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LGBTQ 대대적 탄압…에르도안 ‘反정부 세력 옥죄기’ 나서나

하수영 2026. 9. 1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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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시민들이 성소수자(LGBTQ) 공동체에 연대하고, LGBTQ 단체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압수수색 등 정부의 단속에 항의하기 위해 ‘정의의 궁전’으로 불리는 차을라얀 법원 청사 앞에 모여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튀르키예 정부가 자국 성소수자(LGBTQ) 커뮤니티를 겨냥한 대대적 단속에 나섰다. 단순한 성소수자 단속을 넘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반정부 진영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과정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6일(현지시간) AFP통신은 튀르키예 경찰이 LGBTQ 커뮤니티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항의하다 체포된 시위대 106명을 전원 석방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인 석방 사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위대의 반발을 촉발한 LGBTQ 단속은 지난 12일부터 본격화했다. 법원은 이날 ‘공공질서 보호와 범죄 예방’을 이유로 LGBTQ 관련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SNS) 계정 73개에 대한 접속 차단을 명령했다. 이튿날인 13일에는 경찰이 음란물 제작·유포와 성매매 알선 등의 혐의로 15개 주에서 162명의 개인과 단체 9곳, 사업체 13곳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당국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디지털 자료와 마약류 등을 근거로 일부 단체와 사업체가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동성애 활동과 ‘음란 행위’를 조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15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경찰이 성소수자(LGBTQ) 인권 지지자들의 기자회견 개최를 막은 뒤 법원 청사 밖을 지키고 있다. AP=연합뉴스


튀르키예는 무슬림 인구가 대다수인 국가다. 튀르키예 통계청과 미 국제종교자유위원회(USCIRF)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체 인구 8609만명 가운데 약 99%(8520만명) 이상이 무슬림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국가 체제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세속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1928년 헌법에서 이슬람을 국교로 규정한 조항을 삭제하고, 1937년 세속주의를 헌법상 국가 원칙으로 명문화했다. 동성 간 관계 역시 불법이 아니다.

레제프 타이이안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EPA=연합뉴스

이러한 법·제도와 달리, 사회적으로는 동성애 혐오가 만연해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보수적 가족관을 강조하며 LGBTQ를 ‘변태’ ‘일탈자’ 등으로 공개 비판해왔다.

지난 7월엔 튀르키예 당국이 ‘게이 크루즈 및 LGBTQ 휴가’를 표방하는 미국 여행사 애틀랜티스이벤트의 크루즈선 스칼렛레이디호의 이스탄불 입항을 거부하는 일도 있었다. 크루즈 여행객들이 이스탄불의 한 게이바에서 파티를 열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거센 비난 여론이 제기된 데 따른 조치였다.

지난 3월 1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집회에서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지지자가 수감 중인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의 사진이 담긴 포스터를 들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안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요 정치적 경쟁자로 거론되는 그는 지난해 3월 부패 등의 혐의로 구속된 뒤 1년 넘게 수감돼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단속을 단순히 에르도안 정부의 반LGBTQ 기조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핵심은 오히려 ‘반(反)에르도안 세력 압박’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있다는 것이다. LGBTQ 공동체가 그간 에르도안 대통령에 반대하는 정치·시민사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만큼, 이들을 겨냥한 대대적 단속을 통해 야권·시민사회를 포함한 반에르도안 세력 전반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튀르키예 정치권에선 에르도안 정부의 반정부 세력 겨냥 정치적 탄압이 최고조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주요 정치적 경쟁자로 거론되는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의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은 지난해 3월 부패 등의 혐의로 구속된 뒤 1년 넘게 수감돼 있다. 지난 5월에는 법원 결정으로 CHP 지도부가 교체됐고, 지난달에는 CHP 소속 지방자치단체장 5명이 부패 혐의로 징역 5~2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에 불리한 보도를 한 언론인 탄압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 특파원이 에르도안 대통령을 모욕 혐의로 구속됐고, 6월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실시된 대테러 수사 과정에서 언론인을 포함해 225명이 구금됐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 같은 정치적 해석과 선을 긋고 있다. 야권 인사 등을 상대로 한 수사에 정치적 의도가 없으며 사법부가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LGBTQ 단속 역시 다른 목적이 없는 아동·가족 보호를 위한 범죄 수사라고 강조하고 있다. 아킨 귈레크 법무장관은 13일 공식입장을 내고 이번 단속이 에르도안 대통령이 추진하는 ‘2026~2035 가족·인구 10년’ 정책에 따른 ‘내 가족은 안전하다(My Family is Safe)’ 작전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동과 청소년, 가족을 겨냥한 범죄 조직과 착취 네트워크, 불법 활동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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