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년 노벨상 시대를 담다]⑦125년 뒤에도 우리는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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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첫 시상 이후 125년. 과학은 한 명의 천재가 발견하던 시대에서 수천 명과 인공지능(AI)이 함께 연구하는 시대로 변했다.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한국 과학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세계적인 발견이 탄생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수인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AI가 발견할 때까지 그 연구를 기획한 사람의 공로"라며 "질문을 먼저 던졌기 때문에 AI를 이용한 연구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인 만큼 시작점을 최초 연구 기획자로 잡아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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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들이 본 가능성, 과학계가 짚은 과제
AI가 답 찾는 시대, 필요한 건 '질문할 10년'
단기 성과 넘어 연구의 시간 보장해야
편집자주
1901년 첫 시상 이후 125년. 과학은 한 명의 천재가 발견하던 시대에서 수천 명과 인공지능(AI)이 함께 연구하는 시대로 변했다. 아시아경제는 노벨상 125년을 통해 과학적 발견의 주체와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노벨상은 이러한 변화를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지를 7회에 걸쳐 살펴본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입니다. 다만 언제 나올지를 조급해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합니다."
2011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브라이언 슈미트 호주국립대 교수는 한국의 과학정책 체계가 잘 갖춰져 있다고 평가하며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2021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맥밀런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도 한국 과학자가 화학 분야의 연구 방식을 바꿨던 사례를 들며 "패러다임 전환 뒤에 한국의 과학자가 있었다"며 "10년, 20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한국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두 수상자의 발언은 한국 과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1901년 첫 시상 이후 125년. 노벨상은 뛰어난 발견을 이룬 과학자의 이름을 역사에 남겨 왔다. 오늘날의 발견이 대규모 공동연구와 첨단 장비, 인공지능(AI)의 도움 속에서 이뤄지는 만큼 한국도 가능성 측면에서 예외일 수 없다. 아시아경제가 이번 기획을 위해 만난 국내외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한 지점에서 맞닿았다. 노벨상 수상자가 없는 한국 과학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세계적인 발견이 탄생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AI가 답을 찾는 시대, 과학자는 질문을 던진다AI는 연구자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앨리슨 노블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겸 영국 왕립학회 부회장은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AI와 로봇이 결합한 화학 실험실을 예로 들었다. AI가 기존 논문을 검토해 실험을 제안하고, 로봇이 실험과 분석을 수행한 뒤 결과를 보고하는 방식이다. 노블 교수는 이 같은 연구 과정에서 인간이 맡아 온 일부 역할이 대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AI는 연구자에게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노블 교수는 "과거에는 연구자들이 소프트웨어 작업에 많은 시간을 써야 했지만, 이제 AI 코딩 덕분에 창의적인 일과 실험 설계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됐다"며 "한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큰 목표에도 도전할 수 있다"고 전했다.

연구 속도가 빨라진다고 검증 과정이 간단해지거나 생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료영상 분야에서 AI를 연구해 온 노블 교수는 "AI의 결과가 사람의 판단과 다르다면 다른 전문가에게 다시 확인받아야 한다"며 "적절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AI의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윤진희 인하대 교수 겸 한국물리학회 회장 역시 "AI를 통해서 새로운 발견을 했더라도 그것이 사실로 확인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며, 그제서야 우리는 과학적 발견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도구가 등장해도 결과를 검증해야 한다는 과학의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AI가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해 중요한 결과를 얻었다면 발견의 공로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까. 이수인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AI가 발견할 때까지 그 연구를 기획한 사람의 공로"라며 "질문을 먼저 던졌기 때문에 AI를 이용한 연구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인 만큼 시작점을 최초 연구 기획자로 잡아야 한다"고 짚었다. AI가 연구를 수행하더라도 무엇을 탐구할지 묻고 연구를 먼저 시작한 사람의 역할에 주목한 것이다. AI가 과학자의 일을 모두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가 집중해야 할 일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 이미 알려진 문제의 답을 빠르게 구하는 능력만큼 아직 답이 없는 문제를 찾아내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다시 묻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발견에 필요한 것은 방해받지 않을 시간
애덤 스미스 노벨프라이즈아웃리치(NPO) 최고과학책임자(CSO)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2007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올리버 스미시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스미시스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했고, 평생 실험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한 사람이었다"며 "자신은 한 번도 어떤 기관의 책임자를 맡은 적이 없다고 자랑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스미스 CSO는 이 일화를 꺼낸 이유에 대해 "연구자에게는 방해받지 않고 생각하고 일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뛰어난 사람이라는 이유로 다른 일을 맡기기보다, 그들이 잘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저 생각하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공부할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발견은 언제 성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 교수는 "과학의 성과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고, 한동안 성과가 나오지 않다가 갑자기 중요한 발견이 나올 수도 있다"며 "단기적인 이익보다 장기적인 연구의 가치에 무게를 두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과학계가 바꿔야 할 제도도 이 지점에 있다. 전문가들은 연구비를 얼마나 투입하느냐 뿐 아니라 연구자가 어떤 조건에서, 얼마나 지속해서 자신의 질문을 탐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입 모은다. 정진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우리의 연구 환경은 여전히 단기(3년) 과제와 정답이 예상되는 문제에 맞춰져 있다"며 "정답이 없는 거대한 질문에 매달리는 연구자에게 10년을 투자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원장은 특히 AI를 연구 방법으로 체득한 30~40대 연구자들에게 주목했다. 이들이 독립 연구실을 갖고 자신의 질문에 오랫동안 매달릴 수 있도록 국가가 연구의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구를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도구로 남들이 풀지 못한 문제에 도전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현택환 서울대 교수도 연구자의 경력 전체를 아우르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최고의 과학자들에 대한 전주기적 지원이 절실하다"며 "특히 연구를 시작하는 신진연구자들에게 정착금이 충분히 지급돼야 하며, 최고의 원로과학자들이 은퇴 없이 계속 연구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독립할 기반을, 성과가 더딘 사람에게는 도전을 이어갈 기회를, 오랜 연구자에게는 축적한 지식을 발전시킬 시간을 주자는 뜻이다.
한 사람의 이름 뒤에 남는 것연구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노벨상 수상까지 반드시 수십 년이 걸린다는 뜻은 아니다. 수상 시차에는 발견의 검증과 파급효과 확인뿐 아니라 수상 대상 연구의 누적, 생존자 수여 원칙, 최대 3인 제한 등 제도적 요인도 작용한다. 힉스 입자는 2012년 검출 뒤 이듬해 수상으로 이어졌지만, 힉스 메커니즘의 이론 제안은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엇을 발견의 출발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기다림의 길이도 달라진다.
노벨상이 최대 3명의 이름을 남긴다는 사실도 오늘날 연구의 전모를 보여주지는 못한다. 한 사람의 통찰 뒤에는 앞선 연구자들의 아이디어와 실패한 실험, 공동연구자의 기여와 후속 검증이 쌓여 있다. AI가 연구에 참여하는 시대에는 누구의 기여를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도 더욱 복잡해진다.
다음 세대가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돕는 일 역시 연구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다. 정 원장은 "주어진 문제의 정답만 빨리 찾는 훈련은 AI 시대에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며 "정답 없는 문제를 붙들고 '왜 그럴까'를 묻고 스스로 검증하는 연습이 교육의 중심에 들어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125년 뒤에도 우리는 발견을 대표하는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름이 남기까지 여러 세대의 연구자가 질문을 이어 왔다는 사실도 함께 봐야 한다.
약 35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만나온 스미스 CSO는 위대한 발견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이렇게 짚었다.
"사람들이 방해받지 않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탐구할 시간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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