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조문객도 빈소도 없는 이별…‘스몰엔딩’ 시대 온다
지난 3월 박모(56)씨는 부친의 장례를 조문객 없이, 빈소도 차리지 않는 무빈소 가족장으로 치렀다. 박씨는 “아버지께서 살아생전 허례허식이 싫다며 요청한 방식”이라며 “가시면서까지 자식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가족끼리 차분하게 고인을 추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인구 고령화에 사망자 수가 늘고 있지만, 장례는 오히려 간소화하는 이른바 ‘스몰엔딩’이 확산하고 있다. 14일 중앙일보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보건복지부의 ‘전국 무빈소 장례 이용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빈소를 설치하지 않고 치러진 장례 건수는 2만5045건으로 집계됐다. 2021년 1만5672건이었는데 5년새 60% 늘었다.

무빈소 장례와 관련한 공식 통계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무빈소 장례 비중은 전체 장례식장 이용 건수의 7.1%로, 2023년 5.7% 2024년 6.1% 이어 매년 증가세다. 한 장례업체 관계자는 “2021~2022년(각 5.9%)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무빈소 장례가 증가했다. 이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전국 장례식장 1031개(지자체 회신 기준) 중 무빈소 장례가 가능한 건 948곳(92%)이다. 시도별로 보면 세종·제주·울산은 지난해 장례 10건 중 1건이 무빈소로 치러졌다. 경기도 파주한빛병원 장례식장은 2024년 13.9%에 불과하던 무빈소 장례 비중이 지난해 61.5%로 급증했다. 울산 제일병원장례식장은 지난해 장례 10건 중 8건이 무빈소로 치러졌다.

무빈소 장례 전문업체 ‘더무빈소상조’의 최규호 대표는 “지난해만 해도 월평균 20건 수준이던 무빈소 장례가 올해 30~40건 수준으로 늘었다”며 “현재 수도권과 충청권을 중심으로 영업하고 있는데 경상도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무빈소 장례가 느는 이유로는 우선 현실적인 비용 문제가 꼽힌다. 상조업계에 따르면 현재 3일장 기준 평균 장례비용은 조문객 150명 기준 800만원 안팎, 규모가 커지면 1500만~2000만원 수준이다. 반면 무빈소 장례는 200만~300만원대로 일반 장례비용의 5분의 1 수준이다. 장례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빈소 임대료와 인건비, 식음료 접대비가 들지 않아서다.

인식의 변화도 크다. 지난 5월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이 성인 1000명에게 물었더니 10명 중 7명(71.8%)은 본인 장례를 무빈소로 치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장례 비용 절감, 형식적인 조문 부담, 가족 중심 장례 선호 등이 주된 이유였다. 중장년 1인 가구가 늘고, 가족·친척 간 유대 관계가 느슨해진 영향도 있다.
한지아 의원은 “과거에는 무빈소 장례가 무연고자나 소외계층이 장례를 치르는 방식으로 여겨졌는데, 점차 ‘스몰엔딩’이 새로운 추모 방식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고 짚었다.

한국에서 이른바 ‘관혼상제’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혼 연령이 늦춰지고 경제적 독립이 지연되면서 성년의 날은 의미가 퇴색한 지 오래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설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는 응답은 지난해 51.5%에서 올해 63.9%로 12.4%포인트 늘었다. 이유는 1위가 여행 계획(32.7%)이었고 이어 종교적 이유(25.4%), 차례 필요성 미인식(25%) 등이었다.
결혼식도 갈수록 간소화하고 있다. 내년 결혼을 앞둔 이모(35)씨는 스몰 웨딩을 넘어 직계 가족만 부르는 ‘마이크로 웨딩’을 계획하고 있다. 이씨는 “결혼식에 대한 환상이 크게 없어서 거창하게 치르고 싶지 않았다”며 “개혼(開婚)이 아니라서 양가 부모님도 저희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엠브레인 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녀 10명 중 8명은 ‘스몰 웨딩’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가속화할 수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족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의무나 기대가 약화하면서 '관혼상제'도 과거의 틀에 얽매이기보다 가족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며 “관계 유지에 부담을 주지 않는 합리적인 수준을 찾아가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세종=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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