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우리는 원래 AI 없이도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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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인공지능(AI)에게 묻고 또 묻는다. 이러다가 AI 없이는 생각하는 능력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하나는 AI를 잘 사용하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AI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우리는 원래 AI 없이도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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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진보에 감탄과 두려움
답 얻는 능력보다 판단력 중요
스스로 생각하는 힘 지켜야
AI의 속도는 지적 능력 진보
아이들의 빠름은 ‘성급함’ 신호
오늘도 인공지능(AI)에게 묻고 또 묻는다. 맛집을 찾아 달라는 소소한 주문부터 여행 계획, 주식 투자, 노후 설계까지 상의한다. 어떨 땐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고민까지 상담한다. 가끔 걱정이 된다. 이러다가 AI 없이는 생각하는 능력이 없어지는 건 아닐까. 긴 논문과 자료를 힘들여 읽지 않아도 요약해 핵심을 알려준다. 잘못된 정보를 주기도 하지만 그게 가짜인 줄도 모르고 넘어가기도 한다. 생성형 AI가 일상으로 들어온 지 4년도 안 됐지만 우리 삶은 많이 바뀌었다. 인간의 영역으로 거침없이 들어오는 AI를 보고 있자면 감탄과 두려움이 동시에 든다. 그러던 중 지난주 발표된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92년간 인간이 못 푼 수학문제를 AI가 단 88시간 만에 풀었다는 뉴스다. 아직 수학계의 최종 검증이 남아 있다지만 세계 7대 수학 난제 중 하나인 ‘나비에-스토크스 문제’의 해법을 AI가 찾았다니 놀랍다. 수학의 난제를 푼다는 건 단순한 계산을 넘어 인류가 아직 모르는 답을 찾아 새로운 논리를 세우는 일이다. 2024년만 해도 구글 딥마인드의 AI가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은메달 수준의 성적을 거뒀다는 것이 화제였다. 불과 2년 만에 이제는 미해결 난제에 새로운 증명까지 내놓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 AI가 답을 찾아냈다는 것은 인간이 그 문제를 이해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까.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테렌스 타오 미국 UCLA 교수는 AI의 해법 발표 다음 날 이렇게 말했다. “AI 기업들의 최근 행태는 수학자들의 식탁에 손질도 안 된 고깃덩어리를 던져놓고 ‘당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했다’며 그냥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말하자면 ‘타오의 생고기’론이다. 새로운 해법을 검증하고, 다른 수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기존 지식과 연결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인간의 지식이 된다. 타오 교수의 걱정은 AI가 답을 내는 속도 자체보다 그 답을 이해하고 지식으로 만드는 과정이 뒷전으로 밀리는 데 있다. 어쩌면 AI 시대에는 답을 얻는 능력보다 그 답 가운데 무엇이 의미 있고 옳은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더 귀해질지 모른다.
그런데 AI의 지적 능력은 빠르게 높아지는 반면 인간의 읽고 생각하는 힘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만 15세 학생 4명 중 1명은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답부터 빨리 고르는 ‘성급한 독자’로 분류됐다. 문제 풀이 시간은 평균 64초로 조사 대상 85개국 가운데 가장 빨랐다. OECD는 “학습은 새로운 자료와 씨름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며 기술이 그 과정을 건너뛰게 만들면 학생의 발달을 갉아먹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AI 시대에 더욱 필요한 문해력은 그런 ‘씨름’ 없이 길러지지 않는다.
AI는 인간이 92년간 풀지 못한 난제를 88시간 만에 풀 만큼 빨라졌다. 우리 아이들도 85개국 가운데 가장 빨리 읽는다. 그러나 두 속도의 의미는 정반대다. AI에게 속도는 지적 능력의 진보인 반면 아이들의 빠름은 ‘성급함’의 신호다. 우리가 긴 글 하나를 천천히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잃어간다면 과연 그 엄청난 도구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AI 시대에는 두 가지 능력이 동시에 필요하다. 하나는 AI를 잘 사용하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AI 없이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AI가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두 번째 능력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오래, 더 깊게 AI와 살아갈 세대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고 의심하고 자기 언어로 표현하는 힘이 더 필요하다.
AI가 요약해주니까 긴 글을 읽을 필요가 없고, 답해주니 스스로 고민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AI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대가 정작 그 답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AI는 이제 계산하고 검색하는 것을 넘어 증명까지 해낸다. AI와 경쟁할 필요는 없다. 대신 무엇을 물을 것인지, 어느 답을 믿을 것인지, 그 답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는 사람이 결정해야 한다. 어떤 문제가 중요한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까지 AI의 판단에 기대기 시작한다면 인간은 생각뿐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주도권까지 넘기게 된다. 그 주도권을 지키려면 AI를 잘 쓰는 법만큼이나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원래 AI 없이도 생각했었다.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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