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스스로 가설 세우고 새로운 발견…노벨상은 누가 받나[125년 노벨상 시대를 담다]②

김종화 2026. 9. 15. 06:3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901년 첫 시상 이후 125년. 과학은 한 명의 천재가 발견하던 시대에서 수천 명과 인공지능(AI)이 함께 연구하는 시대로 변했다.

그는 "수천 명의 연구자가 참여하는 거대 공동연구가 인간들 사이에서 발견의 공로를 나누는 문제를 던졌다면 AI는 이 문제를 한 단계 더 밀어붙인다"면서 "이제는 공로를 인간끼리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넘어 지적 기여의 주체가 반드시 인간이어야 한다는 기존 전제까지 흔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진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AI가 수천 개의 결과물을 쏟아낼수록 그중 보석을 가려내는 인간의 안목이 더욱 중요해진다"며 "무엇이 인류에게 가치 있는 발견인지를 정의하고, 그 결과에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지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AI, 과학자의 도구 넘어 가설·실험까지
125년 된 '발견자' 개념 시험대
"무엇이 발견인지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은 인간"
편집자주
1901년 첫 시상 이후 125년. 과학은 한 명의 천재가 발견하던 시대에서 수천 명과 인공지능(AI)이 함께 연구하는 시대로 변했다. 아시아경제는 노벨상 125년을 통해 과학적 발견의 주체와 방식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노벨상은 이러한 변화를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지를 7회에 걸쳐 살펴본다.

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3명 가운데 2명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과학계의 오랜 난제를 풀어낸 연구자들이었다.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와 존 점퍼 당시 수석연구원(부사장)이 개발한 '알파폴드2(AlphaFold2)'는 아미노산 배열만으로 단백질의 3D 구조를 정밀하게 예측해냈다. 반세기 넘게 과학계가 씨름해온 난제였다. 스웨덴왕립과학원은 알파폴드2를 개발한 연구자들에게 노벨화학상을 수여했다. 컴퓨터를 이용한 단백질 설계에 기여한 데이비드 베이커 미국 워싱턴대 교수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2024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데미스 허사비스(왼쪽)와 존 점퍼가 2024년 12월7일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과학원에서 열린 노벨상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인공지능(AI) 모델 ‘알파폴드2(AlphaFold2)’를 개발해 단백질의 복잡한 3차원 구조를 예측한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Jennifer 8. Lee/Wikimedia Commons 제공
가설 세우고 실험 설계하는 AI…파트너십의 등장

지금까지 AI는 인간이 활용하는 '도구'였고, 노벨상 역시 그 도구를 통해 획기적인 성과를 낸 인간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AI가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며 해결책을 찾아내기 시작하면서 주체와 도구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AI 개발자와 이를 활용한 과학자, 결과를 실험으로 검증한 연구자의 기여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가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과학자가 질문하고 AI가 답을 찾던 단계에서 AI가 질문과 답을 함께 만들어내는 단계로 넘어가면서 125년간 인간을 전제로 해온 '발견자'의 개념도 시험대에 올랐다.

AI가 이미 인간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도구를 넘어 새로운 발견의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정황은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된 AI 시스템 '로빈(Robin)'이 대표적이다. 여러 AI 에이전트(비서)가 협력하는 로빈은 논문을 검색해 가설을 세우고, 검증 실험을 제안하며, 데이터 분석을 거쳐 후속 연구 방향까지 제시한다.

영국 리버풀대가 운영하는 자율화학실험실(Autonomous Chemistry Laboratory). 인공지능(AI)과 로봇을 결합해 실험을 수행하고 결과를 분석하며 새로운 물질을 탐색하는 ‘자율 실험실’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AI가 데이터 분석을 넘어 실제 실험 과정으로 들어오면서 과학적 발견에서 인간과 AI의 역할을 어디까지 구분할 것인지도 새로운 질문으로 떠오르고 있다. University of Liverpool 제공

연구진은 로빈에게 건성 노인성 황반변성의 새로운 치료법을 찾도록 했다. 로빈은 치료 전략과 후보 약물을 제안하고 실험 결과를 분석해 후속 실험까지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이 질환의 치료제로 제안되지 않았던 새로운 약물 후보도 찾아냈다. 다만 실제 실험은 인간 연구자가 수행했다. AI가 인간이 만든 데이터를 계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가설과 실험, 분석을 잇는 연구 과정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왕다순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AI는 인간 혼자서는 탐색할 수 없는 거대한 영역을 찾아내며 단순한 도구 역할을 넘어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래 과학의 모습을 AI의 인간 대체가 아닌 '인간-기계 파트너십(human-machine partnership)'으로 정의했다. 인간과 AI가 서로 다른 능력을 공유하면서 하나의 발견을 함께 만들어가는 방식이 점차 확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왕 교수는 "기계의 기여가 어떤 과학적 돌파구에 필수적이라면 그 기여를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가가 새로운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과학적 인정 체계는 지적 기여를 하는 주체가 '인간'뿐이라는 전제하에 설계된 만큼 새로운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수천 명의 연구자가 참여하는 거대 공동연구가 인간들 사이에서 발견의 공로를 나누는 문제를 던졌다면 AI는 이 문제를 한 단계 더 밀어붙인다"면서 "이제는 공로를 인간끼리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넘어 지적 기여의 주체가 반드시 인간이어야 한다는 기존 전제까지 흔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연을 알아채는 '호기심'과 '책임'은 인간의 몫

물론 전문가들은 가설과 실험을 수행한다고 해서 AI를 곧바로 독립된 '발견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과학의 중요한 발견이 언제나 처음부터 정해진 문제의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토비아스 에르브 독일 막스플랑크 육상미생물학연구소장은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처럼 수많은 위대한 발견이 정해진 목표가 아닌 '우연과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던 접시에 곰팡이가 자라면서 주변 세균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원래 실험 목적에서 보면 오염된 배양접시는 버려야 할 실패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우연한 현상에서 의미를 발견한 인간의 통찰이 훗날 항생제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 됐다.

에르브 소장은 "많은 근본적인 발견은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며 어떤 현상이 어디로 이어질지 알지 못한 채 질문을 좇는 능력에 주목했다. AI가 정해진 목표를 넘어 예상 밖의 현상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과학적 호기심'을 구현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설명이다.

AI가 수많은 가능성을 만들어낼수록 무엇을 발견으로 볼 것인지 판단하는 인간의 역할은 오히려 중요해질 수 있다. 정진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AI가 수천 개의 결과물을 쏟아낼수록 그중 보석을 가려내는 인간의 안목이 더욱 중요해진다"며 "무엇이 인류에게 가치 있는 발견인지를 정의하고, 그 결과에 자신의 이름으로 책임지는 주체는 결국 인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벨화학위원회 사무총장인 페테르 브르제진스키 스톡홀름대 교수 역시 현시점에서는 AI를 연구자가 활용하는 여러 '도구' 가운데 하나로 규정했다. 그는 "노벨상에 걸맞은 발견이나 발명, 혁신을 이룬 연구자를 평가하는 기준은 연구자가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와 무관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AI 자체보다 이를 활용해 연구자가 어떤 통찰과 성과를 만들어냈는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