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일 걸릴 걸 7년 뭉갰다…먹는 임신중지약 내년 도입

정부가 내년 1분기 먹는 임신중지약을 정식 도입하는 방안을 16일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7년 만에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가 국가 의료체계로 들어오게 됐다. 음성적으로 약을 구하던 여성들이 의사 진료를 거쳐 사용할 길이 열리지만, 후속입법과 안전관리 체계 마련 등의 과제가 남아 있다.
성평등가족부·보건복지부·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날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이런 방안을 보고했다. 임신 9주 이내 여성을 대상으로 도입하되, 초기 2년간은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도록 할 계획이다.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이날 “이번 임신중지 약물 도입은 낙태죄 폐지 이후 실질적인 국가 관리체계가 부재했던 상황을 개선하고 국가 의료체계 하에서 보다 안전하게 임신중지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도입할 약은 현대약품이 수입하는 ‘미프지미소정’이다. 임신 유지에 필요한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의 작용을 차단하는 미페프리스톤과 자궁 수축을 유도하는 미소프로스톨을 순차적으로 복용하는 제품이다. 국내에선 프랑스 제품명인 ‘미프진’으로 알려져 있다.

임신중지약은 1988년 프랑스에서 처음 허가된 뒤 영국(91년)·미국(2000년)·일본(2023년) 등으로 확산됐다. 현재 약 100개국이 허용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했다. 현대약품은 임상시험 자료를 근거로 임신 63일(9주) 이내 사용하는 것으로 허가를 신청했다. 식약처는 위해성 관리계획 등 자료 보완을 요청한 상태다.
현대약품의 첫 허가 신청은 2021년 7월이었다. 하지만 국회는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종교계 등의 눈치를 보며 후속입법을 미뤘고, 식약처는 법 개정이 먼저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부의 발걸음이 빨라진 것은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이 “법 밖에 방치하며 정부는 책임을 모면하겠지만 국민은 위험에 빠진다”고 공개 질타한 뒤다. 총리실을 중심으로 관계부처 협의체가 논의에 들어갔고, 지난달 법제처는 현행법에서도 임신중지약 허가가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놨다. 첫 신청 후 5년 넘게 이뤄지지 않았던 도입 결정이 대통령 지시 64일 만에 나왔다.
복지부에 따르면 도입 초기엔 외부 약국에서 구입할 수 없다. 약사가 조제할 경우 형법상 처벌 가능성이 남아 있어 병의원 내에서 조제하도록 했다. 2년 뒤에도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거나 안전성 우려가 있으면 원내 조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처방 자격은 진료 역량을 중심으로 정한다는 방침이다. 투여 전 임신 주수와 자궁외임신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두 가지 약을 모두 복용한 뒤 7~14일 이내 병원을 다시 방문해 효과·부작용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곽순헌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초음파로 임신 주수와 자궁외임신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여성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역량 중심으로 해서 제도를 설계하고 관련 학회와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값, 건강보험 적용 여부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복지부는 제약사의 급여 신청이 있어야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급여로 도입될 경우 의료기관의 가격 고지와 보고, 가격 비교 공개 등을 준비할 방침이다. 처방 전 초음파검사 등의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은 별도로 검토하기로 했다.
이날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관련 학회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단계적 도입에 대해 “환자 안전을 우선한 신중한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표준진료지침과 의료진 교육체계를 마련하고, 과다출혈 등에 대비한 응급진료·이송 체계와 24시간 비대면 상담창구 구축에 나서기로 했다. 아울러 의사의 진료선택권과 배우자 동의 요건, 의료인의 법적 보호는 국회가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성·보건의료단체들은 원내 조제·투약 제한으로 이용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에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은 후속입법 없는 약물 허가의 중단을 요구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이날 "임신 9주든, 병원과 약국에서든, 이 약물은 자궁 안에 있는 인간 생명을 죽이는 것"이라며“정부와 국회가 다시 숙고해달라”고 밝혔다.
이에스더ㆍ정종훈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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