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교리로 '임신중지' 반대... 종교인들 생각 바꿀 방법 있다 [신필규의 아직도 적응 중]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지난 16일 성평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함께 브리핑을 열고 내년 1분기까지 임신 중지 약물인 미프진(미프진미소)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 과제 중 하나인 미프진 도입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하며 급물살을 탔다.
그리고 나는 임신 중지 및 미프진 도입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톨릭·개신교인들의 미프진 도입 및 임신 중지 반대는 낡은 교리에 기반한 반사적 반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필규 기자]
|
|
| ▲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신 중지 약물 도입 방안 브리핑에서 자료를 보고 있다. |
| ⓒ 연합뉴스 |
이재명 정부의 국정 과제 중 하나인 미프진 도입은 지난 7월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하며 급물살을 탔다. 이후 한성숙 국무총리가 대정부질문에서 "여성 건강권과 직결된 낙태 문제들을 7년간 방치한 정부가 정식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하며 미프진 도입은 다시 화제가 됐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미프진 도입에 대한 질문을 받자 "직접 지시하지 않았으면 제 임기 끝날 때까지 이 상태로 그대로 유지됐을 것"이라며, 사회에 필요하지만 찬반이 나뉘어 사람들이 잘 하지 않으려는 일을 개혁이라 지칭하며 미프진 도입이 대표적인 개혁 과제임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미프진은 수요층이 명확한 약물이다. 미프진 도입에 찬성하는 이들은 이 약이 필요하거나 혹은 그 필요성에 대해 절실히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대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일단 의료인들은 현장에서 직접 이 약을 처방하거나 다뤄야 하니 전문가적 관점에서 찬반이 나뉘는 건 이해가 된다. 하지만 미프진 도입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뚜렷한 의견을 가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신 중지에 대해 개별적인 의견은 있을지라도, '임신 중지약 도입'처럼 구체적 사안에 대해 직접 입장을 내는 경우는 잘 없다. 그런데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바로 종교인들이다. 가령 천주교주교회의는 정부의 미프진 정식 도입 발표 직후 이러한 조치가 '낙태의 제도화'이고 "생명 경시를 우리 사회에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한다"고 입장을 발표했다. 개신교계의 입장도 이와 비슷하다.
|
|
| ▲ 2018년 3월 22일 당시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 등이 서울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폐지 반대 100만여 명의 서명이 담긴 서명지와 탄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헌법재판소로 들어서고 있다. |
| ⓒ 연합뉴스 |
만약 수정란이나 배아가 온전한 한 명의 인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생명'이긴 하다는 관점으로 접근한다고 이해해 보자. 그렇다고 해도 천주교나 개신교계의 태도는 매우 표리부동해 보인다. 세속 사회는 '생명 보호'를 지향하지만 생명을 죽이는 걸 아예 금기시하진 않는다. 생명을 죽여 육식을 하고 자연을 밀어 거기에 인간이 살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천주교계나 개신교계가 이런 일에 반대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건 천주교나 개신교계의 인공 임신 중지 반대 주장이 합리적 숙고에 따른 존중할 만한 의견이 아니라 낡은 교리에 따른 관성적 주장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그래서 교계가 임신 중지에 대해 가진 의견과 세속 사회에서의 행보가 충돌하고 모순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나는 임신 중지의 직간접적 당사자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 합리적 고민과 깊은 숙고를 했다면 설령 생각의 차이가 있더라도 의견을 낼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속적 기준과 동떨어진 교리를 가지고 자동응답기처럼 관성적으로 같은 답을 내놓는다면, 그건 곤란하다. 건강과 안전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의견으로 취급하기에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사실 교회는 많은 걸 금지해 왔다
사실 지금까지 종교계는 교리에 따라 별의별 것을 금기시해왔다. 대표적으로 가톨릭을 한번 살펴보자. 중세의 가톨릭교회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금기시 했다. 성경의 신명기 23장 19절에 "네가 형제에게 꾸어 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은행가들이 '재량 예금'이라는 걸 발명해서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에게 재량껏 감사를 전하는 사실상의 이자 상품을 만들었는데, 주요 고객이 엄청난 헌금을 가진 가톨릭 주교와 추기경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세상은 급격히 변했다. 이제는 더 이상 교인들 간에 이자를 주고받아선 안 된다는 종교인은 없다. 대부분 은행에 예금을 넣어 놓고 주기적으로 이자를 받고 있을 것이다. 혹은 대출을 받고 이자를 내고 있거나.
가톨릭교회에는 금서 목록도 있었다. 목적은 외설적이거나 신학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내용을 담은 책을 금지하고 이를 피해 신앙을 지키는 것이었다. 지금으로선 어이가 없지만 당시 기준으로 외설적으로 보였겠다 싶은 책들이 목록에 포함돼 있다. 예를 들어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이라던가 혹은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캥>이라던가.
하지만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같은 책이 목록에 올라가 있는 건 다소 의아하다. 과학계는 종교계와 그다지 친밀하지 않으니 과학 서적이 목록에 올라간 건 이해한다고 해도 말이다. 아무튼 이 금서 목록의 구속력은 1966년에서야 사라졌다. 사상의 자유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발전한 지금 세상에서 사회학·철학·과학 도서를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종교인은 이제 거의 없다.
|
|
| ▲ 2010년 10월 14일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모낙폐)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촉구하는 천주교 신자 기자회견’을 열었다. |
| ⓒ 박정훈 |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형법상 낙태죄 조항이 헌법 정신과 맞지 않다면 법을 개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를 방패 삼아 종교인들의 눈치를 보며 입법 공백을 방치했다. 무려 7년 동안이나 말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톨릭·개신교인들의 미프진 도입 및 임신 중지 반대는 낡은 교리에 기반한 반사적 반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과거에 이들이 별의별 것들을 금기시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세상을 움직여야 한다. 인공 임신 중지와 이를 위해 필요한 약물을 구하고 사용하는 것을 불가역적인 상식이자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원칙이 단단히 뿌리내리면 종교도 결국 세상에 맞춰 태도를 바꿀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정치가 움직여야 한다. 정부의 이번 조치를 계기로, 정치도 미뤄둔 입법 공백을 이제는 메우길 바란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화영 재판 쟁점이 된 오마이뉴스 국정원 2급 비밀 보도
- 첫 금메달인데 국기·국가도 없이... 선수가 대신 부른 노래
- 징역 18년... 여인형만 유리한 사정 안 봐줬다
- 부산 북항에 나흘째 갇힌 상어... "학자로서 우울합니다"
- "발 씻겨준 은혜 잊지 않겠다"는 시아버지에게
- 이태원에서 자식 잃은, 다르면서도 같은 두 아빠의 만남
- 농지전수조사 꼭 필요한데, 왜 위기에 처했을까
- 국회의원들 '데스노트' 된 의원 보좌진 폭로
- 이 대통령, 문 전 대통령과 통화... "국민통합 의견 경청"
- '서산시 쪼개기 수의계약' 의혹, 반쪽짜리 감사한 행안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