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만 마리도 안 남았는데... 쌍둥이가 태어났어요

이하늬 2026. 9. 16.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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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동물 소개를 넘어 현장에서 동물을 마주하는 수의사의 시각으로 멸종의 원인과 생태계의 유기적 관계를 분석합니다. 이미 사라진 동물의 '부재'를 통해 현재 위기종을 향한 '보호 의지'를 되돌아보고 성공적인 종 보전 프로젝트 사례와 일상 속 실천법을 공유합니다.

곰보다는 족제비나 스컹크 쪽에 혈통이 닿아 있으며, 약 25만 년 전 기후 격변 속에서 히말라야산맥을 경계로 두 아종으로 분화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동물원의 식단은 맹종죽을 중심으로 안정화되었지만, 철창 너머 녀석들의 고향인 히말라야 능선을 떠올리는 마음은 여전히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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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늬의 멸종위기동물] 작지만 강한 생존자, 레서판다

단순한 동물 소개를 넘어 현장에서 동물을 마주하는 수의사의 시각으로 멸종의 원인과 생태계의 유기적 관계를 분석합니다. 이미 사라진 동물의 '부재'를 통해 현재 위기종을 향한 '보호 의지'를 되돌아보고 성공적인 종 보전 프로젝트 사례와 일상 속 실천법을 공유합니다. <기자말>

[이하늬 기자]

 동물원의 레서판다
ⓒ 이하늬
지난 7월 서울동물원에 경사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귀염둥이 쌍둥이 레서판다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레서판다가 동물원에서 번식한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레서판다의 번식이 힘들까요? 레서판다의 번식기는 매우 짧은 편입니다. 1년 통틀어 암컷이 배란하고 수정을 받아들이는 발정기는 고작 48시간을 넘기지 못합니다. 이 찰나를 놓치면 다시 1년, 사계절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평소 무리생활을 하지 않고 개별 생활을 하는 레서판다의 습성 때문에 숲속 영역을 배회하며 다른 개체에게 텃세를 부립니다. 동물원에서 생활하는 세 마리의 개체들은 다행히 서로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하게 지내는 편도 아니었습니다. 약간 '너는 너, 나는 나' 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동물원에서 암컷 수컷이 짝짓기에 성공하기 어려운 편이었습니다. 따라서 동물원에서는 지속적으로 분변에서 생식호르몬을 분석해 적정 발정기에 맞춰 짝짓기를 시도하였습니다.

짝짓기에 성공해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수정란이 곧바로 자궁에 안착하지 않고 생체 리듬이 안정될 때까지 떠도는 착상 지연 특성 때문에 분만 예정일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사소한 소음이나 외부 냄새만으로도 육아 포기 반응을 보이는 극도로 취약한 모성 본능 탓에 레서판다 분만을 위해 준비된 산실 주변은 숨소리조차 죽여야 하는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이 까다로운 생명체를 두고 사람들은 종종 대왕판다의 축소판이나 라쿤의 친척쯤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라틴어 학명 아일루루스 풀겐스(Ailurus fulgens)를 지닌 이들은 본래 곰과 전혀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온 독립된 '레서판다과'의 마지막 생존자입니다.

네팔 산간에서 대나뭇잎을 뜯는 모습을 본 현지인들이 부르던 옛 명칭에서 유래해 서구 학계에 '판다'라는 이름을 처음 각인시킨 진짜 주인공이었으나, 반세기 뒤 덩치 큰 흑백 곰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원조 판다라는 지위를 빼앗기고 '작은(Lesser)'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습니다. 곰보다는 족제비나 스컹크 쪽에 혈통이 닿아 있으며, 약 25만 년 전 기후 격변 속에서 히말라야산맥을 경계로 두 아종으로 분화하게 되었습니다.

대나무 긴급 공수 작전
 동물원의 레서판다
ⓒ 이하늬
레서판다를 만져보면, 험준한 산악 대나무 숲에서 버텨내기 위해 골격과 피모가 어떻게 진화했는지가 손끝으로 생생히 전해집니다. 방사선 사진을 보면 발가락 다섯 개 안쪽으로 손목 부위 방사형 종자뼈가 비정상적으로 길게 뻗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미끄러운 대나무 줄기를 틀어쥐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일명 '가짜 엄지'입니다.

유전적으로 까마득히 먼 대왕판다 역시 동일한 손목뼈 변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대나무라는 한정된 먹이를 두고 서로 다른 종이 동일한 해부학적 결론에 도달한 놀라운 수렴진화를 알려줍니다. 발바닥을 쓸어내리면 땀샘이나 패드가 만져지는 대신 거칠고 빽빽한 피모가 밑바닥 전체를 감싸고 있어 눈 덮인 바위산에서도 얼어붙은 나뭇가지를 미끄러짐 없이 움켜쥘 수 있습니다.

또한 햇빛을 받는 등 쪽은 바위에 낀 붉은 지의류와 분간하기 힘든 주황빛인 반면 땅바닥의 맹수가 올려다보는 복부와 다리는 깊은 그림자와 같은 진한 검은색으로 덮여 보호색처럼 작용합니다. 항문낭에서 배출되는 알싸한 자극취는 단순한 체취를 넘어 고립된 숲에서 개체 간의 암호를 전달하는 중요한 통신 수단입니다.

몇 해 전, 동물원에서 심한 침 흘림과 체중 감소로 레서판다의 진료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레서판다는 귀엽고 순해 보이지만 붙잡고 주사나 혈액검사를 하기에는 사나운 편입니다. 침 흘림을 보아 구강이 아파 보이는 상태였지만 마취 주사를 위해 사육사가 녀석을 잡자 손을 물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육사는 보정용 철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송곳니가 사육사의 철 장갑을 깊숙하게 뚫고 들어와 피가 철철 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잡은 레서판다에게 주사를 놓아 마취한 뒤 진료실에서 개체의 구강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육사의 철 장갑까지 뚫었던 송곳니 두 개는 멀쩡했지만 나머지 치아 6개 정도가 심각한 치주 농양으로 썩어 문드러져 있었고 치조골이 녹아내려 이빨이 심하게 흔들리는 상태였습니다.

장 길이가 짧고 맹장이 없는 소화 구조상 영양 흡수율이 극히 떨어지는 레서판다는 하루 종일 거친 대나뭇잎과 줄기를 쉬지 않고 씹어댑니다. 이 저작 활동 자체가 치아 표면의 치석을 긁어내서 충치를 예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스케일링 받는 레서판다
ⓒ 이하늬
그러나 과거 동물원에서 기호성이 높다는 이유로 당도가 높은 포도와 바나나같이 부드러운 과일을 다량 공급하면서 구강 내 충치가 심해졌습니다. 흔들리는 치아를 발치한 후 염증 괴사 조직을 긁어내고 스케일링까지 진행한 끝에 레서판다는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같은 질환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과일을 줄이고 대나무를 먹을 수 있게 유도하는 방향으로 먹이 조성을 바꿔야만 했습니다. 대나무 기호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동물원을 수소문한 결과 잎이 부드럽고 섬유질 조성이 뛰어난 남부 수종인 '맹종죽'을 찾아내게 되었습니다.

산지에서 갓 채취한 신선한 대나무를 매주 냉장 수송차로 긴급 공수하는 작전을 펼쳤습니다. 레서판다들이 맹종죽 줄기를 우적우적 씹어 먹는 모습을 보며 동물원의 영양팀과 사육사, 수의사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인간의 뒤늦은 노력
 대나무를 향해 손을 뻗는 레서판다
ⓒ 이하늬
현재 동물원의 식단은 맹종죽을 중심으로 안정화되었지만, 철창 너머 녀석들의 고향인 히말라야 능선을 떠올리는 마음은 여전히 무겁습니다. 야생에 생존한 레서판다는 이제 전 세계를 통틀어 만 마리, 적게는 수천 마리에 불과한 적색목록의 위기종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도로망 신설과 벌목으로 서식지가 모자이크처럼 파편화되면서 이동로가 고립되어 개체군 간의 유전병이 심화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기후변화가 유발한 기습 폭우와 산사태로 대나무 군락이 통째로 매몰되는 일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중입니다. 서식지 파괴로 히말라야 높은 고지대를 잃어버린 채 낮은 지대로 내몰린 레서판다들이 가축에게 먹이를 빼앗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을 들개로부터 개홍역 바이러스에 전염되어 목숨을 잃는 비극은 특정 국가의 행정력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어미 품을 파고드는 100g짜리 쌍둥이 레서판다의 숨결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현대 동물원이 감당해야 할 본질적 책무를 무겁게 일깨웁니다. 서식지 밖 보전기관으로서 동물원의 존재 이유는 관람객의 호기심을 채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회복되었을 때 돌려보낼 생명의 혈통과 생태학적 데이터를 지켜내는 방주가 되는 데 있습니다.

분변을 헤집어 호르몬 수치를 판단하고 손상된 치아를 발치하며,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대나무를 실어 나르는 수고는 사라져 가는 한 종의 생태적 고리를 지켜내기 위한 인간의 뒤늦은 노력입니다. 관람객들이 레서판다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겉모습만 좋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야생 서식지 파괴와 멸종위기에 내몰린 이들의 아픔까지 이해해 주길 기대해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Flynn, J. J., Finarelli, J. A., Zehr, S., Hsu, J., & Nedbal, M. A. (2005). Molecular phylogeny of the Carnivora (Mammalia): assessing the impact of increased sampling on resolving enigmatic relationships. Systematic Biology, 54(2), 317-337. (레서판다의 독자적 과 분류 및 라쿤·족제비·스컹크와의 유전적 유연관계 규명) Roberts, M. S., & Kessler, D. S. (1979). Reproduction in red pandas, Ailurus fulgens (Carnivora: Ailuridae). Journal of Zoology, 188(2), 235-249. (단발정성 발정 주기, 가임기 특성 및 착상 지연 기전 연구) Glatston, A. R. (Ed.). (2010). Red Panda: Biology and Conservation of the First Panda. Academic Press. (영양 요구량, 치아 건강 및 고섬유질 대나무 중심 식단 관리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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