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들은 이제 없지만…” 영등포역 울린 난곡동 할매 숨은 이야기 [아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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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영등포 거예요."
지난달 26일 오전, 코레일 영등포역 종합안내소 창구에 마스크를 눈밑까지 끌어올린 한 할머니가 한참을 주춤거리다 창구 구멍으로 신문지 뭉치를 쑥 밀어넣었다.
"아침저녁 부는 시원한 바람에서 가을이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지요." 이어 "그날 어머니께서 영등포역에 건네주신 따뜻한 마음과 큰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런 저희의 모습을 보시러 언제든 영등포역에 찾아와 주세요. 저희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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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없는 첫 추석, 언제든 오세요” 역사 세 곳에 답장 붙인 역무원들

“이건 영등포 거예요.”
지난달 26일 오전, 코레일 영등포역 종합안내소 창구에 마스크를 눈밑까지 끌어올린 한 할머니가 한참을 주춤거리다 창구 구멍으로 신문지 뭉치를 쑥 밀어넣었다. 신문지로 쌓여 있는 건 크기로 보나 포장 상태로 보나 누가 봐도 ‘돈뭉치’였다.
종합안내소에 있던 직원들 머리 속엔 딱 하나만 떠올랐다. ‘저분은 그냥 보내면 안 된다.’
한 직원이 바로 뛰어나가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던 여성을 모셔왔다. “할머니, 이거 돈 아니에요?”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에요. 이거 영등포거야”였다.
직원들이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겠다” “절대 받을 수 없다”며 수십 번 설득했지만 여성은 “이건 영등포거라서 꼭 영등포에 주고 가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단 앉아서 대화를 나누자는 말에 마지못해 할머니는 직원들을 따라 역무실로 따라 들어왔다. 신문지를 펼치자 5만원권 100장 묶음인 500만원이, 돈 위에는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쓴 편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편지를 먼저 읽던 직원이 울음을 터뜨렸고, 순식간에 역무실은 울음바다가 됐다. 이승연(41) 코레일 영등포역 역무팀장은 15일 “어머님은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이셨다”며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우리를 따뜻하게 바라보셨는데, ‘짐 좀 덜어줘’ 하는 느낌이 지금도 선명하다”고 말했다.

한 직원이 “아드님이 이 상황을 아시느냐”고 묻자 “우리 아들은 이제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1978년 그날 표 없이 열차에서 내렸던 그 아들이었다. 암에 걸려 석 달쯤 앓다 최근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이 팀장은 “어머님이 자꾸만 우리에게 사과를 하셨다”며 “내 탓인 것 같다면서 ‘내가 이걸 갚았으면 아들이 그럴 일은 없었을 텐데’하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그 순간부터 직원들의 고민이 바뀌었다. 이 팀장은 “사실 처음엔 이 돈을 어떻게 돌려드릴지만 생각했다”며 “그런데 이게 단순히 48년 전 500원을 갚는 돈이 아니라는 걸 안 뒤로는 어떻게 하면 이분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릴 수 있느냐만 고민했다”고 말했다.
‘난곡동 할매’는 끝내 자신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대신 아들의 이름을 적어달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썼다. 아들의 연락처도 남겼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아들의 연락처에 직원들이 전화를 걸어도 돌아오는 건 ‘없는 번호’라는 안내뿐이었다.
여성은 끝까지 “이 돈은 영등포역 거니까 영등포역에서 우리 아들 이름으로 좋은 데 써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직원들은 난곡동 할매의 얼굴도 알지 못한다. 끝까지 마스크를 벗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은 건 500만원과 ‘난곡동’이라는 지명뿐이었다. 돈을 싸온 신문이 서울 관악구 지역 소식지인 걸 보고 그 신문에 투고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접었다고 한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역 안에 크게 편지를 붙여두는 것. 윤정하 코레일 영등포역 구역장은 “지나가다 누구라도 이 편지를 보고, 그 얘기가 전해지고 전해져서 ‘영등포역에 그런 편지가 붙어 있더라’하고 귀동냥으로라도 들으시지 않을까 했다”고 말했다.

답장은 이 팀장이 직접 썼다. 제목은 ‘난곡동 할매께’. 여성이 편지 끝에 스스로 적은 그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답장은 안부로 시작했다. “아침저녁 부는 시원한 바람에서 가을이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신지요.” 이어 “그날 어머니께서 영등포역에 건네주신 따뜻한 마음과 큰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초대가 이어졌다. “그런 저희의 모습을 보시러 언제든 영등포역에 찾아와 주세요. 저희 모두 따뜻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만 붙이는 시점은 일부러 늦췄다. 익명을 원한 난곡동 할매의 뜻이 어긋나거나, 뜻하지 않은 칭송이 오히려 상처가 될까 걱정돼서였다. 답장은 지난 13일 붙었고, 연휴가 끝나는 27일까지 그대로 둘 예정이다.
벽보는 모두 세 곳에 있다. 열차를 타러 들어가는 동선과 내려서 나오는 동선에 전지 크기로 한 장씩, 그리고 그날 여성이 지나간 동선의 기둥에 포스터 크기로 한 장이 붙었다. 나이든 사람의 눈에도 잘 띄도록 크게 만들었다.
이 팀장은 “어머님이 직접 못 보시더라도 친구분이나 동네 사람, 하다 못해 주민센터 직원이라도 보고 ‘난곡동에 이런 분이 있대’ 하고 전해주셨으면 했다”고 말했다.
500만원의 처리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공공기관이라 기부금을 받는 절차 자체가 없어 회계상 수입으로 잡은 뒤, 여성의 뜻대로 쓸 방법을 코레일 본부·본사 차원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벽보에 다 적지 못한 말이 있다. 이 팀장이 난곡동 할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이번 추석이 아드님 보내시고 첫 명절일 텐데, 누군가 어머님을 기억하고 있고 아드님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했어요. 명절에 혹시 가실 데가 없으시면 ‘나 편지 보고 왔어’ 하고 편하게 오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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