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멸망론은 사기” “AI 통제장치 필요”…두쪽 난 워싱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인공지능(AI)의 위험성에 대한 논의가 단순히 첨단 기술 규제 차원을 떠나 미국 정치 지형을 흔드는 핵심 의제로 진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AI 개발 감속론을 “음모”라고 몰아붙이자 민주당은 AI 규제 방임에 대한 책임을 부각하며 공세에 나섰고, 공화당은 과도한 규제가 미·중 간 경쟁 국면에서 국가 안보를 해칠 수 있다고 맞서는 ‘공수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트럼프는 14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잇따라 올린 여러 건의 글에서 “AI와 데이터센터를 겨냥한 역겨운 음모(SICK conspiracy)가 벌어지고 있으며, 이를 반기는 것은 중국뿐”이라며 안전장치를 마련할 때까지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촉구한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를 저격했다. 아모데이가 “천사인 척한다”고 비꼰 뒤 “음모론자와 반역 선동자, 배신자, 정보 유출자들은 각오하라”고도 했다. 또 “AI가 세계를 장악하고 인류를 파괴한다는 주장은 사기(HOAX)”라고 비난했다.

전날만 해도 “여러 부정적인 세력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까지 거론하고 있다”며 업계의 요구를 기우로 일축한 정도였다면, 하루 만에 이를 중국을 이롭게 하는 반역 행위로 몰며 공세 수위를 한층 높인 것이다. 특히 ‘음모’나 ‘사기’ 등은 트럼프가 과거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으로 수사를 받을 때나 탄핵 국면에서 사용하던 단어다. AI의 위험성에 대한 논의에 ‘정치의 언어’를 덧씌우기 시작한 셈이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지도부도 감속론을 경계하며 방어에 나섰다. JD 밴스 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수많은 프론티어 AI 테크 기업들이 정부로 달려와 자신들을 규제해 달라고 애원하는 현 상황이 의아하다. 내게는 이것이 일종의 ‘트로이의 목마’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공화당 출신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CNN에 “의회가 서둘러 AI 규제에 나선다면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패할 것이며, 이는 모든 미국인에 대한 위협”이라며 AI 규제를 안전이 아닌 안보의 문제로 전환했다.
민주당은 이를 중간선거를 넘어 대선에서도 쟁점화할 채비에 나섰다. 지난 10일 민주당 행사에서 2028년 대선주자들이 AI를 “핵심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호응하듯 유력 차기 주자들이 이슈 선점에 나서는 분위기다. 피트 부티지지 전 교통부 장관은 전날 NBC 인터뷰에서 “통제를 벗어난 AI에는 비상정지 장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고,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ABC 뉴스에 출연해 의회가 AI 개발 속도를 늦추기 위한 “결단력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 내 의견 차이도 드러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날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올인 서밋’ 무대에서 트럼프의 전화를 받아 이를 스피커폰으로 연결했다. 청중이 듣는 가운데 트럼프는 AI가 세계를 지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사기”라는 주장을 다시 했고, 황은 “맞다.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과 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논의의 장도 마련된다. 존슨 의장은 트럼프와 의회 지도부, 주요 AI 연구소 수장들이 참여하는 백악관 회동이 “이번 주 후반이나 다음 주 초 열릴 수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유지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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