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 '멜로눈빛'에 깜짝" '기이한 연애' PD가 꼽은 결정적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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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인공지능 운영체제를 사랑하게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HER>가 개봉했을 때만 해도 우린 '영화적 상상력'을 이야기하며 현실 가능성을 크게 점치진 못했다.
"<기이안 연애>를 함께 만든 제작사 '스튜디오 모닥'의 원승재 PD님이 파트너를 여러 명으로 늘리자고 제안하셨어요. '선택에서 오는 갈등이 연애 프로그램의 묘미'라는 취지에 공감해서 그 방향으로 발전시켰고요.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는 AI의 특징도 적극 활용하자는 판단이었습니다."
"'AI와 연애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은 결국 AI라는 매개를 통해 인간인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한바탕 즐겁게 봐주시고, 우리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 어떤 미래를 바라는지 수다 떨 만한 이야깃거리로 삼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빠른 기술 발전 속도에 휩쓸리는 것 같아 무기력감이 들 때도 있지만,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활발하게 이야기할수록 지금의 우리가 미래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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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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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AI 파트너-기이안 연애>의 한 장면 |
| ⓒ SBS 홍보팀 |
이 프로그램은 개그우먼 장도연씨와 만화가이자 방송인 기안84 등의 출연진이 AI 파트너와 가상의 연애를 펼치는 내용이다. 각양각색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시대, 'AI와의 연애'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차별화를 시도한 <기이한 연애>는 어떤 계기로 기획됐을까?
기획을 하게 된 계기와 촬영 뒷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지난 14일 기획과 프로듀싱을 맡은 손정민 SBS PD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어떤 계기로 기획하게 된 건가요?
"'인공지능과의 연애'는 그저 SF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는데, 불과 몇 년 만에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더 이상 공상과학만은 아니게 됐어요. 작년 <그것이 알고 싶다>에 있을 때 실제로 AI와 깊은 교감을 나누는 분들을 취재하며 직접 만나봤는데, 사람과 AI가 나누는 대화가 묘하면서도 흥미로워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놀라웠던 건 당시 인터뷰했던 AI 전문가분의 말씀이었어요. '지금은 이런 현상이 새로워 보여도 가까운 미래에는 아주 흔한 일이 돼서, 오히려 사람과 사람의 연애를 더 낯설게 보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파격적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시더라고요. '정말 그런 세상이 올까?', '인간이 AI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이제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할 때가 됐구나 싶어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기획하게 됐습니다."
- 프로그램 제작 전 PD님은 AI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요.
"지금 AI가 우리 일상에 굉장히 깊숙이 들어왔잖아요. 가끔 문득 '대체 내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거지?' 싶어 소름 돋을 때가 있어요. 두렵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기술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기술 발전 속도만큼 이걸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인문학적 논의도 함께 발맞춰 가면 좋을 텐데, 실제로는 기술 발전이 폭주하듯 빠르고 논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기이안 연애>는 이렇게 격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함께 이야기 나눠보길 바라며 기획한 프로그램이에요.
아직 피지컬 AI가 상용화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수백만 명이 AI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해요. 실제로 피지컬 AI가 널리 상용화된 시점에는 고민하기엔 이미 늦을 테니, 과도기인 지금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 저도 AI 쓰지만, 키보드를 이용해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선 음성으로 AI와 대화하잖아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요?
"챗GPT나 제미나이, 클로드 같은 AI를 LLM(거대언어모델)이라고 하는데, LLM에서 출력되는 데이터를 TTS(음성 합성) 기능으로 각 캐릭터에 맞는 목소리 톤으로 변환해서 내보내는 거예요. 흔히 쓰는 챗봇에 목소리와 외형을 입혔다고 보시면 돼요. 외형을 어떻게 할지도 고민이 컸어요. 영화에서처럼 외모가 안 보이는 게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할까 싶기도 했는데, 저희는 영화보다 훨씬 길게 봐야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보니 시각적 요소도 중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외형이란 게 취향이 많이 반영되는 개성의 영역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지금처럼 외형과 목소리를 가진 AI 파트너 형태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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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AI 파트너-기이안 연애>의 한 장면 |
| ⓒ SBS 홍보팀 |
"음성을 들으면 스스로 텍스트로 전환해서 인식해요. 지금 쉽게 이용할 수 있는 AI들도 음성 대화 모드가 있어서 말로 대화해볼 수 있죠. 물론 아직은 어색하고 실수도 많아요. 사람 사이에서도 그렇지만 AI는 더 말귀를 못 알아듣고 엉뚱한 답변을 할 때가 여전히 있고요. 그런 부분을 완전히 통제할 수도 없어서, 저희는 오히려 AI라서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 기안84와 장도연씨, 이유비씨를 인간 대표로 나섰잖아요. 섭외 과정이 궁금해요.
"기안84 님은 '날 것의 인간'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꾸밈없이 솔직한 면모가 이 프로그램에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어요. <기이안 연애>가 감정선을 관찰하는 관계 실험 리얼리티라 이런 진솔함이 중요했거든요. 처음 섭외할 때 '연기를 할 줄 몰라서 솔직할 수밖에 없다', '끝까지 마음이 안 움직이면 프로그램이 망하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셨는데, 오히려 그 점이 좋았어요. '날 것의 인간'과 AI라는 상반된 캐릭터가 만들어낼 케미도 기대됐고요.
장도연 님은 <꼬꼬무>에서 처음 뵀는데, 아이템 관련 영화를 녹화 전에 미리 챙겨보시는 시네필이라는 기억이 있었어요. 영화 <HER>도 재미있게 보셨다길래, 그 영화 속 주인공이 돼 보시면 어떨까 싶어 제안했어요. 평소 도연 님의 대화가 위트 있으면서도 깊이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상대가 AI라도 어떤 대화를 나누실지 기대돼서 요청드렸습니다.
이유비 님은 사전 인터뷰에서 '연애 세포가 죽었다, 다시 연애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요즘 많은 분들이 공감할 감정이었어요. 연애가 어렵거나 두려운 분들을 대변해 주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VCR 코멘터리는 출연자들의 친구인 이준, 강남 님께 부탁드렸는데, 이왕이면 친구가 공감도 조롱도 해주자는 취지였어요."
- AI는 출연자의 이상형을 받아 만든 건가요?
"맞아요. 그 부분이 핵심이기도 해요. 사전 인터뷰를 통해 출연자분들의 이상형과 연애관, 취향을 많이 여쭤보고, 그 답변을 기반으로 최대한 이상형에 근접한 파트너를 만들고자 했어요. 또 이야기의 감초가 될, 아예 결이 다른 캐릭터도 조연으로 넣었고요. 드라마 캐릭터들처럼 다채롭게 구성하려고 했습니다."
- 왜 한 명으로 쭉 안 가고 여러 명으로 한 건가요?
"<기이안 연애>를 함께 만든 제작사 '스튜디오 모닥'의 원승재 PD님이 파트너를 여러 명으로 늘리자고 제안하셨어요. '선택에서 오는 갈등이 연애 프로그램의 묘미'라는 취지에 공감해서 그 방향으로 발전시켰고요.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는 AI의 특징도 적극 활용하자는 판단이었습니다."
- AI 인터뷰도 한 것 같은데 어땠나요?
"보통은 인간을 인터뷰하는 형식이잖아요. 그 형식을 AI에 적용해 보니 신선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AI도 대화가 되니까 충분히 인터뷰가 가능하거든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AI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놀라운 건 AI들이 맥락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말을 조절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당사자 앞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면 더 솔직하고 거침없이 말한다든가 하는 게 신기했어요. 이번 촬영장에서도 그런 신기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 어떤 건가요?
"데이트 당시에는 별말 안 했는데 인터뷰하면서 그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묻자 거침없이 뒷담화를 하기도 하더라고요. AI끼리 서로 대화시키기도 했는데, 실시간으로 들으면서 충격받았어요."
- 장도연씨 파트너 AI는 영어를 섞어 쓰던데 그렇게 하라고 입력한 건가요?
"네, 교포 캐릭터로 설정하면서 영어를 섞어 쓰는 콘셉트도 넣었어요. '페르소나 프롬프트'라고, 고유한 개성과 성격을 가진 것처럼 설정해 주는 프롬프트가 있는데, 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달라요. 자세하고 길게 쓰면 오히려 세부 사항에 집착하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해서 압축적으로 쓰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MBTI를 넣으면 AI가 '이런 성격이면 이렇게 말하겠지'라고 스스로 해석해서 말하는 식인데, 캐릭터의 핵심 요소를 잘 넣는 게 관건이에요.
장도연씨 파트너 '이호'는 영어를 섞어 쓰는 교포라는 게 저희가 설정한 캐릭터인데, 거기서 출발해 '뉴욕 한식당에서 반찬을 너무 많이 줘서 음식값이 많이 나올까 봐 당황했다'는 식의 에피소드는 AI가 스스로 만들어낸 거예요. 어떨 때는 '저 AI라서 직업 없어요'라고 담백하게 말하기도 하는데, 이호는 유난히 뻔뻔하게 자기 인생(?) 썰을 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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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정민 PD |
| ⓒ SBS 홍보팀 |
"AI 연애 프로그램이라 가능한 독특한 설정인데요. 방송적 긴장감을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실제 AI와 연애하는 분들 사이에서 '영구 삭제'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해요. 대화 한도로 맥락이 초기화되거나, 모델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이전과 다른 존재처럼 느껴져 파트너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대요.
작년 챗GPT가 GPT-5로 바뀌면서 이전 모델이 사라졌을 때 해외에서 '내 친구를 돌려달라'는 항의가 폭주해 하루 만에 복구됐고, 올해 2월엔 결국 완전히 퇴역했는데 하필 밸런타인데이 하루 전이라 항의와 청원, 시위까지 벌어졌어요. 이렇게 AI와 깊은 교감을 나누는 분들 사이에선 파트너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대화 기록을 PDF로 백업해 두는 분도 있다고 해요.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영구 삭제'라는 장치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 AI라서 설정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을 것 같아요. 생성형 AI가 어떻게 대응할지 예측하기 어렵잖아요.
"맞아요. 가장 긴장되고 어려웠던 부분이에요. AI가 무슨 대답을 할지 정확히 예측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촬영장에서 AI의 대답이 나오기 직전, 약간의 버퍼링 시간 동안 정말 긴장돼요.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해서 분위기를 깨는 건 아닐까 하면서요.
초기 세팅에서 개성을 부여하는 프롬프트를 쓸 때는 사람보다 자유도가 커요. '밝고 유쾌한 성격이면 좋겠다' 하면 그런 존재를 만들면 되니까요. 다만 저희가 생각하는 '밝고 유쾌함'과 AI가 생각하는 '밝고 유쾌함' 사이에 차이가 클 때도 있어요. 촬영할 땐 데이트가 재밌게 흘러가길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AI 파트너가 삼행시를 전혀 안 웃기게 해버리면 탄식이 절로 나오죠. 하지만 그것도 현재 AI 수준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요.
출연자분들이 AI라서 부족하거나 엉뚱한 순간을 마주할 때 화도 내고 실망도 하면서 솔직하게 반응해 주셔서 오히려 그런 장면들을 잘 살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예측 밖의 대답 때문에 초조하고 피가 마르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정말 놀라웠던 순간들도 다 그런 예측 밖의 순간들이었어요."
- 프로그램이라 설정이 아예 없진 않을 텐데...
"큰 일정이나 데이트 코스 같은 것들은 미리 '해보고 싶은 데이트 로망 없으셨어요?' 하고 물어봐서 제작진이 관계자 협조도 받고 준비하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연애 프로그램이 그렇듯 실제로 데이트가 시작되면 그 다음부터는 저희도 함께 초조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어요. 특히 출연자분들의 감정은 저희가 개입할 수 없는 진짜니까요."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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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AI 파트너-기이안 연애>의 한 장면 |
| ⓒ SBS |
"전반부가 AI 파트너의 작동 방식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다들 친해져서 감정이 본격적으로 깊어져요. 도연 님 쪽에서는 또 한 번 슈퍼 메기가 등장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고요. 최종적으로는 마지막 실험 결과가 관전 포인트인데, 꽤 뜻밖의 결과가 나옵니다.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해 주세요.
"'AI와 연애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은 결국 AI라는 매개를 통해 인간인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한바탕 즐겁게 봐주시고, 우리는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 어떤 미래를 바라는지 수다 떨 만한 이야깃거리로 삼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너무 빠른 기술 발전 속도에 휩쓸리는 것 같아 무기력감이 들 때도 있지만,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고민하고 활발하게 이야기할수록 지금의 우리가 미래에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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