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속도 늦추자” 외쳤지만...AI는 비트코인 ‘해킹시계’ 앞당겼다

인공지능(AI)이 비트코인의 암호 붕괴 시계를 앞당길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해킹에 활용되는 양자컴퓨터의 작업 효율을 AI가 빠르게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AI 업계 수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위험이 있는 첨단 모델의 개발 속도를 늦추자고 제안하고 있지만, 이미 보급된 AI가 비트코인의 암호를 무너뜨리기엔 충분하다는 진단이다.
세계적인 사전 논문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지난 9일(현지시간) ‘쇼어 알고리즘의 타원곡선 점 덧셈 최적화를 위한 개방형 자동연구’라는 논문이 올라왔다. 이더리움재단과 세타랩스, 스타크웨어 등 여러 조직 소속의 100명이 넘는 참가자가 AI를 이용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암호를 푸는 데 쓰일 수 있는 양자컴퓨터의 계산법을 개선한 공개 연구 프로젝트다.
연구진이 개선한 것은 쇼어 알고리즘이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점 덧셈’ 연산이다. 구글 퀀텀AI는 지난 3월 이 연산에 필요한 양자회로의 자원 점수를 약 30억으로 제시했는데, 연구진이 새로 설계한 회로의 점수는 약 15억으로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 예컨대 기존에는 금고를 여는 작업에 굴착기 30대가 필요하다고 봤다면, 작업 순서를 바꿔 약 15대만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비트코인 거래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키와 소유자만 아는 개인키가 사용된다. 현재 컴퓨터로는 공개키를 통해 개인키를 역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충분히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쇼어 알고리즘을 실행하면 개인키를 알아내 다른 사람의 코인을 빼낼 가능성이 있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이처럼 양자컴퓨터가 기존 암호체계를 뚫을 수 있게 되는 날을 ‘Q(Quantum)-Day’라고 부른다. 코인데스크는 “이번 연구는 양자컴퓨터의 성능이 그대로여도 인간과 AI가 계산법을 개선하면 양자 공격에 필요한 자원과 시간을 줄일 수 있음을 보여준 데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AI를 이용해 비트코인 해킹에 필요한 계산 과정을 줄였다는 연구 결과는 최근 확산하는 ‘AI 속도 조절론’과도 맞닿아 있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는 12일 AI의 능력 향상 속도를 늦춰 안전 기술과 외부 검증이 따라잡을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일론 머스크 xAI CEO도 이러한 제안에 동의하면서 AI 업계의 안전 논의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당장 가상자산의 암호체계가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 연구진이 개선한 것은 전체 공격 과정이 아닌 핵심 계산의 일부이며, AI의 역할도 연구진의 주도와 지침에 따라 회로 최적화를 보조하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현존하는 양자컴퓨터의 성능으로는 실제 암호를 풀 수 없다. 다만 양자컴퓨터 기술이 완성된 뒤 대응에 나서면 늦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글래스노드에 따르면 공개키가 이미 노출된 비트코인은 지난 5월 기준 약 604만 BTC로, 당시 발행된 물량의 30.2%에 달한다. 충분히 강력한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면 잠재적인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물량이다.
블랙록과 코인베이스, 스트레티지 등 9개사가 지난 7월 ‘비트코인 보안 컨소시엄’을 출범시키고 향후 3년간 1500만 달러를 보안 연구와 오픈소스 개발에 지원하기로 한 것도 이러한 위기 의식에서다. 논문을 주도한 제이룽 세타랩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공격이 임박한 것은 아니지만 대응에는 수년이 걸리고, 공격이 발생한 뒤에는 기존 자산을 소급해 보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준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45분 기준 비트코인은 24시간 전보다 0.26% 내린 7만7420.48달러에 거래됐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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