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백악관 AI 규제기구 무산시켜…저커버그·젠슨 황·머스크 직접 로비

하수영 2026. 9. 18.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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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의 실루엣과 스페이스X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인공지능(AI)의 안보 위협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AI 규제 방향을 놓고 백악관과 빅테크 간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백악관 당국자들에게 AI 업계의 표준을 설정하고 피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기구 설립을 제안했으나 결국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허사비스 CEO는 지난 7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AI 기업 간 개발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개별 기업의 자율적인 안전조치만으로는 AI의 위험을 통제하기 어려운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구글 로고를 배경으로 메타(Meta)의 3D 프린팅 로고가 보이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WSJ에 따르면 상당수 빅테크 기업들은 기구 설립에 찬성했으나 메타, 엔비디아, 스페이스X 등 일부가 반대했다. 이에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 등이 최근 몇 주 동안 각각 별도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하면서 AI 규제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WSJ는 “이 때문에 백악관 내 AI 규제파 참모들이 좌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AI 규제 강화에 제동을 걸면서 백악관 내 규제파 참모들이 불만을 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5월에는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인공지능(AI) 고문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AI 모델을 정부가 장기간 심사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 계획을 폐기하도록 한 일이 있었다. 색스 고문은 당초부터 AI에 대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인물이다.

이와 관련, 폐기 결정을 사전에 이를 알지 못했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숀 케언크로스 국가사이버국장 등 고위 당국자들이 당혹스러워했다고 WSJ가 전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규제 수준을 낮춘 축소판 행정명령을 재차 요청했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여 6월 2일 서명했다. AI 기업이 고성능 모델을 공개하기 30일 전 자발적으로 정부에 제출해 안전성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행정명령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부터),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2025년 4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캐비닛룸에서 요나스 가르 스퇴레 노르웨이 총리(사진에 없음)와 오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백악관 규제파 참모들이 AI 규제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배경에는 최근 잇따라 확인된 AI의 사이버·안보 위협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지난 4월 앤스로픽이 공개한 고성능 AI 모델 ‘미토스(Mythos)’는 소프트웨어 취약점을 찾아 공격에 활용할 수 있는 사이버 역량을 보이며 백악관의 위기의식을 키웠다. 미 상무부는 이후 국가안보 우려를 이유로 미토스 등 최신 AI 모델에 대한 외국인의 접근을 일시 제한했다.

지난 7월에는 오픈AI가 수백 개의 AI 에이전트를 동원해 AI 개발 플랫폼 허깅페이스를 해킹하는 실험에 성공하면서 여러 AI가 협력해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수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AI 규제 최소화 및 AI 개발 가속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규제를 강화하면 미국의 AI 개발 속도가 늦어져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14일 트루스소셜에서 “AI와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병적인 음모’가 벌어지고 있으며, 이를 반기는 것은 중국 뿐”이라며 “AI에서 이기는 자가 승자가 된다. 우리는 중국과 다른 모든 국가를 앞서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열린 온라인 아동 보호 관련 EU 규제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반면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에서는 AI의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규제 장치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2일부터 AI로 생성하거나 조작한 영상·음성·이미지 등에 이를 식별할 수 있도록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AI법 관련 규정을 시행했다.

독일은 이와 별개로 지난 7월 29일부터 AI 시장감독·혁신촉진법을 시행 중이다. 스페인은 AI 감독청(AESIA)을 중심으로 AI 규제를 감독하고 중대한 위반 시 최대 3500만유로(약 555억원) 또는 전 세계 연매출의 7%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 1월 22일부터 생성형 AI 결과물에는 AI가 생성했다는 사실을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AI기본법이 시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AI의 위험을 통제하면서도 기술 개발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는 규제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만지트 레게 미 세인트토머스대 응용인공지능센터 소장은 지난 14일 미 미네소타 공영라디오 MPR 인터뷰에서 “선택지는 AI를 멈추느냐, 전속력으로 계속 달리느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AI 연구와 혁신은 늦춰서는 안 되지만 실제 적용 단계에서는 사이버 공격이나 허위정보 등 악용 위험을 통제할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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