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의 직격인터뷰] “견디라고 하지 마라…기후위기 바꿀 시간 앞으로 10년”

최준호 2026. 9. 17.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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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과학자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최준호 과학전문기자·논설위원
풀잎에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도 지나고 추분(秋分)이 코앞이다. 도심을 녹여버릴 듯한 기록적인 폭염도, 남부지방의 가뭄도 어제 일이 됐다. 하지만 최소 1400여 명의 사망과 5600여 명의 실종을 낸 전대미문의 네팔 대홍수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젠 공상과학(SF) 재난영화의 상상을 넘어서는 일들이 해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지구촌 전체가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한반도를 넘어 지구는, 인류는 안녕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AI) 시대가 급진전하면서 세상은 더 많은 에너지, 더 많은 탄소를 요구하고 있다. 유엔은 지난 2일 지구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전 대비 섭씨 1.5도 이하로 제한하자는 기후협약의 목표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 지구촌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기후 관련 정책 싱크탱크인 기후테크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정수종(49)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를 찾아 네팔과 한반도의 ‘뉴노멀’(New Normal)을 탐구했다.

「 네팔 대홍수는 연쇄 복합재난
국경 넘는 조기경보체계 필요
양산 폭염, 무분별한 도시화 탓
다음 세대 위해 움직여야 할 때

기후학자인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네팔 대홍수와 한반도의 기상이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제3의 극지 히말라야의 연쇄 복합재난

Q : 네팔 대홍수의 원인이 뭔가.
A : “네팔 대홍수는 일반적인 집중호우나 전형적인 빙하호 붕괴 홍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네팔-중국 국경 인근의 고산지대에서 약 1㎢ 규모의 얼음·암석 덩어리가 한꺼번에 붕괴한 게 시작이었다. 이게 계곡 아래로 쏟아지면서 주변의 흙과 돌, 물을 끌어들여 거대한 토석류로 변했고, 렌데강을 일시적으로 막았다가 터뜨리면서 보테코시-트리슐리강 유역에 대규모 홍수를 일으킨 것으로 분석된다. 물·돌·토사가 한꺼번에 내려온 ‘연쇄복합재난’이다. 히말라야를 남극과 북극에 이은 ‘제3의 극지(The Third Pole)’라고 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빙하는 얇아지고 후퇴하며, 얼음이 지지하던 산비탈이 불안정해진다. 영구 동토층이 녹으면 암석을 붙잡고 있던 일종의 ‘얼음 접착제’도 약해진다. 동시에 빙하호의 수와 규모가 증가하고, 집중호우까지 더해지면 붕괴·산사태·빙하호 범람이 서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기후위기의 무서운 점은 새로운 재난을 하나 더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원래 존재하던 지질학적 위험을 증폭해 연쇄 재난으로 바꾼다는 데 있다.”

Q :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A : “산악지역에서는 댐이나 제방 하나만으로 이런 재난을 막기 어렵다. 재난이 발생하는 상류부터 사람이 사는 하류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한다. 위험한 빙하와 빙하호뿐 아니라 빙하 주변의 암벽과 영구동토 사면까지 함께 감시해야 한다. 위성영상과 지상 레이더, 지진계, 수위계, 기상관측을 결합해 사면의 이동과 강의 갑작스러운 차단을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한다. 더불어 중국·네팔·인도 등 국경을 넘는 조기경보체계가 필요하다.”

Q : 유엔이 지난 2일 발표한 ‘지구 기온 상승 폭 1.5도 이하 제한이 불가능해졌다’는 의미가 뭔가.
A : “1.5도가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것은 기후대응이 실패했으니 포기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1.5도와 1.6도, 1.7도의 차이는 숫자 0.1도의 차이가 아니라 우리가 감당해야 할 폭염·홍수·산불과 경제적 피해의 크기를 결정하는 차이다. 이제 목표는 ‘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불가피하게 넘더라도 얼마나 적게, 얼마나 짧게 넘을 것인가에 맞춰져야 한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체념이 아니라 더 빠른 감축과 더 강한 적응이다.”
‘뉴노멀’ 아닌 ‘무빙 노멀’ 시대

Q : 한반도도 걱정이다. 올해는 역대급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에 시달렸다. 이런 현상이 뉴노멀이란 말도 자주 나온다.
A : “올여름의 핵심은 단순히 전국이 더웠다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안에서 폭염·가뭄·집중호우가 동시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모순이 아니다. 지구가 따뜻해지면 대기가 더 많은 수증기를 품을 수 있다. 기온이 1℃ 상승하면 대기가 담을 수 있는 수증기량은 약 7% 증가한다. 따라서 비가 올 때는 짧은 시간에 더 강하게 쏟아질 수 있다. 동시에 고기압이 오래 머무르는 지역에선 비가 차단돼 폭염과 가뭄이 심해진다. 따뜻해진 바다는 폭우에 공급할 수 있는 수증기와 에너지도 늘린다. 뉴노멀이라는 말도 조심해서 써야 한다. 뉴노멀은 새로운 기후에 도달해 안정됐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은 정상 상태가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동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를 ‘무빙 노멀(moving normal)’, 즉 ‘움직이는 정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Q : 지난여름, ‘대프리카’라 불리는 대구가 아닌 양산에 이례적 폭염이 이어졌는데.
A :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는데, 그건 과거부터 있던 조건이다. 양산이 최근 부산의 위성도시로 급격히 성장했다. 기후변화와 무분별한 도시개발이 결합했을 때 어떤 재앙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경고판이라고 할 수 있다.”

Q : 홍수도 심해지고 있다. 매년 수조원을 들여 수해 복구를 하는데, 왜 매번 침수되고 무너질까.
A : “같은 곳이 반복해서 침수되는 가장 큰 이유는 위험의 크기는 달라졌는데 도시의 구조는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수관로와 빗물펌프장·도로·옹벽·제방은 대부분 과거 건설 당시의 강수 통계를 기준으로 설계됐다. 그런데 지금은 과거에 드물었던 비가 훨씬 자주, 더 좁은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그렇다고 전국에 댐과 보를 무조건 많이 지으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물그릇의 규모는 유역별 강수량과 지형, 토지 이용, 하천의 수용 능력, 하류 피해 가능성을 함께 계산해야 한다. 원상복구만 하면 다음 폭우 때 원상태로 다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Q : 도로나 빗물 펌프장 같은 국가 인프라는 얼마나 뒤처져 있는가.
A : “수치로 보면 현재 도시의 방재능력이 실제 극한강우보다 대략 시간당 20~40㎜, 비율로는 20~40% 정도 뒤처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전국의 방재시설이 최신 기준으로 한꺼번에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숫자로 말하자면, 적어도 현재보다 시간당 20~40㎜의 추가 강우를 감당할 수 있도록 도시 전체의 물관리 체계를 보완해야 한다.”
복합 기후위험지도 만들어야

Q : 기후위기 시대 도시의 어디가 가장 위험한 장소일까.
A : “당연한 얘기지만, 기후재난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오지 않고 취약한 곳부터 덮친다. 홍수 때 가장 위험한 곳은 ‘물이 몰리는 지형, 대피가 어려운 구조, 취약한 사람이 사는 공간’이 겹치는 곳이다. 하천과 저지대에 위치한 지하차도 및 지하주차장, 침수 이력이 있는 반지하 주택과 지하상가, 급경사지·절개지·옹벽 아래의 주택과 도로 등을 꼽을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피해 발생 후 지원대상을 정하는 데 그치지 말고, 건물 단위의 복합 기후위험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Q : 폭염으로 전력망이 멈추거나, 공장에 물이 부족해 셧다운 될 가능성도 있나.
A : “충분히 현실적인 위험이다. 폭염이 오면 에어컨 사용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한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송전선과 변압기의 효율은 떨어지고, 발전소와 데이터센터의 냉각 부담은 증가한다. 즉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과 전력망의 성능은 동시에 약해질 수 있다.”

김지윤 기자

Q : 10~20년 뒤 우리 아이들이 맞닥뜨릴 여름은 어떤 모습일까.
A : “지금처럼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무너진 도로를 다시 깔고, 침수된 시설을 원래 모습으로 복구하는 데 그친다면 10~20년 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여름은 단순히 지금보다 조금 더 더운 여름이 아닐 거다. 계절의 성격 자체가 달라질 거다. 내가 더 걱정하는 것은 기온이 몇도 더 오르는 것 자체보다 우리 사회의 일상이 멈추는 거다. 전력이 부족해 에어컨을 마음 놓고 켜지 못하고, 집중호우 때문에 출근과 등교를 포기하며, 냉각수 부족이나 침수로 공장과 데이터센터가 멈추는 여름이다. 하지만 미래가 이미 결정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배출을 얼마나 빠르게 줄이고 도시와 산업을 얼마나 선제적으로 바꾸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살아갈 여름의 모습은 분명히 달라진다. 나는 다음 세대에게 “기후위기를 잘 견뎌라”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이들에게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견디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 물려주는 것이다. 앞으로의 10년은 단순히 기온을 낮추기 위한 시간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의 여름이 아직도 평범한 일상을 품을 수 있도록 지켜낼 마지막 준비 기간이다.”
◆정수종=기후과학자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부임했다. 저서로는 『붉은 겨울이 온다』 등이 있다.

최준호 과학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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