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집권당, 우크라이나전 이후 첫 총선서 압승…푸틴 체제 더 공고히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처음 치러진 러시아 총선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세력이 압승을 거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집권 통합러시아당이 개헌선인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크라이나의 공세에도 푸틴 대통령의 정국 장악력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은 21일(현지시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인용해 개표율 96.95% 기준 통합러시아당이 57.83%의 득표율로 18~20일 사흘간 치러진 총선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러시아연방공산당 13.76%, 러시아자유민주당 9.01%, 새로운사람들당 7.96%, 정의러시아당 5.00% 순이었다. 지역구에서도 통합러시아당 후보가 전체 225곳 가운데 208곳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러시아 하원인 국가두마(총 450석)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와 지역구 의원이 각각 225석씩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선출된다.
엘라 팜필로바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잠정 집계 결과 통합러시아당이 전체 450석 가운데 355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개헌선인 300석을 훌쩍 넘는 것은 물론 2001년 창당 이후 최대 의석이다. 공산당은 40석, 자유민주당 25석, 새로운사람들당 20석, 정의러시아당 4석을 각각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총선 투표율은 59.32%로 6260만명 이상이 투표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1993년 54.81%, 2016년 47.88%, 2021년 51.72%였던 최근 총선의 최종 투표율을 모두 웃돈다. 중앙선관위는 개표와 이의 제기 검토 등을 거쳐 오는 25일 최종 선거 결과를 확정할 예정이다.

이번 총선은 러시아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후 처음 치러졌다. 침공 직전인 2021년 총선에서 통합러시아당은 국가두마 450석 가운데 324석을 차지했다. 푸틴 대통령은 현재 통합러시아당 소속은 아니지만 2008~2012년 당대표를 지냈으며 현재도 사실상 당의 핵심 정치적 후견인이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주민들이 총선에 참여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러시아가 자국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는 도네츠크·루한스크·헤르손·자포리자 등 4개 지역의 투표율은 각각 81.62%, 79.33%, 74.61%, 79.39%로 집계됐다. 자포리자 지역 선관위원장 갈리나 카튜셴코는 높은 투표율에 대해 “우리 지역에서 처음 치러지는 역사적인 선거에 지역 주민들이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통합러시아당 대표는 “좋은 결과를 거뒀다”며 “러시아인들이 통합러시아당에 대한 신뢰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영국·노르웨이·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5개국은 21일 공동성명을 내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실시한 총선을 ‘가짜 선거’로 규정하며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 유엔 헌장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가짜 선거를 치른다고 이들 영토의 국제법상 지위가 달라지지 않는다”며 국제사회에 러시아의 점령 정상화 시도를 거부할 것을 촉구했다.
집권 세력의 통제가 강한 러시아의 정치 환경을 고려하면 선거 결과는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실질적인 반대 세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정부 비판자들은 입국 금지와 투옥, 해외 추방 등의 압박을 받아왔다. 현지 인권단체 ‘OVD-Info’에 따르면 현재 정치적 이유로 수감된 사람은 2000명을 넘는다.

전쟁에 반대하는 유일한 공식 정당인 야블로코당이 사실상 원내 진입이 불가능해진 것도 집권 세력엔 유리하게 작용했다. 러시아 대법원은 지난달 야블로코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낼 자격을 박탈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 당국은 법적 조치 등을 통해 야블로코당 소속 인물들의 선거 출마 자격을 박탈했다”고 전했다.
CNN은 이번 러시아 총선 결과를 두고 “집권 통합러시아당이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푸틴 대통령은 국내 정치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다시 한번 공고히 할 것으로 확실시된다”고 평가했다. AP통신은 “크렘린궁은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처음 치러지는 이번 선거를 통해 전쟁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과시하고 자국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이번 총선은 러시아를 겨냥한 우크라이나의 대규모 공습이 이어지는 가운데 치러졌다. 특히 투표 마지막 날인 20일 우크라이나군은 무인항공기(드론) 약 1600대를 동원해 수도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주요 지역을 공격했다. NYT는 “선거 마지막 날 아침 모스크바와 인근 지역이 수백 대의 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은 “전쟁 이후 모스크바를 겨냥한 최대 규모의 드론 공습”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밤새 우크라이나발 드론 약 1900대와 유도항공폭탄 8발, 순항미사일 8발, 로켓 4발을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부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이번 공격은 개전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상대로 감행한 단일 공격으로는 최대 규모다.
우크라이나가 이번 공격에 자국산 신형 탄도미사일을 활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 소셜미디어(SNS)에 “모스크바 공격에 ‘펠리컨’ 탄도미사일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펠리컨 미사일은 우크라이나 방산 기업 파이어포인트가 개발한 지상 발사형 FP-7 탄도미사일로 사거리는 최대 200㎞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가 해당 미사일을 실전에 사용했다고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민구 기자 jeon.ming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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