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퍼스펙티브] 미·중 ‘AI 죄수의 딜레마’…AI 위협보다 무서운 패권 역전의 덫

AI 개발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속도조절론’이 뜨겁다. AI가 초래할 미래 위험성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충분히 귀담아들을 제언이다. 다만 속도 조절론의 이면에는 두 가지 동기가 혼재돼 있다. 첫째는 인류 미래에 대한 진정한 우려다. 둘째는 이미 시장을 선점한 선두 기업들이 기득권을 지키려는 의도일 가능성이다. 후발 주자가 추격하기 전에 규제라는 진입장벽을 세우면 선두 기업에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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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돌하는 미·중, 신냉전 딜레마
강대국 셈법 속 국제질서 재편
핵 통제 역사서 찾는 국제공조
한국은 속도전 생존전략 펼쳐야
」
![[사진 셔터스톡]](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22/joongang/20260922001542154sqxz.jpg)
미국 대통령의 입장은 다르다. 기업이 이익을 우선한다면 대통령은 국가의 생존을 고심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AI 규제를 완화하고 개발과 도입을 가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백악관은 미국이 ‘AI 경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며 AI를 국가 경쟁력과 안보의 핵심 분수령으로 규정한다. 미국 대통령 앞에는 두 숙제가 있다. 하나는 AI가 가져올 인류의 장기적 위험을 막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장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의 우위를 지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목표가 때로 충돌한다는 데 있다.
안보·국방의 미래 좌우할 기술 경쟁
AI는 과거 기술들과 궤를 달리한다. 특정 산업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산업·경제·과학·국방 등 전 분야를 관통한다. 미래 생산성과 군사력, 연구개발 능력까지 좌우한다. 따라서 AI 경쟁에서의 낙오는 단순히 산업 하나를 내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글로벌 패권 자체를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중국은 이미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했다. 2026년 ‘스탠퍼드 AI 인덱스’에 따르면 미·중 최상위 AI 모델 간 성능 격차는 사실상 유의미하지 않다. 양국 최첨단 모델은 글로벌 선두를 주고받았으며, 2026년 3월 기준 미국 모델의 우위는 2.7%에 불과했다. 미국이 최상위 모델 개발과 민간 투자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 중국은 논문 발표와 특허 출원 등 기초 체력 면에서 막강하다. 미국만 속도를 늦추고 중국이 질주한다면 격차는 순식간에 역전된다.
여기서 ‘죄수의 딜레마’가 작용한다. 미·중 모두 AI가 통제 불능이 되면 공멸한다는 위험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인류 전체로 보면 손잡고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상대를 믿을 수 없다. 내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 상대가 가속 페달을 밟는다면 나만 뒤처진다. 서로를 신뢰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누구도 먼저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는 이유다.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운 패권 질주
미국 입장에선 인류의 미래도 중요하지만 중국의 추격은 당장 오늘을 위협하는 실존적 문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처럼 미·중 패권 경쟁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AI 속도 조절론을 두고 “중국에만 좋은 일”이라며 규제보다 AI 우위 확보를 강조하는 배경이다. 실제 미국 정부는 안보 분야에서 최첨단 AI를 신속히 수용해 기술적 초격차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공고히 하고 있다.
패권 경쟁이 지속하는 한 인류의 미래는 방치될 수밖에 없는가. 필자는 역설적으로 여기에서 희망을 찾는다. 중국 정부에는 미국 추격만큼 중요한 관심사가 있다. 현 체제를 유지하며 사회를 안정적으로 통치하는 구조적 통제력이다. 만약 고도화된 AI가 국가기관을 해킹하거나 허위 정보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면 중국 정부 역시 AI를 적극적으로 통제하려 들 것이다.
이미 중국에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중국은 ‘AI 안전 거버넌스 프레임워크 3.0’을 발표하며 리스크 관리와 ‘안전하고 통제 가능한 AI’를 강조했다. 물론 이를 단순히 체제 유지 동기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이용자 보호, 사회 안전 등 복합 목적이 수반된다. 핵심은 중국 역시 AI 안전을 국가적 위험 요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체제유지 셈법 뒤에 숨은 중국의 속앓이
바로 이 지점에서 국제적 AI 안전체제 구축의 연대 가능성이 열린다. 역사를 돌아보자. 과거 미국과 소련도 초기에는 핵무기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핵무기가 상대뿐 아니라 자국까지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공멸의 무기임이 명백해지자 협력의 공간이 생겼다. 그 결과 1957년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출범했고, 핵확산금지조약(NPT)이 발효됐다. 치열한 핵 경쟁 이면에서 핵 리스크를 통제하는 국제질서가 수립된 것이다.
AI 리스크 역시 궁극적으로 이러한 제도적 안전장치의 경로를 밟아갈 것으로 전망한다. 가칭 ‘국제 AI기구’를 만들어 최소한의 안전 기준을 공유하고 위험한 AI의 개발과 사용을 검증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핵무기 지휘체계, 생화학무기 관리, 자율형 AI 영역에는 국제사회가 동의하는 레드라인이 필요하다.
관건은 방법론이다. 양국에 경쟁을 멈추라고 도덕적으로 호소하는 방식은 실효성이 없다. AI 위험을 통제하는 행위가 미·중 각자의 국익에 직결된다는 점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국제 협력은 선의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파멸적 위협이 공동의 이해관계로 바뀔 때 비로소 국제질서는 움직인다.
일각에서는 “그때가 되면 너무 늦지 않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타당한 지적이다. 따라서 패권 경쟁을 지속하더라도 당장 24일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이 핵심 과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인류는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앞에서도 불완전하게나마 통제장치를 만들어온 저력이 있다. AI라고 해서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이유는 없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맞으면 ‘법’과 ‘주먹’을 같은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핵무기, 세균, 마약 수준으로 AI를 관리할 수 있다면 성공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의 상황은 미국이나 중국과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금 한국이 할 일은 브레이크를 밟는 일이 아니다. 글로벌 규제 체제와 안전장치의 흐름을 기민하게 준비하되, 가속 페달을 밟아 AI 역량을 미중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이광형 전 KAIST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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