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하나에 막힌 대미투자 협상…한·미 회담 50분 만에 끝났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의 회담은 약 50분 만에 끝났다. 다자회의 계기 풀어사이드(pull-aside, 약식 회담)가 아닌 별도의 한ㆍ미 외교장관 양자회담이 대체로 1시간을 채우거나 넘겨온 것과 비교하면 짧았다. 지난 2월 미국에서 열린 두 장관의 직전 정식 회담도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여권 관계자는 20일 중앙일보에 “양 장관의 회동이 비교적 짧게 끝난 편”이라며 “대미투자 1호 프로젝트 발표 시점에 맞춰 회담을 진행해 여러 현안의 물꼬를 트고자 했는데 그 그림이 어그러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짧은 시간 여러 현안을 짚다 보니 심도 깊은 협의보다는 한국 정부의 여러 노력을 소개했다”고 전했다.
당초 정부는 대미투자 1호 프로젝트를 17일 국회에 보고한 뒤 조 장관과 루비오 장관의 회담이 열리는 18일 관련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와 미국 내 원전 8기 건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등 투자 조건을 둘러싼 막판 조율이 길어지면서 일정이 미뤄졌다. 이를 발판 삼아 외교장관 회담에서 안보ㆍ통상 현안을 진전시키려던 조 장관의 구상에도 차질이 생겼다.
현재 양국 간 투자 협상은 MOU 문구를 놓고도 진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단어 하나가 ‘지금 당장 시작한다’는 의미인지 ‘검토한다’는 의미인지에 따라 달라져 워드 바이 워드(word by word)로 하나씩 주고받는 상황”이라며 “미국은 최대한 구속력 있게, 우리는 최대한 확정적이지 않게 담으려는 게 쟁점”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의 업무시간이 시작되는 한국시간 오후 9~10시부터 협상을 시작해 자정을 넘기는 일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알래스카 LNG 사업을 두고 미국은 투자 추진을 명시하길 원하는 반면 한국은 사업성을 전제로 가능성을 열어두는 수준을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8일 회견에서 “제가 (대미투자) 내용을 보니 동의하기 쉽지 않은 부분들이 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좁혀지지 않은 입장차는 회담 직후 양국이 내놓은 발표문에서도 드러났다. 한국 외교부는 대체로 ‘양 장관’을 주어로 협의와 공조를 강조한 반면, 미 국무부는 민감한 현안에서 ‘루비오’를 주어로 내세워 미국의 요구를 분명히 기록했다.
대미투자부터 방점이 달랐다. 한국은 “양 장관은 대미 전략투자 사업 관련 협의가 좋은 결실을 맺도록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은 “루비오는 조인트팩트시트(양국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에 담긴 투자 약속의 신속한 이행을 강조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은 진행 중인 ‘협의’에, 미국은 이미 이뤄진 ‘약속의 이행’에 무게를 둔 셈이다. 미측 발표에는 반도체를 포함한 전략 분야 협력도 담겼지만 한국 발표문에는 없었다.
호르무즈 문제도 결이 달랐다. 한국은 조 장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자유로운 통항 회복을 위한 우리 정부의 실질적 기여 의지를 설명했다”고 밝혔다. 고위 당국자는 미국의 구체적 파병 요구는 없었고 미측도 한국의 입장에 이해를 표시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 국무부는 루비오가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협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고 밝혔다. 기존의 협력 요구를 공식 발표문에 다시 못 박은 셈이다.
한국 발표문에 없던 미국 기업 문제도 미측 발표에는 포함됐다. 미 국무부는 “루비오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업에 공정하고 투명하며 공평한 사업 환경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다만 고위 당국자는 쿠팡 등 특정 기업이 직접 거론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여권 관계자는 “이런 이견을 좁히려면 우선 대미투자에서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며 “미측이 원하는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협상을 진전시키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유지혜 특파원 wisepen@joongang.co.kr,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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