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내 유년의 명절

나의 어린 시절 명절은 외가에 모여 떠들썩해지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외사촌들과 눈을 반짝거리며 눈치껏 서열정리를 했다. 여자 어른들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느라 부산했고 남자 어른들은 대청마루에서 술상을 놓고 담소를 나누었다. 그러다 무슨 말끝에 벌떡 일어나 언성을 높이는 이는 성질이 붙 같았던 나의 아버지였다. 그는 우리 형제들의 이름을 부르며 “가자!” 고함을 질렀다. 나는 맛있는 음식과 곧 생길 용돈이 날아갈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엄마는 아버지가 그러거나 말거나 달관한 표정으로 능숙하게 전을 부쳤다. 아버지는 사업이 망한 후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의 깊은 열등감은 높은 자존심과 비례했던 듯싶다. 사람 좋은 큰 이모부가 중재자로 나서서 “이 좋은 날, 마음 넓은 자네가 참게나” 하면 아버지는 못 이기는 척 자리에 다시 앉았다. 어릴 적 내가 바라본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깊고 높고 넓었다. 큰소리가 나면서 잠시 조용했던 집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손이 큰 외할머니는 음식을 많이 해서 항상 어린 우리가 먼저 먹게 했다. 아이들이 배가 부르면 부엌을 드나들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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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주들 먼저 음식 먹인 외할머니
잠든 날 깨워 단술 먹이던 할머니
명절이면 떠오르는 그리운 손맛
」

도심에 있던 외가와 달리 친가는 시골 깡촌에 있었다. 엄마는 친가에 발길을 끊은 이유가 부당한 시집살이 때문이었다고 토로했다. 과장되고 증폭된 이야기에서는 시어머니가 옛날 동화에 나오는 계모보다 더 악독한 인물로 그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겐 다정한 할머니였다. 아버지는 엄마 대신 어린 내 손을 잡고 친가에 갔는데 아침 일찍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또 한참을 걸어야 했다.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거리면 아버지의 등에 업혔다. 멀리 보이던 산등성이의 붉은 노을은 내 기억 속에 박제되었다. 외가의 음식이 고기와 전 위주의 동물성이라면 친가는 나물류와 다양한 김치 종류의 식물성이었다. 생선이 몇 토막 있기는 했지만, 양조간장과 조미료로 요리하는 외가와 달리 친가의 모든 음식은 집에서 담은 조선간장으로 조리되었다. 음식은 내게 너무 짜디짜서 혀를 쏙 빼물어야 했다. 평생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큰아버지와 쫄딱 망한 아버지가 술상을 놓고 정치 이야기로 비분강개하면 나는 똑똑한 어른 남자들이 왜 돈을 못 버는지 의아했다. 친가는 큰엄마와 할머니가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았다. 친가 음식 중 유일하게 단맛을 낸 것은 할머니가 만든 감 말랭이와 식혜였다. 할머니는 식혜를 단술이라고 불렀는데 엿기름 내린 물을 아랫목에 묻었다가 밥알이 동동 뜨면 팔팔 끓였다. 할머니는 자는 나를 깨워서 뜨거운 단술을 마시게 했는데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아마 첫 단술을 어린 손녀에게 먼저 먹이려던 마음이었을 것이다. 생각하면 양가의 할머니가 내게 베푼 것은 사랑이었다.
우리 가족이 서울로 올라온 이후 명절은 우리끼리 보내야 했다. 여러 사유로 외가도 친가도 가지 못했다. 할머니들과 연결되던 나의 명절은 유년의 기억 속에 갇혀버렸다. 나이가 드니 이제 명절에 갈 곳이 없다. 부모 형제도 떠났고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사라져서 경조사 때나 얼굴을 보던 사촌들과도 데면데면해졌다. 얼마 전 조카의 결혼식에서 만난 사촌은 명절에 함께 했던 어떤 기억도 떠올리지 못했다. 놀다가 나를 계단으로 밀어버린 일, 내 얼굴에 상처가 나서 할머니께 혼난 일, 누워있던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내밀던 일, 그 어느 것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해주었던 음식이 나오자 대화가 활기를 띠었다. 왜 똑같이 만드는데 그 맛이 안 나올까? 미각은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와 연결된다던데 우리가 변해서일까?
곧 추석이다. 나는 백석의 ‘여우난골족’을 읽다가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바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구손이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몇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득거리다 잠이든다”
내 유년의 명절은 할머니들의 사랑이었다.
김미옥 작가·문예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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