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용의 뮤직인사이트]⑥ AI는 음악인의 자리를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는가?
![[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18/ilgansports/20260918054150821kojh.png)
작업실에 한 곡의 데모가 도착한다. 과거라면 편곡자가 곡의 구조를 다듬고, 세션 연주자들이 악기별 트랙을 채우며, 엔지니어가 녹음과 믹스를 분담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프로듀서 한 명은 생성형 AI로 편곡 시안을 뽑아내고 보컬 질감을 바꾸며, 스템 분리부터 러프 믹스까지 단숨에 마침표를 찍는다. 반나절이면 여러 버전의 결과물이 테이블 위에 오르는 시대, 현장은 필연적으로 묵직한 질문을 마주한다.
“그렇다면 이 과업들을 지탱하던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자리를 맡게 되는가.”
AI가 음악인의 일자리를 전면 대체할 것인지 묻기에 앞서, 음악산업 직무의 본질적 구조를 살필 필요가 있다. 직무는 단일한 기술이나 단순 작업의 집합이 아니다. 작곡가는 음을 배열할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의 언어와 서사를 해석하고 정제한다. 엔지니어는 소리를 물리적으로 정리하는 동시에 녹음실의 분위기와 연주자 간 심리적 흐름을 조율한다. A&R(Artists and Repertoire) 담당자 역시 데이터를 검토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계약과 투자, 레퍼토리의 방향성에 책임을 진다. 이처럼 하나의 직무는 수많은 과업과 관계, 판단과 책임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따라서 대체 가능성 역시 직업명이 아니라, 그 안을 구성하는 과업 단위로 세분화해 따져봐야 한다.
먼저 자동화의 압력을 받는 영역은 결과를 미리 규격화할 수 있고 반복성이 높으며, 창작자의 고유한 맥락과 관계적 판단이 적게 개입되는 과업이다. 레퍼런스 탐색, 코드·편곡 초안 생성, 노이즈 제거, 음정·타이밍 보정, 가이드 보컬, 러프 마스터링, 메타데이터 작성 등은 이미 적은 비용으로 처리 가능하다. 이처럼 일정한 기준에 따라 결과물을 평가할 수 있는 과업일수록 자동화를 통한 속도 향상과 비용 절감의 압박은 커진다. 특히 배경음악이나 기능성 음원처럼 개별 창작자의 서사보다 납기와 단가가 우선시되는 시장에서는 대체 압력이 더욱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특정 과업의 자동화 비율이 높아진다고 해서 직무 전체가 같은 속도로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노동기구가 2025년 발표한 추정치에 따르면, 전 세계 노동자 네 명 중 한 명은 생성형 AI에 어느 정도 노출된 직업에 종사하며, 전 세계 고용의 3.3%는 가장 높은 노출 범주에 속했다. 보고서는 일자리의 전면 소멸보다 노동의 성격이 재구성되는 ‘직무의 변형’ 가능성을 더 크게 보았다. 이러한 구분은 음악산업에서 무엇이 자동화되고 무엇이 인간의 역할로 남는지를 판단하는 데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AI가 코러스 아이디어 열 가지를 제안하는 일과, 그중 어떤 코러스가 지금 이 아티스트의 정체성과 서사에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같지 않다.
컨트리 뮤직의 거장 랜디 트래비스가 2024년 발표한 싱글 ‘Where That Came From’은 이러한 직무 변형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직접 노래할 수 없게 된 트래비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데 AI 기술이 활용됐으나, 곡은 결코 버튼 하나로 완성되지 않았다. 제임스 듀프리의 보컬과 트래비스의 과거 아카이브 녹음, 오랜 프로듀서 카일 레닝의 세밀한 디렉팅과 편집, 레이블의 기획, 그리고 트래비스 본인의 예술적 승인이 결합됐다. AI는 창작자를 대체해 밀어내기보다 중단됐던 창작을 지속하게 했고, 가수와 프로듀서, 엔지니어, 레이블의 역할을 새롭게 재배치했다.
그러나 랜디 트래비스 사례에서 확인한 긍정적인 역할 재배치가 모든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도구를 도입하더라도 기업이 어떤 비용을 절감하고 어디에 다시 투자하느냐에 따라 파급효과가 달라진다. 데모 제작 시간을 줄여 더 많은 신인을 발굴하고 마스터링과 공연에 예산을 투입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초급 인력을 단순 비용으로 규정하고 감축할 수도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2025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의 85%는 인력 재교육을 우선하겠다고 답한 반면, 40%는 AI가 과업을 자동화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인력 감축을 예상했다. 이는 기술의 성능 자체보다 산업 내부의 경영적 판단이 고용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업 내부의 고용 문제와 더불어, 프리랜서와 프로젝트성 계약이 많은 음악산업에서는 생산성 향상의 몫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작업 시간이 단축됐다는 이유로 외주 단가만 인하되면 기술의 이익은 오롯이 발주자에게 집중된다. 반대로 절약된 시간을 정교한 디렉팅과 새로운 시도에 쓴다면 창작자의 역할은 고도화된다. 따라서 향후 계약과 보수의 기준 역시 단순 투입 시간이 아니라, 창작적 판단의 가치와 최종 책임을 반영해야 한다.
AI가 제작 과정의 과업과 역할을 바꾸면서 기존 직무에 요구되는 책임의 범위도 달라진다. 프로듀서와 A&R 담당자는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아티스트의 고유한 방향성과 맞는지 판단해야 하고, 엔지니어는 소리의 품질뿐 아니라 사용된 음악 소스의 출처와 권리, 상업적 이용 조건까지 확인해야 한다. 이제 윤리적·법적 판단력은 단순한 기술 숙련과 함께 직무 전문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이처럼 기존 직무의 책임은 무거워지는 반면, 정작 숙련 전문가로 성장할 초급 인력의 진입 경로는 좁아질 수 있다. 과거 보조 엔지니어는 파일 정리와 마이크 세팅을 맡으며 현장을 배웠고, 신인 작곡가는 가이드 제작을 거치며 아티스트의 요구를 읽어냈다. 신입 담당자 역시 자료 조사와 회의록 작성을 통해 선배들의 통찰을 익혔다. AI가 초급 과업을 먼저 흡수하면 당장의 효율성은 높아지지만, 숙련 전문가로 성장하는 사다리의 첫 칸도 사라질 수 있다. 인력을 줄인다고 조직에 경험과 통찰이 저절로 축적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직무 재편은 음악 교육이 풀어야 할 과제 자체를 바꾼다. 음악 교육의 핵심은 AI 도구의 사용법을 가르치는 차원을 넘어선다. 무엇을 직접 체득하고 무엇을 도구에 위임하며, 결과를 어떤 기준으로 검증할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 유네스코가 발표한 교사용 AI 역량 프레임워크 역시 인간 중심 관점, 윤리적 책임성, 기술의 기초 이해 및 활용 역량을 강조한다. 이러한 원칙을 음악 교육에 적용하면 교육 내용은 세 층위로 나뉜다. 첫째는 화성·리듬·청음·연주·녹음 등 음악의 기본기를 직접 익히는 층이다. 둘째는 AI를 활용해 탐색과 제작의 폭을 넓히는 층이며, 셋째는 결과물의 음악적 가치와 권리·편향성·출처를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층이다.
이러한 세 층위가 실제 교육에 자리 잡으려면 평가 방식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 완성된 음원 파일만 제출받아 평가하는 방식은 학생이 무엇을 이해했고 AI가 무엇을 대신했는지 구별하기 어렵다. 향후 교육의 평가는 결과물 중심에서 제작 과정과 사고 과정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최초 아이디어와 프롬프트, 버전별 수정 이력, 직접 연주·재작곡한 부분, 버려진 결과물과 그 이유를 설명하게 해야 한다. 교육의 초점은 빠른 생성보다 선택의 근거를 밝히고 결과에 책임지는 주체적 역량에 놓여야 한다.
다시 작업실의 데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AI 덕분에 다양한 편곡시안을 확보하는 데 드는 시간은 현저하게 줄었다. 하지만 이 곡에 가장 어울리는 보컬을 발탁하고, 연주자들의 합을 조율하며, 이 작업물이 아티스트의 중장기 디스코그래피와 어떻게 연결될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작업실에서 시작된 이 변화는 결국 음악산업이 어떤 과업을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야 하며, 다음 세대가 그 고유한 판단력을 어떻게 배우고 이어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답은 AI가 음악인을 통째로 대체하기보다 규격화된 반복 과업과 저비용 제작 시장을 먼저 재편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산업이 오직 효율만을 좇는다면 초급 음악인의 일자리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숙련자를 길러내는 경로까지 잃게 된다. 따라서 음악 교육과 산업계가 지켜내야 할 것은 익숙한 제작 방식을 관성적으로 고수하는 일이 아니다. 탄탄한 기본기를 통해 비판적 판단의 토대를 구축하고, 협업의 현장에서 책임을 배우며, AI가 압축해 버린 입문 과정을 대체할 새로운 학습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결국 음악인의 미래는 AI 도구를 얼마나 더 빠르게 다루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 AI가 대신 처리해 준 과업 뒤에 어떠한 인간적 전문성과 예술적 통찰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다음 세대가 그 전문성에 도달할 성장의 사다리를 어떻게 다시 놓을 것인가에 음악 생태계의 미래가 달려 있다.

▶저자소개=일본 메이저 음악기업 포니캐년(Pony Canyon) 한국지사 A&R 총괄 팀장과 소노르뮤직그룹 대표, 서울시립청소년음악센터 음악사업 총괄을 거치며 지난 20여 년간 음악산업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해 왔다. 현재 대학에서 음악산업의 구조와 비즈니스, 창작과 유통 환경의 변화 등을 교육·연구하며 다음 세대 음악 예술가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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