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북 제재 효과 없어”…트럼프발 ‘핵 묵인론’ 보조 맞추나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의 추가 핵 개발 중단과 대북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구상을 직접 제안했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핵탄두 보유량을 “57개”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데 이어 북ㆍ미 대화 재개 가능성이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다. 한ㆍ미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보다 북한의 핵 보유 현실을 일단 인정한 채 추가 증강을 막는 현실론에 나란히 가까워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공개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별다른 실효성이 없는 제재와 추가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개발 중단을 맞바꾸는 것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상황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삼는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매년 10~20개의 핵무기를 추가로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거나, 이미 생산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공개된 AP 인터뷰에서도 이 대통령은 “달리는 차의 방향을 바꾸려면 일단 멈춰 세워야 한다”며 “완전한 비핵화를 일거에 달성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현실적인 해법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과 미국 모두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대화에 나설 의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북핵 동결을 우선하자는 현실론을 꺼낸 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미 시사주간지 타임 인터뷰에서 중단→감축→완전한 비핵화 과정에서 중단 조치에 “일부 보상”이 가능하다는 뜻을 밝혔다. “첫째 단계로 지금은 핵물질 추가 생산 중단, 핵물질 해외 반출 안 하기, 탄도미사일ㆍICBM 기술 개발 중단, 이것만 단기 목표로 잡고 협상해야 된다고 본다. 지금 현재 제재라고 하는 게 아무 소용이 없다”(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 “트럼프에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고 제재와 압박은 효과가 없다. 이제는 핵물질 추가 개발을 중단시키는 협상을 할 때다’라고 말했다”(6월 19일 G7 순방 브리핑)고 발언했다. 다만 이번엔 제재 완화와 핵ㆍICBM 개발 중단을 직접적인 교환 대상으로 묶었다는 점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이 대통령의 구상이 주목받는 건 트럼프 역시 최근 북한의 핵 능력을 기정사실에 가깝게 다루는 듯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어서다. 트럼프는 지난달 19일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숫자를 거론하면서도, 향후 북ㆍ미 대화 목표가 여전히 비핵화냐는 질문에는 답을 피했다. 대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미 고위 당국자도 지난 18일 “트럼프는 김정은과 전화로든 직접 만나서든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이제 공은 상당히 북한 쪽에 넘어가 있다”고 밝혔다.
향후 북ㆍ미 정상회담이 열릴 경우 ‘동결-제재 완화’가 새로운 협상 프레임으로 작동할지가 핵심 변수다.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시하며 대폭적인 제재 완화를 요구하자 트럼프는 “영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회담장을 떠났다. 현존 핵 능력을 당장 폐기하기보다 추가 증강을 막는 데 초점이 맞춰지면 협상의 문턱은 낮아질 수 있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정은은 결국 북한 핵을 어떤 형태로든 인정하는 발언을 트럼프에게 얻으려 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그걸 주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도 “긴 비핵화 과정에서 핵은 있지만 쓰지 못하게 하는 ‘핵 불용론’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한ㆍ미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정상 차원의 메시지와 한ㆍ미 외교당국의 공식 문구 사이에는 온도차가 여전하다. 같은 날 뉴욕 유엔총회를 계기로 열린 한ㆍ미ㆍ일 외교장관회의 공동성명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의 핵ㆍ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위한 수익 창출 지원 금지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각국의 별도 발표자료에선 수위가 갈렸다. 한국 외교부는 “대화와 외교를 통한 한반도 평화ㆍ안정 유지 및 비핵화 목표 실현”이라고 적은 반면, 미ㆍ일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이행, 핵ㆍ미사일 자금원 차단 등을 담았다. 북ㆍ미 대화 가능성과 이 대통령의 북핵 동결ㆍ제재 완화 구상이 맞물린 만큼 한국 정부가 대북 메시지 수위를 상대적으로 낮춘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핵ㆍICBM 개발 중단과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것이 정부 입장이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일단 중단시키는 과정 속의 한 틀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尹 “이 XX야, 네가 책임져!”…9시간 술친구 장제원에 온 전화 | 중앙일보
- “女벗방 그곳서 별풍선 받았다”…298억 벌었던 임창용의 후회 | 중앙일보
- 국어 7등급→서울대 치대 합격…전국일주 20일, 뇌 바뀐 비결 | 중앙일보
- “모두 옷 벗겨져 있었다”…남아공서 두 달 새 여성 8명 피살 ‘발칵’ | 중앙일보
- “5분마다 1명씩 사라졌다”…추석 연휴 덮친 악몽, 무슨 일 | 중앙일보
- “AI처럼 완벽한 미모”…외신 놀란 ‘한국 펜싱 국가대표’ 정체 | 중앙일보
- 女 속옷 안에서도 튀어나왔다…비행기 좌석 밑 ‘수상한 흰 가루’ 정체 | 중앙일보
- [단독] 마운자로 ‘10초 컷’ 처방…임신부·아이도 435건 받아갔다 | 중앙일보
- “우리나라 치안 어쩌다 이 지경 됐나” 나경원도 경악한 영상 | 중앙일보
- 심수봉 저격 그날…김다현 父 “영상본 뒤 혼자 펑펑 울더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