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사랑'은 왜 물음으로 읽히나

이종길 2026. 9. 2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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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이 두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파업 전 호석이 동료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려 직접 만든 대리석 평상이 빨래를 너는 자리가 됐다.

물론 결말에서 철이가 훔쳐 달아난 호루라기를 부는 소리는 세습된 자본의 권력을 빼앗아 하층민의 목소리로 바꾸려는 선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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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노동자 부부와 상류층 부부의 충돌
카메라 앞 타인의 고통, 창작자의 윤리를 묻다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 컷.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자본의 폭력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훼손하는가. 타인의 비극을 관조하는 예술은 과연 윤리적인가.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은 이 두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정리해고로 삶이 무너진 노동자 부부 호석(설경구)·미옥(전도연)과 이들의 고통을 다큐멘터리로 담으려는 상류층 부부 상우(조인성)·예지(조여정)가 충돌하는 이야기다. 해고 노동자의 붕괴, 수평적 연대가 불가능한 계급 갈등, 피사체를 착취하는 창작 윤리라는 세 층위에서 현대 사회의 모순을 짚는다.

해고: 노동과 생존의 붕괴

호석이 무너지는 출발점은 공장 점거 파업이다. 스스로 '해방구'라 부르던 농성장이 경찰 특공대의 진압으로 쑥대밭이 된다. 옥상 바닥에서 방패와 군홧발에 짓밟히는 호석을 두고 후배와 동료들은 달아난다. 떠나는 뒷모습과 함께 인간에 대한 믿음은 사라진다.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 컷.

구조조정은 노동자를 '산 자'와 '죽은 자'로 가른다. 호석은 일상으로 돌아간 '산 자' 후배가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사는 모습을 미행하며 자신을 텅 빈 유령으로 규정한다. 정신적 파국은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이 모인 집단 심리치료실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회사를 계속 다니는 이웃을 마주칠까 엘리베이터에서 죄인처럼 숨죽이는 부인, 빨갱이라는 모욕 앞에서 살아남으려 웃다가 체한 동료의 고백이 이어진다.

이런 흔적은 집 마당에도 남아 있다. 파업 전 호석이 동료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려 직접 만든 대리석 평상이 빨래를 너는 자리가 됐다. 그사이 투쟁과 연대라는 말은 헛소리로 치부된다. 자본은 밥줄을 끊는 데서 나아가 노동자가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고 고립시킨다.

계급 갈등: 단절된 세계와 자본가의 위선

영화는 관찰하는 자본가와 관찰당하는 노동자를 한 공간에 두고 두 계급의 격차와 폭력성을 드러낸다. 상우는 선대에게 막대한 부를 물려받은 상류층을 대변한다. 극 중 일제강점기 순사였던 상우의 할아버지가 쓰던 호루라기는 세습되는 자본과 공권력의 폭력을 암시하는 핵심 은유다. 별장 관리인 민식은 호루라기 소리에 여전히 머리를 조아린다. 그 모습에서 수직적 계급 질서는 현재진행형이 된다.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 컷.

상우의 호화로운 별장은 두 계급이 충돌하는 공간이다. 만취한 호석은 상우의 세련된 화장실 사방에 오줌을 갈긴다. 모든 것을 잃은 하층민이 별장에 가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다. 상우는 분노하지 않고 낄낄거리며 함께 바닥에 오줌을 눈다. 상우의 동조는 호석의 일탈을 부자의 유희로 만든다. 이 차이는 노동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호석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일했고, 상우는 노트북 클릭 몇 번으로 거액의 잭팟을 터뜨린다.

상우는 바닷가에서 자유를 빙자해 알몸으로 물속의 미옥에게 접근한다. 권력의 우위를 과시하는 폭력이다. 옷으로 몸을 가리며 뒷걸음질 치는 미옥은 자본 앞에서 방어할 수 없는 하층민의 처지를 보여준다. 지하 홈바에서는 미옥이 끈적한 노래를 부르고 상우가 클라리넷을 분다. 호석은 넋이 나간 채 춤을 춘다. 아들 철이의 시선에 잡힌 이 모습은 불협화음에 가깝다.

창작 윤리: 소통의 실타래와 카메라의 폭력성

이 감독은 예지의 카메라로 창작자의 윤리를 묻는다. 예지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노동문제의 구체성을 담아 노동의 가치를 묻겠다며 지원금을 따낸다. 그러나 현장에서 그는 피사체의 고통을 연출한다. 예컨대 미옥에게 가난하고 상처받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털어놓게 한 뒤, 슬레이트 손뼉을 치고 방금 한 이야기를 처음인 듯 다시 연기하게 한다. 미옥이 간직해 온 호석의 대기업 사원증을 꺼내 들자 줌인 샷도 주문한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는 또래보다 굼뜬 철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한다. 그런 그녀에게 상우는 "노동자들을 사랑하기 위해 메소드 연기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 '가능한 사랑' 스틸 컷.

예지의 카메라는 호석이 위험에 빠진 순간에도 꺼지지 않는다. 깊은 새벽 별장 인근 숲속 개천에서 호석이 발작을 일으킨다. 허우적대는 호석을 구조하는 대신 예지는 나무 뒤에 숨어 카메라를 돌린다. 타인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도 '좋은 그림'을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별장을 떠나는 미옥 부부에게는 잃어버린 호루라기의 행방을 캐묻는다. 연대를 내세우며 하층민의 삶에 개입하던 태도가 자신의 소유물을 향한 의심 앞에서 곧바로 거둬지는 순간이다. 소통의 실타래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가능한 사랑'은 제목과 달리 낭만적인 구원을 허락하지 않는다. 물론 결말에서 철이가 훔쳐 달아난 호루라기를 부는 소리는 세습된 자본의 권력을 빼앗아 하층민의 목소리로 바꾸려는 선언과 같다. 그러나 현실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제목의 '가능한'이 가능성이 아니라 물음으로 읽히는 이유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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