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쓰면 성적 오르지만 생각은 줄었다…학교·직장 덮친 ‘AI 역설’
학생들의 인공지능(AI) 의존이 사고력과 학습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사회 전반에서 AI 확산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NYT)는 15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공대(MIT) AI·교육위원회가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를 인용해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비판적 사고와 기억력이 약해지고 학습 내용을 제대로 익히지 못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MIT 위원회는 학생들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자마자 AI에 답을 맡기고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건너뛰는 현상을 ‘인지적 항복(cognitive surrender)’이라고 표현했다. AI로 정답을 얻은 것을 실제 자신이 아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위원회는 AI가 학생의 사고를 대신하기보다 사고와 학습을 돕는 수단으로 쓰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AI가 기억력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해 MIT 연구진이 참가자들에게 챗봇을 글쓰기 보조 도구로 사용하게 한 결과, 이들은 글을 완성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쓴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나탈리야 코스미나 MIT 연구원은 NYT에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기억 네트워크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AI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를 놓고 대학들도 분주하다. 오하이오주립대는 경영·공학부터 영문학·수의학까지 모든 전공에서 해당 분야의 AI 활용법과 사용하지 말아야 할 때를 함께 가르치고 있다. 시카고대는 일부 필수 사회과학 과목에서 AI 사용을 금지했다. UC버클리 로스쿨도 학점을 받는 과제를 구상하거나 개요를 짜고 초안을 작성·수정하는 데 AI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MIT는 일괄적으로 AI를 금지하기보다 과목마다 AI를 언제, 어디서, 왜 허용하거나 제한하는지를 명확히 밝히도록 권고했다.

AI에 의존할수록 과제 성적과 실제 실력 간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연구는 중국에서도 나왔다. 지난 6월 공개된 영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논문에 따르면 중국 중학생 약 2만6000명을 조사한 결과 AI 도입 뒤 숙제 점수가 18% 올랐지만, AI를 사용할 수 없는 시험 점수는 오히려 20% 떨어졌다. AI의 도움으로 숙제 성적은 높일 수 있지만, 혼자 문제를 풀면서 익혀야 할 내용은 충분히 배우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를 둘러싼 고민은 학교를 넘어 직장으로도 번지고 있다. 직장에서는 AI로 업무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알아내고도 이를 동료나 회사에 알리지 않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따르면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KPMG와 멜버른대가 세계 직장인 4만8000여명을 조사한 결과 57%가 직장에서 AI를 사용한 사실을 숨긴 적이 있다고 답했다.
에릭 아니치치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마셜경영대 경영·조직학 부교수와 제슬린 브라우어스 연구원이 AI를 매일 사용하는 미국 직장인 604명을 별도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30.3%가 자신이 알아낸 AI 활용법이나 업무 방식을 일부러 동료나 회사에 공유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만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가장 낮은 집단에서는 47%가 AI 활용법을 숨긴 반면 신뢰도가 가장 높은 집단에서는 14%에 그쳤다.

직원들이 AI 활용법을 숨기는 이유는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걱정해서였다. AI를 사용한다고 밝히면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고, AI로 일을 빨리 끝냈다는 사실을 알리면 업무가 더 늘어날 수 있어서다. 자신이 만든 AI 업무 방식이 회사에 공유된 뒤 해당 업무가 자동화돼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도 영향을 미쳤다.
연구진은 회사가 AI 사용 규정을 만들거나 승인된 AI 도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직원들이 AI 활용법을 공개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에 따른 인정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공유가 늘어난다는 제언이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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