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월드컵 잿더미 위 피운 불꽃…다시 달리는 손흥민·이강인

비극으로 막을 내린 북중미 월드컵 후 석 달. 참패의 잿더미로 변해버린 한국축구의 심장부에 다시 공이 굴렀다.
22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 손흥민(34·LAFC)과 이강인(25·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 오픈 트레이닝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스탠드의 200여명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손흥민!”을 외치는 꼬마팬의 목소리에 손흥민은 잔잔한 미소로 손을 흔들었다.
커리어 황혼기에 여전히 붉은 유니폼의 무게를 짊어진 캡틴 손흥민. 그리고 이제는 전면에 서야 하는 차세대 에이스 이강인. 전날 입국한 둘은 볼 터치 대신 사이클 패달을 밟고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이따금씩 짧은 담소가 오갔지만 긴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땀방울 사이로 스치는 눈빛 교환에 무너진 한국축구를 다시 일으켜 세우자는 무언의 다짐이 서려 있었다.

로베르토 모레노(스페인) 신임 감독은 개인 SNS에 축구협회 엠블럼을 가리키는 사진과 함께 “새로운 여정의 첫 걸음. 한 나라를 대표하는 유니폼에 대한 설렘, 노력, 존중. 가자 대한민국”이라고 썼다.
그의 각오처럼 첫 훈련 풍경은 활기와 치열함이 공존했다. 대형 스피커에서 경쾌한 팝음악이 뿜어져 나왔고, 상공에는 감독 요청으로 띄운 전술분석용 드론이 쉴새없이 프로펠러를 돌렸다. 큰 틀에서 세션을 짠 모레노는 훈련은 코치에게 맡긴 채 한발 뒤에서 매서운 눈빛으로 선수들을 관찰했다.
모레노의 핵심 과제는 ‘두 천재’ 손흥민과 이강인의 공존법을 찾는 거다. FC바르셀로나 코치 시절 전술서 『나의 4-4-2 레시피』를 집필했던 그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4-4-2 포메이션을 쓰겠다고 공언했다. AT 마드리드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처럼 이강인을 투톱의 한 축으로 기용할 수도 있고, 오른쪽 윙어로 벌려 세우면 손흥민을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전진 배치가 가능하다.

올해 11월까지 임시 지휘봉을 쥔 모레노는 아직 주장을 낙점하지 않았지만 월드컵 무대에서 리더십에 상처를 입은 손흥민에게 다시 완장을 맡길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훈련장에 들어서던 모레노와 손흥민은 한참 동안 쑥덕쑥덕 밀담을 나눴다.
그 사이 이강인 역시 동료들을 살뜰히 챙기는 ‘그라운드 실질적 리더’가 됐다. 올여름 포르투갈 나시오날로 이적해 유럽파가 된 송민규(27)의 일화가 이강인의 성숙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송민규는 “장거리 비행으로 잠을 잘 못잤는데, 경험이 있는 강인이가 점심 먹고 끌고가 냉탕과 온탕을 시켜줬다”고 했다. 또 마드리드 경유 과정에서 20일 AT 마드리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마드리드 더비’를 직관한 송민규는 “강인이가 먼저 연락해와 스카이박스 티켓을 마련해줬다”고 전했다.

손흥민과 이강인은 오는 24일 수원에서 에콰도르와 평가전을 치른다. 지난 6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던 북중미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전 이후 100여일 만에 두 에이스가 다시 함께 달린다.
천안=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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