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찍은 신약, 진짜 약될까…AI 신약 딜 63조원, 다음 관문은 ‘검증’

지난 10일 논밭과 낮은 건물들을 지나 도착한 전북 정읍 첨단방사선연구소. 한적한 풍경과 달리 연구동 4층의 노보렉스 단백질연구소는 인공지능(AI)이 골라낸 신약 후보를 검증하는 실험으로 분주했다.
연구원들은 AI가 예측한 화합물이 실제 단백질에 붙어 제대로 작용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장균 등으로 질병의 표적 단백질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예를 들어 암을 자라게 하는 특정 단백질이나 유전자가 표적, 즉 쏴서 잡아야 할 과녁에 해당한다.
손우성 노보렉스 대표는 “AI가 아무리 좋은 후보를 예측해도 순도 높은 단백질이 있어야 약물이 표적에 제대로 결합하는지 검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한 신약개발의 무게중심이 빠른 후보 발굴에서 ‘실제 검증’과 ‘개발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다. 국내외 제약사와 AI 신약기업 간 협력도 활발해지면서 올 상반기에만 관련 잠재 계약 규모가 63조원에 달했다.
노보렉스의 경우 파킨슨병 치료제 후보물질인 ‘NRX-NGT002’를 약 1년 반 만에 발굴했는데, 이 물질을 발굴하기까지 합성한 화합물은 186개다. 기존 방식이라면 약 2000개를 합성해야 하는데 AI로 이 과정을 크게 줄였다. 이 후보물질은 바이오젠, GSK와 함께 마이클J.폭스재단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연말 글로벌 임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4월 노보렉스를 협업 파트너로 선정한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생물리학적 검증력, 실제 개발 가능한 신약 자산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고 밝혔다.

AI 바이오기업인 포트래이는 ‘약이 효과를 나타낼 만한 표적’을 가려내는 검증 기술로 셀트리온과 최대 1259억원 규모의 신규 표적 발굴 계약을 맺었다. 우선 암 조직을 지도처럼 읽는 기술에 AI를 결합해 가능성이 높은 신약 표적을 골라낸 뒤, 실제 환자들의 데이터로 이 표적이 사람에게 통할지 검증한다.
이대승 포트래이 대표는 “초기에는 AI 알고리즘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면, 좋은 알고리즘도 틀릴 수 있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검증을 요구하는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AI를 활용한 후보물질 발굴→ 검증→ 임상→ 신약개발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도 AI 신약기업과 적극적인 협업에 나섰다. 바이오정보업체 딜포마에 따르면 올 상반기 AI 신약 연구개발(R&D) 협력은 70건, 최대 계약 규모는 459억 달러(약 63조원)로 지난해 연간 434억 달러(약 60조원)를 넘어섰다.


국내에선 SK바이오팜이 AI 플랫폼을 활용해 실제 후보물질을 도출하고 임상 단계까지 연결하는 사업 모델을 지닌 인실리코메디슨과 최대 25억7000만 달러(약 3조5000억원) 규모 계약을 맺었다. 국내 기업 갤럭스도 아스트라제네카와 AI로 설계한 단백질의 실험 검증을 공동으로 진행 중이다. 프로티나는 삼성바이오에피스, 미국 트위스트바이오사이언스와 협업하고 있다.
검증 역량을 확보하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노보는 지난 16일 AI 기업 앤트로픽과 손잡고 AI 모델인 ‘클로드 사이언스’를 신약 R&D에 활용하기로 했다. 앤트로픽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생명과학 실험실(웻랩)을 구축해 AI와 실제 실험을 결합하고 있다.
다만 계약 구조는 더 보수적으로 바뀌는 모습이다. 딜포마에 따르면 2분기 AI 신약 R&D 협력의 계약당 선급금 중간값은 1500만 달러(약 206억원)로 1분기 7800만 달러(약 1070억원)에서 크게 낮아졌다. 이 대표는 “AI가 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위험을 더 낮춰줄수록 계약 가치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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