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아닌데 전국에 3개나... 이 미군 동상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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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6호선 역촌역 4번 출구로 나가면 자그마한 근린공원을 만난다.
주변에 아파트가 즐비한 이곳에 미군 동상이 왜 서 있을까.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국군과 미군은 서울 탈환을 위해 9월 22일 이곳 인근에서 북한 인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경기도 고양군 녹번리이던 당시 지명은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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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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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극기와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서울 은평구 녹번동 은평평화공원에 세워진 윌리엄 해밀턴 쇼(서위렴 2세) 대위 동상. 좌대 정면에는 이름과 생몰연도와 성경 구절, 오른쪽에는 약력이 새겨져 있다. |
| ⓒ 이희용 |
주변에 아파트가 즐비한 이곳에 미군 동상이 왜 서 있을까. 좌대 정면의 이름 아래 새겨진 생몰연도(1922.6.5~1950.9.22)를 보면 짐작이 간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국군과 미군은 서울 탈환을 위해 9월 22일 이곳 인근에서 북한 인민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경기도 고양군 녹번리이던 당시 지명은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3년여에 걸친 6·25 전쟁의 미군 전사자는 3만 6574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계급이 그리 높지도 않고 전공(戰功)이 눈부시게 빼어난 것도 아닌 그를 특별히 동상을 세워 기리고자 한 까닭은 무엇일까.
좌대 정면 이름 아래 새겨진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란 성경 요한복음 15장 13절의 글귀가 해답의 실마리가 될 수 있고, 좌대 뒷면에 새겨진 가계도를 보면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버지, 어머니, 아내, 장남, 맏며느리 등 일가가 한국에서 봉사한 이력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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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가계도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동상의 좌대 뒤편에는 쇼 대위 가계도와 건립 취지문이 붙어 있다. |
| ⓒ 이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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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윌리엄 얼 쇼 1921년 감리교 선교사로 조선에 파송된 윌리엄 얼 쇼 목사. 1922년 평양에서 외아들 윌리엄 해밀턴 쇼를 낳았다. |
| ⓒ 목원대 |
부인 아델린도 해방 전 평양의 숭덕여학교에서 교육선교사로 활동했다. 1955년에는 대전에 피란민 정착촌 성화장을 지어 전쟁 미망인들을 돌봤다. 쇼 목사 부부는 1961년 은퇴해 귀국했다가 1966년과 1971년 각각 세상을 떠나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혔다.
"지금 도우러 가지 않는 건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쇼 대위는 평양외국인학교를 다니다가 1941년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아버지 모교인 웨슬리언대를 다녔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해군에 입대해 초계어뢰정 부장으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다가 1946년 9월 중위로 전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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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 목사와 쇼 대위 부자 1939년 평양외국인학교를 졸업한 윌리엄 해밀턴 쇼(왼쪽)가 미국 유학에 앞서 아버지 윌리엄 얼 쇼와 찍은 사진. |
| ⓒ 목원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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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젠하워 장군과 쇼 소위 2차대전에 참전한 윌리엄 해밀턴 쇼 소위(맨 오른쪽)가 아이젠하워 연합군 총사령관(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함께 함정을 타고 가고 있다. |
| ⓒ 목원대 |
지금 한국인들은 전쟁 속에서 자유를 지키려고 피 흘리고 있는데, 제가 흔쾌히 도우러 가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한국인을 위해 희생해 평화가 이뤄진 다음 선교사로 가려 한다면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쇼 목사는 쇼 대위가 외아들이니 걱정이 컸겠지만 자신도 이미 군목으로 재입대한 터라 말릴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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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윌리엄 해밀턴 쇼 가족사진 윌리엄 해밀턴 쇼가 한국전 참전을 위해 재입대하기 전 미국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오른쪽은 장남 로빈슨이고 왼쪽의 아내 후아니타는 차남 스티븐을 안고 있다. |
| ⓒ 목원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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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화진에 잠든 쇼 가족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세워진 쇼 목사 부부(뒤쪽)와 쇼 대위(앞쪽)의 묘비. |
| ⓒ 이희용 |
전사 후 그는 중위에서 대위로 일계급 특진했다. 쇼 목사는 "한국을 사랑했던 아들의 뜻"이라며 시신을 양화진에 묻었다. 자신과 아내도 뒤따라 묻힐 자리였다. 묘비명으로 요한복음 15장 13절을 영문으로 새겼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1956년 각각 금성을지무공훈장과 은성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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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위렴 2세 전사 기념비 윌리엄 해밀턴 쇼(서위렴 2세)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 그가 전사한 녹번동에 1956년 건립했다가 2001년 응암어린이공원을 거쳐 2010년 은평평화공원으로 옮겼다. |
| ⓒ 이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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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국 영웅 10인 우표 2015년 6·25 전쟁 발발 65주년을 맞아 발행된 호국 영웅 우표 세트. 맨 오른쪽 아래가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
| ⓒ 우정사업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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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국가보훈처와 한미연합사령부가 2023년 4월 한미동맹 70주년 기념으로 선정해 발표한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포스터. 벤 플리트 부자와 쇼 부자가 포함돼 있어 실제로는 12명이다. |
| ⓒ 국가보훈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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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공지능으로 복원한 쇼 대위 사진 인공지능 얼굴 복원 기술을 활용해 고해상도 컬러 사진으로 복원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2023년 7월 28일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에서 열린 ‘6·25 전쟁영웅 특별사진전'에서 공개됐다. |
| ⓒ 국가보훈부 |
맏아들 로빈슨은 하버드대에서 '조선시대 법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하버드대와 존스홉킨스대 법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풀브라이트 장학재단, 하버드 법률연구센터와 함께 한국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 사업과 미국 초청 연수 사업을 펼쳤고 서울대 법대 초빙교수로도 활동했다. 한국학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39살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차남 스티븐 리처드는 오하이오주 법원 판사를 지냈다.
로빈슨의 아내 캐롤도 하버드대에서 한국어와 근대 중국사를 전공한 한국학자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역사 편찬 작업에 참여해 미 연방의회 도서관 등에서 한미 외교 자료들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뒀다. 2007년 서울대에서 영문으로 출판한 저서 <외세에 의한 한국 독립의 파괴>는 한일 강제병합 과정에서 미국이 어떻게 일본을 도왔는지를 자세히 밝혀놓았다.
책 서문에 "100여 년 전 미국이 공공선이라는 미명 아래 작은 나라 조선에 대해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생각해 보라. 미국인의 한 사람으로 사죄의 뜻을 표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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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 대위 맏며느리와 손자 2010년 6월 22일 은평평화공원에서 열린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 동상 제막식에서 쇼 대위 맏며느리 캐롤(오른쪽)과 손자 윌리엄이 헌화를 준비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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