역사적 주체다.

1983년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부터 남북을 오갔던 상봉의 현장은, 특정 가족의 눈물을 넘어 사회 전체가 분단의 상처를 함께 확인하고 화해를 다짐하던 '사회적 기억의 장(場)'이자 '공공의 연대 약속'이었다. 행사와 물리적 만남이 중단되고 무관심이 깊어진다고 해서 그 아픈 기억까지 소멸하게 둘 수는 없다. 상봉의 길이 닫힌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는 바로 '기억의 제도화'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이산 1세대의 생물학적·역사적 흔적을 보존하는 일이다. 유전자(DNA) DB 구축과 영상 증언록 자료 전산화는 훗날 남북관계가 회복되었을 때 헤어진 후손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과학적 토대이자, 분단의 비극을 실증하는 불멸의 사료가 된다.

이와 함께 정치적 정세와 분리된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당장 대면 만남이 어렵다면 편지 한 장, 영상 메시지 하나라도 오갈 수 있는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은 남북 당국 모두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준수해야 할 기본적 책무다.

나아가 이산가족의 상처를 다음 세대의 '평화 교육 자원'으로 전환하는 승계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 이별의 아픔을 적대감이나 복수심으로 남겨두는 것은 또 다른 갈등을 부를 뿐이다. 국민적 무관심을 넘어 이들의 아픈 기억을 우리 사회 전체의 자산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분단이 가져온 인간성 파괴를 직시하고, 이를 화해와 공존의 동력으로 승계하는 '평화적 기억 전환'이 시급하다.

광복과 해방은 식민 지배를 끝냈지만, 이산가족에게는 회복되지 못한 삶의 그늘을 남겼다. 이제 이산가족 문제는 세월 속에 자연 소멸할 과거의 비극이 아니다. 그들의 아픔을 우리 사회의 공통 기억으로 수용하고 평화의 이정표로 승계하는 일은, 언젠가 다시 열릴 남북 재회의 길을 기약하는 희망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그 기억을 지키고 이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9월 23일 '이산가족의 날'을 맞아 우리가 마땅히 응답해야 할 시대적 책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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